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부부 Fun더하기 이병준입니다.
몇 개월 전에 초등 1학년 늦둥이를 둔 지인이 저희집을 방문했습니다. 아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초등학교 1학년치고는 너무 어리고 고집만 부리고 칭얼댑니다. 어른들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급기야 저녁시간이 되어 식탁에 둘러앉았는데 입이 닷발이나 나왔습니다. 고기반찬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생선까지는 있는데 자기 먹을 고기가 없으니 밥을 먹지 않는다며 숟가락을 팽개쳐 버렸습니다. 난감해하는 부모를 대신해서 제가 나섰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숟가락 던지는 사람 밥 못 먹는데...” 라고 엄포를 놓아서라도 아이가 밥을 먹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아이는 흰자위만 잔뜩 드러내고 식식대고 있습니다. 부모는 그저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이는 장난감 가지고 놀았고 저녁 늦게까지 어른들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손님을 돌려보내고 난 후에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혹 내가 교육이라는 이름의 배려가 그 부모의 마음을 칼로 ‘베려’ 한 결과가 아니었는지 하고 말입니다.
손님은 손님이다.
그날, 지인이 막내를 데리고 온다는 사전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물론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은 쪽도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손님으로 초대할 한 입장이라면 내가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혹 아이가 그렇더라도 아이를 훈계하거나 타이르는 몫은 부모의 몫이지 제 몫이 아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제공해서라도 불평을 줄여야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 의무를 이행한다는 이름하에 일명 버르장머리 교육을 시행했으니 명분은 맞았지만 그 다음을 생각 못했습니다. 우리가 아이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말은 그 부모가 아이의 버르장머리를 고치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이 됩니다. 나는 의로움을 내 세웠지만 그 부모에겐 모멸감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가까운 친척이라면야 ‘가족’의 범주에 들어가니 얼마든 꾸중도 야단도 칠 수 있겠지만 그 아이는 엄연한 손님이었습니다. 아이의 무례함보다 나의 무례함이 먼저였습니다.
둘 다 윈윈할 수 있는 지혜는 없었을까?
아이가 그랬을 때 그 상황을 윈-윈으로 바꿀 수 있지는 않았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가끔 TV에선 대박 맛집들이 소개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 식당들 중에는 아주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습니다. 어떤 식당은 수저가 땅에 떨어져 손님이 떨어진 수저를 집어 들고 고개를 들면 어느새 주인이 새 수저를 정중히 제공하는 곳도 있습니다. 주인은 수저 떨어지는 소리만으로도 어느 위치인지를 정확하게 알아 신속하고 정확하게 새 수저를 제공합니다. 어차피 손님이 새 수저를 달라고 부를 것인데 이왕이면 더 빨리 요구하기 전에 갖다 드리는 것이 낫다는 주인의 철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좀 짓궂은 손님들 중에는 일부러 수저를 떨어뜨려 주인이 즉각 달려오는지를 테스트하려고 오는 분들도 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주인 입장에선 어차피 할 일을 자발적으로 함으로써 부르고 대답하고 다시 수저를 갖다 주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번개 서비스를 통해 손님을 오게 만들었던 겁니다.
교육은 부모 몫으로
다행히 부모가 이해를 해 주는 편이었고 가족상담을 하고 자녀교육에 관련된 특강도 하는 전문가라고 인정해 주는 덕분에 그냥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부모가 몰라서 그냥 있거나 아니면 과잉사랑이거나 방임주의일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부모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섣부른 판단은 본능적으로 발동된 저의 ‘우월감’이 부른 행동일 뿐입니다.
넷향기 가족 여러분!
때로 우리가 하는 배려고 상대방을 베려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또 한 번 생각해 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