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고도 충남 부여(扶餘)읍 동남리 서동공원은 통상 궁남지(宮南池)라고 부르는데
글자 그대로 궁(宮)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이 궁남지는 부여를 도읍지로 정한 사비시대 백제의 별궁에 조성된 연못인데,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이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궁남지를 보고 경주에 안압지를 조성했으며, 일본서기에는궁남지의 조경기술을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궁남지는 외침에 대한 방어목적으로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여 담아 두었다고 하는데
원래는 연꽃이 피어있던 것이 아니었으나 지난 2002년 부여군에서 궁남지를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을
테마로 한 명소로 하기위하여
입구에 소규모의 홍련을 심은것이 반응이 좋아지자 그 규모를 확대하여 연못주위를 돌아가면 연꽃을 심게 된
것이라 한다.
현재 연못은 약 1만여평으로 당시의 1/3정도의 규모로 복원된것이라 하며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이 있고 그위에 포룡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목조다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연못주변은 아름드리 수양버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있고 앞쪽은 홍련이 주종을 이루고
피어있다.
지난 7월 21일부터 26일까지 '궁남지에 핀 연꽃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란
주제로 제3회 '서동.연꽃축제'가 열렸다.
이곳은 서동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가 깃든 사랑의
연못으로
전국의 연꽃 명소중에서 유일하게 '사랑'이라는 테마를 가진곳이다.
[서동요....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궁남지는 백제 무왕의 탄생설화가 깃든곳이며 선화공주와의 러브스토리가 전해지는
곳이다.
즉, 서동의 모친이 궁남지 옆에서 살던 중 이곳에서 용을 만나 정신을 잃은 후 (용과
통정하여) 낳은 아이가 서동인데
어려서부터 가난했던 서동은 마(麻)를 팔며 연명하던중 왕실의 밀명으로 당시 적국이던 신라를 염탐하러
서라벌로 갔다가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와 눈이 맞게되었으나 신분과 국적이 달라 맺어질수 없게되자 노래
하나를 지어 아이들에게 가르쳤는데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 도련님을 밤마다 몰래 안고 간다'는 내용인바 이것이 바로
'서동요'이다.
이 노래는 아이들에 의해 삽시간에 장안에 퍼져 화제가 되었고 급기야 신라에서 쫓겨난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얘기...
훗날 무왕이 된 서동은 이곳에 인공연못을 만들었고 아내(선화공주)와 배를 띄우고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속삭인 곳이란다.
연은 더러운 곳에서도 때묻지않은 꽃을 피운다.
그래서 꽃말도 '순결'이다.
<궁남지 전경.....홍련(紅蓮)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한쪽에는 백련도 수줍게 피어있다....>
<부레옥잠도 꽃을 피웠다.....>
<포룡정 정자와 돛배 한척이 고풍스럽다......>
<각 색의 수련들.....>
궁남지를 돌아보면서 부여(扶餘)가 아직 읍(邑)이라는데 놀라웠고 부여를 둘러본 기억이라야 겨우
낙화암정도였던것이 부끄러웠다.
부소산성과 낙화암, 고란사뿐 아니라 국립 부여박물관과 정림사 절터, 능산리 고분군등이 가까운곳에 있어
함께 둘러볼 만 하다.
[연인의날 칠월칠석 행사]
1920년대 일제가 대중집회를 금지하면서 자취를 감췄던 ‘칠월칠석'행사.
칠석인 8월 11일 궁남지 포룡정에서는 백제칠석문화제가 개최된다.
백제다례원이 마련한 이번 행사는 국립부여박물관의 어린이 다도 시연과 중국 다예사 시연 및
공주대무용과의 화관무 공연에 이어
헌화·헌촉·헌향·헌다·헌다자단배·헌시 등 칠석다례를 올리고 참석자들에게 연꽃 잎으로 만든칠석연밥과
칠석두리차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