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코로나 대유행이 글로벌 경제 위기를 촉발할 것이란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한국 증시 사상 처음으로 코스피·코스닥 두 시장이 동시에 일시 매매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증시에 대한 충격은 앞으로 완화될 수 있어도 실물 경제가 워낙 좋지 않기 때문에 금융 불안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지금 시장(市場)에서 한국의 경제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긴급 청와대 회의를 소집해 "메르스·사스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비상 경제 시국"이라며 '전례 없는 대책'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 4시간 후에 증시 안정을 위한 정부의 '공매도 6개월 금지' 대책이 발표됐다. 그런데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는 이 방안을 추진키로 이미 합의해놓고 있었다고 한다. 발표를 대통령 보고 이후로 미루는 통에 조치가 늦어졌고, 시장 불안을 가속화하는 결과가 됐다. 위기 대응은 신속하고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공매도 금지' 정도의 저강도 대책조차 대통령 보고 후 재가를 받아야 하는 대응 시스템으로는 급변하는 위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과거 두 차례의 금융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상황을 종합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가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1998년 외환 위기 때 김대중 대통령은 이규성·이헌재 등의 전문가들에게 전권(全權)을 주고 대응을 맡겼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실물 경제에 단련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지휘권을 쥐고 145차례의 비상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종합 대책을 쏟아냈다. 물론 강만수와 같은 경제 정책 리더십도 있었다.
지금은 누가 위기 대응을 총괄하는지 알기 어렵다. 경제를 모르는 대통령, 리더십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제부총리, 재야 단체에 있던 청와대 정책실장,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청와대 경제수석, 현실을 모르는 경제부처 장관들이 모인 회의 장면을 보면 저곳이 이 커다란 국가적 위기를 헤쳐나갈 사령탑이라고 믿기 힘들다. 지금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고 경제를 지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제부총리와 경제팀이 전권을 가진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당장 추경예산 증액 문제를 놓고도 당·정에서 딴소리가 나오고 있다. 추경을 비롯한 위기 대응의 '실탄'을 얼마나 준비해 어떻게 쓸지는 종합적 관점에서 검토돼야 하지만 민주당은 국회 각 상임위의 요청액을 합산해 '6조원 증액'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회 상임위 심사가 주먹구구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6조원'은 구체적 근거와 내역이 없는 정치적 숫자일 가능성이 높다. 추경 관련 회의를 하면서 경제부총리를 빼버리는가 하면 경제부총리를 향해 '해임' 운운하며 협박하기도 했다. '경제'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역대 정부 중 경제팀이 이렇게 존재감이 없던 적도 없었다. 팀장인 경제부총리는 청와대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고 해서 '예스맨'으로 불린다. 경제부처 장관들은 일 자체를 벌이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위기 앞에서 장수를 바꾸기도 쉽지 않다. 경제부총리에게 전권을 주고 종합적인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도 그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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