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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社會 關係

[강천석 칼럼] 이대로 '東北亞 환자' 되려는가

鶴山 徐 仁 2017. 4. 4. 10:10


[강천석 칼럼] 이대로 '東北亞 환자' 되려는가


입력 : 2017.03.31 23:22   



'단번에 몽땅 대청소' 의식 졸업해야 나라 바로 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 바꾸기 어려운 것 가려내는 지혜 필요


강천석 논설고문
 강천석 논설고문


다음 대통령은 어제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보냈을까. 보통 사람들은 온종일 착잡했다. 세계의 눈을 의식하면 창피스럽기도 했다. 1995년 두 전직(前職) 대통령이 며칠 사이 잇따라 구속됐다. 2009년엔 바로 직전 대통령이 수사 도중 목숨을 끊었다. 어제는 불과 20여 일 전까지 현직(現職)이던 대통령이 파면 결정을 거쳐 끝내 수의(囚衣)를 입었다.

한국은 '그대로병(病)'을 앓고 있다. 대통령들은 20년 전과 다름없이 청와대를 나와 교도소로 간다. 기(氣) 죽은 경제도 북한 핵(核)도 예전 그대로다. 양극화, 청년 실업, 노인 빈곤, 창업 부진(不振)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보다 GDP가 몇 십 배나 크고 국방 예산을 몇 배나 더 쓰면서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국방 태세는 달라진 게 없다.

더 망가진 분야도 여럿이다. 미국 관계는 옛날 같지 않고 일본 관계는 최악이며 중국 관계는 절벽과 만났다. 정부는 4년 전 '녹색(綠色) 성장'이란 단어가 들어간 간판·명패 수천 개를 떼다 버렸다. '창조 경제'라는 단어도 곧 그 운명을 뒤쫓아갈 것이다. 멀쩡한 정부 부처를 붙였다 다시 쪼개는 일은 한국 풍토병(風土病)이 돼버렸다. 나사 조이는 기술은 세계에서 자기들만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대기업 노조의 천동설(天動說)은 한층 악화됐다.

좌충우돌(左衝右突)하며 험한 세상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비비고 보니 옛날 헤매던 그 부근이다. 영국 동화(童話)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무대는 '죽기 살기로 내달려야 현재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나라'다. 한국이 바로 그런 나라다. 나라 안에 갇힌 사람만 이상한 줄 모른다.

한국이 어떡하다 '죽기 살기로 달려야만 옛 자리라도 지킬 수 있는 병'을 달고 살게 됐을까? 뜻밖에도 한국의 '그대로병(病)' 뿌리는 '바꾸려면 한꺼번에 몽땅 대청소해야 한다'는 오래 내려온 급진적 사고 방식이다.

1863년 고종이 왕위(王位)를 잇고 아버지 대원군이 권력을 쥐었다. 10년 후 대원군이 실각(失脚) 하고 고종이 친정(親政)한 후 첫 조치가 아버지 정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몽땅 뒤집는 것이었다. 강화도 방위를 담당하던 진무영(鎭撫營) 장관이 그 조치가 국방 약화(弱化)를 불러올지 모른다고 바른말을 하자 즉각 파면했다. 그 결과 병인양요(1866년)·신미양요(1871년)의 외침(外侵)을 버텨냈던 강화 요새가 일본 침략(1875년)에 두 손 번쩍 들고 말았다. 어느 외국 연구자는 조선 망국(亡國) 원인의 하나로 이 무참(無慘)한 전(前) 정권 정책 뒤집기를 꼽았다.

한국 대통령의 불행은 헌법과 법률, 제도와 운영 방식, 정치 문화와 관행, 대통령 인격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일거(一擧)에 뜯어고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단번에'가 어렵다면 '단계적으로라도' 가야 한다. 그러나 헌법 개정은 물 건너갔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다. 손을 대려면 이참에 권력 구조만이 아니라 헌법을 두루 손봐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1787년 제정된 미국 헌법은 현재까지 20여 차례 개정(改正)됐다. 대부분 한 번에 헌법 한 조항을 바꾸는 개헌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4회 연임(連任)이 문제가 되자 연임을 두 차례로 제한했다. 국회의원 세비(歲費) 인상은 인상 법률을 만든 의회 임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런 개헌이었다. 투표 연령 인하, 금주법(禁酒法) 조항 삽입과 폐지도 마찬가지다. 개헌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싫었던 것이 유력 후보의 본마음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헌법 개정이 어렵다면 제도와 운영 방식이라도 구멍 난 곳을 수선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통령 얼굴을 비서실장은 1~2주일에 한 번, 경제부총리는 두어 달에 한 번 보는 일이 언제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다. 비서실장이 대통령 곁 문고리들에게 대통령 뜻을 묻고, 민정수석이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을 틀어쥔 채 대통령과 측근 비리를 숨기는 수문장(守門將) 노릇을 할지도 모른다.

지도자와 국민이 '몽땅' '한꺼번에' '후련하게'라는 생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의 '그대로병(病)'은 더 깊어질 것이다. 노조가 나라를 쥐락펴락하던 영국병(英國病)이 영국을 '유럽의 환자'로 만드는 데 15년이면 족(足)했다. '그대로병'이 한국을 '동북아의 환자'로 만드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유럽 환자'는 목숨이 위태롭진 않았다. '동북아 환자'에게도 그런 요행(僥倖)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이 아흔 넘어 정치 인생을 돌아본 옛 서독 총리는 어느 목사님의 기도(祈禱)를 빌려 자신의 책을 마무리했다. '제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마음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둘의 차이를 아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다음 대통령이 어제 이런 기도로 마음을 다스렸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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