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서산지역 답사여행 ② 보원사 절터...

鶴山 徐 仁 2005. 10. 29. 12:41
서산지역 답사여행 ② 보원사 절터...
  2005
김신묵      

마애삼존불을 돌아보구 나서

용현계곡 윗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보원사 절터가 있다.

계곡 끝까지 가면 자연휴양림인데 무언가 공사중이어서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고

계곡을 올라가면서 좌/우측으로는 유원지 답게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개, 닭, 매운탕...등등....  족구장도 있고 야외자리도 있고 물가도 있고.....  어디나 비슷비슷하다~

 

마애삼존불을 막 출발하여 식당을 한두개 지났을까?

왼쪽은 개울이 계속 되는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오른편 바위에 무언가 글씨가 새겨져 있어 들여다보니 '방선암'이라 한다.

이 방선암(訪仙岩)은 조선시대 당시 이곳 해미현내에 거주하던 당대최고의 선비들이 화창한 봄날 이곳 마당바위위에 모여

시작(詩作)을 하였고 이것을 기리기 위하여 이름지었다고 한다.

 

<방선암>

 

<마당바위는 어디일까 둘러보아도 알수가 없다... 개울에 너른 바위...저것인지???>

 

 

아무튼 그렇게 둘러보면서 올라가는 가운데 나타난 보원사 절터는 대략 버스 회차지점일뿐...

몇채 정도는 있었을 민가는 철거된듯하고 예서부터는 도로도 비포장 먼지가 풀풀~ 날리며 황량하기까지 하다.

 

[명칭에 관한 얘기]

정식명칭은 보원사지....한자로 址는 터..지... 즉 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진 흔적만 남은 자리라는 뜻이다.

통상 폐사지라고 부르는 절터의 의미로 보원사가 있었으면 보원사지...원각사가 있었으면 원각사지...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건 그야말로 한자식 발음인데다가 옛터가 어디 절터만 있겠는가?

잘못하면 동학혁명으로 유명한 고부군수 조병갑이가 막아놓구 물세를 받았다는 그 만석보...  저수지 제방인데

지금은 없어지고 터만 남았으니 만석보지...라고 해야하는데 우리말로 쓰기도 그렇구 소리내어 읽기도 참 민망하다.

구래서 만석보터 하면 될터인데......ㅠㅠㅠ 

(실제로 이런 고민때문에 만석보에 세운 비석에는  (만석보유지비)라고 한자로 비명을 썼다고한다.

 즉 萬石洑遺碑(만석보지비)=만석보터라는 비석=이어야하는데 발음이 민망하므로 유(遺)자를 괜히 중간에 넣은것이다)

......이상은 유흥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 동학혁명 지역 답사기록에 써놓은 의견인데 절대 동감이다.

 

 

보원사지....나는 이것을 보원사 절터라고 부르련다.

위의 설명대로 발음도 그렇고, 한자가 뜻글자라지만 이 경우에는 한글의 뜻이 더 정확하게 전달된다.

보원사지보다는 보원사 절터....가 낫다는 나의 주장이다.

 

보원사 절터는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 316로 서산시 운산면 강당계곡... 마애삼존불에서 약 10분거리 윗쪽에 있다.

보원사는 백제 말기 창건 고려초에 이르러 중창된 웅장한 규모의 사찰이었다.

현재는 석조=돌물그릇(보물 102호), 당간지주(보물 103호), 5층석탑(보물 104호), 법인국사보승탑(보물 105호)

법인국사보승탑비(보물 106호)등....6개의 보물급 유적이 남아있는 절터이다...

이 자리에 있던 대형 철불 2구는 중앙박물관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보원사 절터... 전경>

앞은 용현계곡을 지나는 비포장 도로... 그리고 보원사 절터 안내 간판...

바로 앞에 당간지주가 보이고 (사진에는 안보이지만 개울건너) 멀리 산자락쯤에 법인국사보승탑이 보인다...

그리고 나머지 여유공간은 그냥 평평한 땅바닥이다.

 

 

 

<당간지주(幢竿支柱)... 아래 받침석은 새로이 제작했다>

절 앞에 부처나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의미를 가진 당(幢)이라는 깃발을 다는 깃대를 당간이라 한다.

그 깃발을 세우는 지주가 당간지주인데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때것으로 보이며 원래 자리 그대로이다.

 

<석조....우리말로 돌확이라 하는 일종의 돌로 만든 물그릇이다.... 그릇을 씻거나 쌀등을 씻을때 사용하며

  물이 찬 상태에서 얼었었는지 깨져있다...>

  내부와 윗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겉은 거친상태로 보아 땅에 묻은 채 사용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는 모양이다.

  안쪽 바닥에 물 빼는 구멍이 있다... 현재 남은 석조중 가장 큰 규모이다.

 

보원사 터는 길에서 보아 앞쪽에 당간지주와 석조가 있고

그 뒤로 개울을 하나 건너 산밑에 5층석탑과 보승탑, 보승탑비가 있다.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 낭만적이랄까?  성의 없다 할까???... 여름이 물이 넘치면 어쩔지 모르겠다>

 

고려초 고승으로 국사가 된 탄문국사가 입적하고 고려임금인 광종에 의해 보승탑이라는 탑명을 받았으며

법인이라는 시호도 하사받았다.  그리하여 법인국사 보승탑이 된것이며

보승탑이라고 세운비가 옆에 서있으니 보승탑과 보승탑비가 나란히 서게 된 연유이다.

 

<법인국사 보승탑....법인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이다 >

 

<법인국사 보승탑비.........고려 경종의 지시로 세운 탄문의 일대기이다.....  탑아래 돌거북이 귀엽다~>

 

<나란히 서 있는 모습>

 

<5층석탑.. 고려시대 석탑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2단으로 된 기단의 아래층 기단에는 12마리의 사자상을... 위 기단에는 8부중상을 조각하였다.

상단의 쇠막대기는 피뢰침이 아니라... 여러가지 부재가 달린 상륜부인데 다 없어지고 지금은 철주만 남은것이다.

 

보원사 절터를 돌아보니 참으로 고즈넉하고 허허로워 보였다.

전체면적이 약 3만평이라고 하는데 그 크고 작은 절집은 모두 어디가고 지금은 탑과 비만 남았던고?

그리고 관리하는 손길이 턱없이 모자라는듯하여 보는 가슴이 안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