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05 03:02 | 수정 : 2013.02.05 11:05
李 대통령, 퇴임 인터뷰
"다이빙궈 中국무위원이 방북해 통보했다는 사실 내게 알려줘"
이 대통령은 이날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이 이런(연평도 포격 도발 같은) 짓을 하는 건 우리나 미국이 절대 보복을 못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보고 이런 조치를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연평도 도발 당시 군(軍)에 "공군은 뒀다 뭘 하느냐"며 공습을 지시했으나, 군 고위 관계자가 "교전규칙에 따르면 공군이 나서면 절대 안 된다. 미국과도 상의해야 한다"며 막았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 뒤로 교전규칙을 고쳐 현장에서 적극 대응하고, 보고는 나중에 하도록 했다"며 "공격 지원 세력까지 공격하는 (교전) 계획을 세우고 미국에 통보하고 했더니 미국도 처음엔 반대했지만, 강하게 설득해서 이를 관철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임기 중 가장 가슴 아픈 일은 북한의 천안함 공격으로 46용사를 잃은 것"이라며 "젊은 병사들이 억울하게 당했을 때 가슴이 아팠는데, 그걸 자작극이라고 할 때 또 한 번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임기 중 가장 자긍심을 갖는 일로는 "세계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경제 위기 벼락을 맞았을 때 우리만 플러스 성장을 했던 것"이라며 "그걸로 세계가 우릴 인정했고 그것이 우리를 G20 의장국으로까지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 임기 5년 중 가장 가슴 아픈 일로 꼽은 것은 최현묵 기자
- 北, 미국 다급하게 할 '핵탄두 장착 미사일' 4~5년 내에…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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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2.05 03:02
[이명박 대통령 本紙 인터뷰… 퇴임 앞두고 임기 5년의 소회 말하다]
[국민 평가 낮은데…]
"난 세계서 가장 열심히 한 대통령… 억울하단 생각안해
대기업을 바꾸려면 총수 문화부터 바꾸는게 매우 중요"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자신의 재임 기간에 대한 평가에 대해 "두 번의 경제위기를 극복해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국내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나 스스로 억울하다 생각하지 않고, 나 스스로 평가할 때 경제위기를 맞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한 대통령이라는 자부를 갖고 있다"고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먼저 극복했고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우리나라에 대한 신용등급도 일본과 같거나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섰다. 국내에선 이런 부분을 평가받지 못하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하나.
"내가 취임했을 때는 10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던 시점이었다. 우리 정부에서 빈부 격차 개선 성과가 가장 좋고 중산층도 줄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중산층이 계속 무너졌다고 주장한다(이 대목에서 이 대통령은 중산층 관련 수치와 도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이건 정치적·이념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내가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 됐지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지난해 말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한 모임에 가서 예상치 못한 큰 환대를 받았다. 500명 정도가 모여서 정말 반기더라. 지금은 아니더라도 세상의 판단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재임 중 '부자 정권'이라는 말이 계속 따라다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정책을 훨씬 더 신경 쓰고 집중했다. 경제위기 때는 아무래도 실적이 대기업이 훨씬 좋으니깐 (나보고) 대기업 위주로 했다고 한다. 위기 때 대기업을 죽일 건가? 나라를 살려놓고 봐야지. 대기업 정책, 중소기업 정책 다 해야 한다."
―대기업 CEO 출신으로 우리나라 재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볼 땐 대기업 문제는 기업 총수의 문화를 바꾸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청와대에서 회의를 열어 겁을 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선 안 된다. 기업들은 해외로 다 빠져나가려고 하고,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견디자고 해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재벌 총수 12명을 모아 당부했다. 그들에게 하청업체의 대표들을 불러놓고 고맙다고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이해를 시켰더니 여러 대기업에서 납품업자들 불러서 회의도 하고 실질적으로 많이 바뀌었다는 보고를 들었다."
- (왼쪽)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 직후인 2010년 4월‘, 천안함 46용사’분향소를 찾아 헌화한 뒤 돌아서고 있다, (가운데)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0일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처음 독도를 방문한 모습.‘ 한국령’이라고 쓰인 암반 비석을 만져보고 있다, (오른쪽)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친인척 비리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4대강 사업 비판에…]
[Q: 4대강 사업, 한꺼번에 안하고 단계적으로 할 수는 없었나? ]
"다른 지역서 가만있겠나… 단계적으론 50조 들여도 못해"
― 4대강 사업은 꼭 그렇게 임기 중에 한꺼번에 했어야 했나.
"나눠서 하는 건 정치적으로 불가능했다. 민주당에선 영산강을 먼저 하라고 했고 낙동강변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토목, 물 문제와 관련된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 어느 한 곳을 먼저 해서 잘 되면 다른 곳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했으면 정치적 부담도 덜하지 않았겠나.
"4대강에 22조원이 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식(단계적)으로 하면 50조원을 들여도 다 못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비슷한 사업을 추진했었고, 각각 70조원·48조원 든다고 나왔었다. 내가 집권한 초기에 경제위기를 맞았다. 안 그래도 공공근로에 (한 해) 4조~5조원씩 들여야 했다. 그걸 하느니 4대강을 하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 골고루 딱 맞는 거다. 정치적으로도 같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민주당에서도 운하만 아니면 반대 안 한다고 했었다."
