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OECD 10개 국가의 평균을 상회하는 분야가 딱 두 개 있는데, 바로 사이언스와 테크놀로지죠.
이 두가지가 앞으로 저런 상대적인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교육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되요. 요즈음 이공계 교수들이 한숨을 푹푹 쉬고 있어요.
학생들이 안 오기 때문이에요. 1970년대, 1980년대 학교는 전자공학과, 유전공학과 이런 데로 학생들이
모였어요. 그 힘으로 지금 버티고 있는 거예요. 줄기 세포? 다 그때 들어갔던 학생들이 버티고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안 와요. 개점휴업은 아니지만, 우수한 학생들이 전부 빠져나가요. 행시나 외시, 아니면 대기업
으로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이언스와 테크놀로지 우위를 유지하려면 그쪽 학과에 특혜를 줘라.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아주 똑똑한 학생들이 다 뭐 하느냐? 법대나 의대 가요. 아주 괴로워 죽겠어요.
이렇게 쏠리는 현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분산이 안 되거든요.
공대 학생들, 저는 과감하게 군대 특혜 줘야 한다고 봅니다. 방위산업체 가서 한 2년만 있어라.
그런데 시민의 사회 정의 개념에 비추어서 절대로 용납되지 않죠.
한국의 정의 개념이 조금 바뀌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이게 다 사회 제도입니다.
제도가 개선 되지 않으면 한국이 앞으로 2만달러, 3만달러 시대로 가는 데 걸림돌이 많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역사적 소명이 뭐냐? 지난 6월 25일 대통령 앞에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20년 동안 정치 민주화 됐으니까 앞으로는 사회 민주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사회 정의라는 개념이 세워지고 잘하는 데 끌어주고 못하는 데 밀어 주는 제도를 만들어 내야 앞으로 경제가
발전합니다. 뒤에서 제도를 만들어 경제 동력을 생산할 아이디어를 한번 짜주십시오"
사실 제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참 어려운 얘기죠. 지난 3년 반동안 사회 영역에서의 정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
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 말씀드린 서울시장 보궐 선거와 같은 투표 현상이 일어난 거거든요.
이른바 시민 봉기죠. 우리나라 정치 역사에서 집권 여당과 시민운동이 맞붙은 적이 없어요.
그야말로 초유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시민운동이 이겼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한국은 어떤 습성을 갖고 있는가? 인류학적, 사회학적 관찰이 필요해요.
어떻게 살아왔는지 관찰하지 않으면 잘 들여다볼 수가 없거든요. 제가 보기에도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참 독특한 민족이에요. 단일 민족이 아닙니다. 단일 민족은 개화기 때 만들어진 거예요.
우리 한반도에 살고 있는 인종이 얼마나 될까요.? 누구는 45개라고 하고, 훨씬 더 과격한 분은 251개 인종이라
고 예기해요. 지금부터 1만 년 전으로 한번 돌아가 보자고요. 1만년 전 원시인 이었을 때 아직까지 동토에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해가 뜨면 본능적으로 해 뜨는 쪽으로 이동하게 돼요. 그러면 서쪽에 있는 사람들이
동쪽으로 올 거 아니에요. 동쪽으로 몇천 년에 걸쳐 오겠죠. 그러다가 따뜻한 데를 찾아서 남쪽으로 이동해요.
수천 년에 걸쳐서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남쪽으로 이동했는데 제일 마지막에 도달한 곳이 어디냐? 한반도예요.
무조건 내려와 겹겹이 쌓여서 수천 년을 살아왔어요. 이게 지금 한민족이에요. 그래서 고향이 다 다릅니다.
단일 민족이라는 개념은 신채호 선생이 만들어 냈어요. 하나로 뭉치게 하려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굉장히 많은 인종이 섞여 있습니다. 잡종 강세예요. 그래서 머리가 무지하게 좋아요.
그런데 경쟁 밀도가 전 세계에서 넘버 원 아니면 투예요. 그래서 항상 긴장하고 살아요.
