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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경하는 인물, 안창호(3)] 김진홍의 아침묵상

鶴山 徐 仁 2013. 2. 1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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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경하는 인물, 안창호(3)

2013-2-9

춘원 이광수 선생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전기를 쓰면서 부제를 붙이기를 <겨레를 깨우친 영원한 선각자>라 표현하였다. 도산 선생에 대하여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우리 근세사에 도산 선생 같으신 선각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도산 안창호(島山安昌浩) 선생은 1878년 대동강 연안 어느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17세 되던 해에 청일전쟁(淸日戰爭)이 일어났다. 청국과 일본이 싸우는데 조선 백성들이 속절없이 당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 소년 안창호는 왜 청국, 일본 외국 군대가 우리 땅으로 들어와 전쟁을 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하였다. 생각 끝에 한 결론을 얻었다.

“타국이 마음대로 우리 강토에 들어와서 설레는 것은 우리나라에 힘이 없는 까닭이다”

이 생각이 도산의 생애를 결정지은 생각이 되었다. 그는 57세에 일본 경찰에게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죽을 때까지 한결같이 생각한 것이 어떻게 하면 겨레의 힘을 기를까를 생각하였다. 그가 다른 선각자들과 달랐던 점은 겨레의 힘을 기르는 방략(方略)에서 달랐다.

같은 시대의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방략에서 여러 가지로 차이가 있었다. 김구 선생은 무력항쟁에서 길을 찾았고, 이승만 박사는 외교로 조선독립을 이루려 하였다. 이승훈 선생이나 조만식 선생 같은 분은 산업을 진흥시켜 겨레의 부력(富力)을 높여 자주독립의 길을 찾으려 하였고 김교신 성생은 바른 종교, 바른 신앙을 길러 민족자주독립의 길을 찾으려 하였다.

그러나 도산 선생은 일관되게 ‘인격의 힘’을 주창하였다. 조선이 진정한 자주 독립국가가 되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인격을 길러 인격의 힘으로 진정한 독립국가를 이룰 수 있다 주창하였다. 그래서 선생은 자신이 먼저 건전한 인격자가 되는 데에 전심을 다하였다. 도산 선생의 생전에 가까이서 모셨던 분들의 말에 의하면 선생은 인격적으로 거의 흠이 없는 어른이었다 한다.

그리고 선생은 함께 인격의 힘을 기르기 위한 신성한 조직으로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를 결성하였고 흥사단(興士團)을 일으켰다. 요즘 들어 너 나 할 것 없이 도덕성이 흔들리고 인격의 힘을 잃은 때에 도산 선생 같으신 큰 어른이 더욱 간절하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