―대운하를 못 한 것이 아쉬운가.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강 자체를 생산적인 데 쓰지 않고 하수구처럼 쓰는 나라는 없다. 콩고에 가도 큰 강을 따라 원자재 수송한다. 네덜란드에서 그리스까지 운하를 통해서 가더라. 그래서 운하를 만들면 좋겠다 생각한 거지. 앞으로 어떤 대통령이 당선되고 이 문제에 대한 국민 인식이 달라졌을 때 추진하든가 할 문제다. 내가 이제 와서 뭐라 말할 수는 없다."
―최근 감사원이 4대강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화가 나지 않았나.
"공무원들은 물일(물과 관련된 공사)을 이해 못 한다. 물일은 홍수 한번 만나면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빨리 해야 한다. 감사원에서 환경 하는 사람들은 물일에 대한 이해가 없다. 감사원도 모두 정부 산하인데 내 입장에서 뭐라고 할 수 있겠나."
[사면·측근 비리에…]
[Q: 특별사면 국민 비난 받을것 알면서 왜 했나?]
"임기중 발생 비리 사면않겠단 약속은 지켜"
"먼저 정치한 이상득 의원 출마 막을 수 없어"
―얼마 전 실시한 특별사면은 비판받을 것이 분명하고, 대통령도 그걸 알았을 텐데 왜 했나.
"사실 떠날 때 (마지막으로) 하려고 작년 8·15와 연말 때 사면을 안 했다. (이번 7번째 사면 전까지) 우리 횟수가 6번인가 했다. 보통 (전임 대통령들은) 8~9회 했다. 사면했다는 걸로 욕을 먹지만, 내 임기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는 안 하겠다는 약속만은 지켰다. (이번에) 민간인 사찰, 이런 건 사면 안했다. 최시중씨 같은 사람은 그 (임기 시작되기) 이전의 문제니까. 원칙은 몇 가지 지켰다. 측근 사면이라고 하는데 사실 진짜 측근은 안 했다.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2008년 총선 때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출마를 막았어야 했다는 후회는 없나.
"이상득 의원은 (내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정치를 하고 있었다. 내가 취임하기 전에 이미 국회부의장 하고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다 했는데, 내가 대통령이 된 후에 정치 들어왔으면 모르겠지만, (이 전 의원의 출마가)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이 대통령은 인터뷰 내내 '이상득 의원'이라고 불렀다)."
―임기 중 벌어진 민간인 사찰 문제는 정말로 몰랐나.
"몰랐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정치적 거물을 사찰한 것도 아니고 신문에 난 거 파일링한 거더라. 그런 건 수석이나 실장한테 (보고)할 것도 아니더라. 과거에 하던 스타일대로 한 거다."
['고·소·영' 인사 논란에…]
Q: 첫 수석 전원이 서울·영남, 잘못 아닌가?
"고·소·영 인사라는 비판엔 동의 못해"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강부자'(강남 땅부자)라는 비판이 있다. 첫 청와대 비서진 인선 때는 서울 아니면 영남 출신들만 기용했는데, 지역 안배 같은 고려를 하지 않은 건가.
"나는 지역을 고려해서 인사를 하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난 지방색이 없다. 기업에서 일할 때도 그런 것 따지지 않았다. 언젠가 주요 자리에 4명을 인사하는데 3명이 호남 사람이었다. 그랬더니 (내 얘기를 소재로 했던) 드라마에서 전북 군산 사람으로 나온 것을 가리켜 내가 호남 출신이라는 말이 나오더라. 이 정부에서 전남 출신 국무총리도 처음 나왔고, 전남 출신 국방장관도 처음 나왔다.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동시에 호남 출신인 적도 처음이다. 나는 각자 그 사람의 적성에 맞게 쓸 뿐이다. 인사는 첫째, 능력 위주로 해야 한다. 둘째는 생각이 다르지 않고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과 같은 대학 출신들을 중용했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난 '기왕이면 고려대 출신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지금 농림장관이 고대 출신인데, 난 거기 나온 줄 몰랐다. 내 인선이 '고소영'이란 주장은 좀 억지라고 본다."
―대통령 5년을 하고 나서 보니 지역 안배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됐는가, 그렇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도 안 된다고 본다. 처음 당선된 직후에는 우리한테 자료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씨가 '모든 자료를 대통령 기록원에 넘겼다'고 하더라. 정말 막막했다. 지금은 2만명에 대한 자료가 있다. 이를 다음 정부에 모두 넘겨줬다."
[내곡동 사저 의혹에…]
Q:퇴임 후 사저 꼭 서울이어야 했나?
"경기도 땅도 찾아 헤맸다고 들었다"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은 특검 수사까지 이어졌다. 서울이 아닌, 서울 근교 경기도에 사저 부지를 매입하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나.
"경기도에서도 땅을 많이 찾아봤다. 경호처에서 경기도 일대를 헤매지 않은 데가 없다. 그곳도 땅값이 비싸더라. 그리고 경호처 사람들은 경호상 문제가 없는 땅을 우선해서 찾은 것이다. 난 사실 고향 같은 논현동 (자택으로) 가고 싶었지. 거기서 CEO (최고경영자)도 되고 서울시장도 되고 대통령이 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경호처가 경호상 이유로 반대해서 다른 곳을 찾았다."
―내곡동 사저 부지를 본인 이름으로 구입하지 않았는데….
"(경호처에서) 대통령 이름으로 하면 주변 땅값이 올라 구입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역대 대통령들이 그렇게 했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아들 명의가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살 수 있지 않았나.
"내 생각엔 건축 허가를 받으면 어차피 내 이름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들(시형씨)에게 재산으로 물려줄 것도 아니고, 내가 평생 죽을 때까지 살 집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