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4조 받은 은행들, 빚 안 갚고 연봉 타령
입력 : 2011.10.13 03:02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 - 3년 전 금융위기 때 빌려간 돈
"사정 안 좋다" 3분의 1만 상환… 1조원 순익에 "임금 8% 올리자"
후진국형 이자놀이 하면서… - 수익 86%, 예대마진에 의존
해외수익 비중은 1.4% 불과… GDP 대비 연봉, 美보다 높아
요즘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요란한 운동권 가요가 흘러나오는 천막을 지나쳐야 한다. 9월 초부터 은행 노조가 상반기 순이익(1조5749억원)이 많이 났으니 직급별로 100만~600만원의 성과급을 달라고 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국내 은행들이 20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고의 순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자, 노조가 8%대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일부 은행 경영진은 주주 배당을 더 늘리겠다는 의사를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3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정부에서 약 4조원의 공적자금(자본확충펀드)을 지원받아 아직도 2조6530억원을 갚지 않고 있는 상태다. 손실이 나면 공적자금을 받아 버티고(손실의 사회화), 수익이 생기면 은행원과 주주들이 먼저 챙기는(이익의 사유화) 구태가 또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은행노조, "임금 8% 인상해야"
은행노조들의 대표인 금융노조는 최근 노사 협상에서 "2008년 20% 삭감했던 신입 은행원들의 초임 연봉을 원상 복귀하고, 일반 은행원 연봉을 8% 인상하지 않으면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
-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그러나 금융계 내부에서조차 은행 노조들이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외환위기 후 반복되는 은행 인수합병 과정에서 경영진이 연봉을 미끼로 강성 노조와 타협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내 5대 은행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5만1209달러(5950만원)였다. 표면상으로는 미국 은행원들 평균 연봉(10만4000달러)의 절반이지만, 국민소득(GDP) 대비 연봉은 국내 은행원(2.46배)이 미국 은행원(2.22배)을 앞지른다. 최근 일부 은행에서 주주 배당금을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시중은행장들을 불러 "순이익을 내부 유보하거나, 사회공헌 활동에 쓰라"고 당부했다. 국내 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60% 안팎이어서 고(高)배당시 외국인들이 더 이득을 본다.
◇빌린 공적자금 갚지도 않고, 수익만 챙겨
시중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정부에서 총 3조9560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은행의 자본금을 늘려주려는 목적으로 한국은행과 산업은행이 만든 20조원 규모의 자본확충 펀드에서 빌려간 돈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아직도 빌려간 돈의 67%를 갚지 않고 있다. 농협은 7500억원 중 한 푼도 갚지 않았고, 국민·우리은행도 9월 말 현재 안 갚은 공적자금이 각각 6000억원, 7000억원에 달한다. 시중은행들은 올 상반기에만 1조원대의 순이익을 냈음에도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다"는 이유로 공적자금 상환을 내년 이후로 미루고 있다.
◇국내 은행, 국제경쟁력 빈약
은행의 막대한 이익도 경쟁력 덕분이라기보다 단순한 금리 따먹기(대출금리-예금금리)의 결과라는 점에서 자랑할 만한 게 못된다. 은행 면허(license)만 있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수익이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들은 선진국 대형은행과 달리 수익의 대부분을 예대마진에 의존하고 있다. 국제 은행 통계사이트인 뱅크스코프(Bankscope) 자료에 따르면, 국내 18개 은행의 이자이익 비중은 86.5%(2011년 상반기 기준)에 이른다. 반면 JP모간체이스는 이자이익이 45.7%,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58.2% 수준이다.
국내은행들의 예대마진(대출과 예금이자의 차이) 평균치는 2008년 2.61%에서 2010년 2.85%, 올해 6월 말 현재 2.91%까지 올라 이자수익 의존도가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예대마진이 0.1%포인트 오르면, 국내 은행들은 1조2000억원가량을 더 번다.
국민소득 대비 국내 은행원 연봉 배율은 선진국과 비슷하지만, 국내 은행 수익구조는 지극히 '후진국형'이다. 국내 3대 은행의 해외수익 비중은 1.4%(2010년 기준)에 불과한 반면 스위스(66.3%), 영국(57.4%), 스페인(53.3%) 은행들은 수익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Copyright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