긴장하고 살기 때문에 혁신을 자꾸 해내는 거죠. 거기다가 주위의 4대 강대국이 호시탐탐 노려 왔잖아요.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것인가? 한국은 내부에서 정치적인 갈등도 많고 사회적인 갈등도 많지만 위기 때 잘
뭉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DNA가 그걸 시키고 있어요. 문화적인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낙관적으로 생각해요. 우리의 습속이 뭐냐? 일본과 한번 비교해 보세요.
일본하고는 너무나 다르죠. 일본은 너무 깨끗하고 너무 조용하고 질서 정연하고 사람들이 예의 바르잖아요.
너무 놀라운 건 지난번 쓰나미 때 였어요. 자기 가족이 다 떠내려갔는데 리포터가 카메라를 들이대니까
"잠간 기다리십시오" 하더니 몸 매무새를 딱 갖추고 꿇어앉아 인터뷰에 응하잖아요. 눈물도 안 흘리고.
우리 같으면 어떨가요? "지금 말이야, 때가 어느 때인데 카메라를 들이대!" 라며 난리를 쳤을 거예요.
우리는 우리를 주장하는 데 굉장히 강합니다. 우리를 주장하고 드러내고 있어요. 그런데 일본은 감추잖아요.
아무턴 바깥에 대해, 타인에 대해, 이웃에 대해 예의라고 해야 되죠, 염치를 딱 차립니다.
이것이 일본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일본이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좋아 보이긴 하는데 문제가 참 많아요.
일본이 왜 그러냐? 일본인은 공동체와 의리를 중시합니다. 아이가 태어나 평생 듣는 얘기가, '남한테 폐
끼치지 마라'예요. 우리나라 아기가 듣는 얘기는 '가문의 영광을 빛내 주겠니' 뭐 이런거 아니겠어요?
남과 더불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없잖아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일본 사회와 한국 사회 습속의 가장 기본적인 차이예요.
일본 사람들은 의무(義務)에 무지하게 약합니다. 우리는 반대죠. 이 무시무시한 공동체의 힘이 일본 경제를
만들어 냈어요. 도요타가 그렇고 소니가 그래요. 1980년대 중후반까지 말이죠.
그야말로 공동체 정신으로 만든 게 일본 경제입니다.
그런데 이 경제 구조가 1990년대부터 뭘로 전환하느냐? 개인적인 자기로 전환했어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스티브 잡스를 봐야 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일본은 안 나와요. 일본은 하모니잖아요.
꿈쩍도 안 하고 협연을 해서 '불량 제로' 물건을 생산해 냈는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일본 경제가 저렇게 된 거예요. 일본 경제 규모가 워낙 커서 쉽게 하강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개인이 주장하는 시대로 전환했기 때문에 지금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해 가고 있어요.
조선시대에 왕이 거동하면, 한양 시민이 다 나와서 꽹과리 치고 놀고 노래하고, 엿장수 물장수 다
나왔잖아요. 저기 창덕궁에서부터 시작해 안국동을 거쳐 종로 거리로 해서 경복궁 앞으로 가요.
가마를 타고, 신료들이 뒤따르고 도승지가 따라 나오죠. 그런데 그야말로 하루 종일 걸립니다.
왕 앞에 엎드려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아서이지요. 우리나라의 전통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은 주장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허용해요. 일본은 어떠냐?
일본은 쇼군이 행차할 때 우리처럼 꽹과리 치고 고개 들고 한마디 했다가는 바로 목이 날아갑니다.
전부 엎드려 있어요. 어느 날 쇼군이 행차를 하는데, 한 사람이 뛰어들었어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에 사무라이가 목을 치려는 순간 쇼군이 "기특하다. 한번 들어 보자"
라고 했어요. 애석하게도 그 내용은 전해지지 않아요. 사무라이들이 그놈을 심문했답니다.
"어디서 왔는고?" 그랬더니, "임진왜란 때 잡혀온 조선인의 후예입니다."이러더랍니다.
그런 일이 일본 역사에서 딱 한 건 나옵니다.
♣ 송호근 지음 "일생에 꼭 한 번은 들어야 할 『명강』 에서 ♣ 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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