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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법정이야기] 끊이지 않는 미스터리 사건, 有罪인가 無罪인가/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1. 10. 12. 10:34
사설·칼럼

[최원규의 법정이야기] 끊이지 않는 미스터리 사건, 有罪인가 無罪인가

입력 : 2011.10.06 23:32

최원규 사회부 차장

지난달 21일(현지시각) 미국의 흑인 사형수 트로이 데이비스는 침대에 묶여 있었다. 사형 집행을 위한 독극물 주사가 그의 몸속에 주입되기 직전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가 한마디 유언을 남겼다. "나는 결백하다."

그는 1989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경찰관을 권총으로 쏴서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증거물인 권총을 확보하지 못한 경찰은 증인들을 내세워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증인 가운데 일부는 "경찰이 강압적 분위기로 수사했다"며 증언을 뒤집었다. 곳곳에서 구명운동이 벌어지면서 조지아주 정부는 그의 사형 집행을 네 번이나 연기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이례적으로 그에게 무죄를 증명할 재판 기회를 줬다. 그 재판에서 연방대법원이 "판결을 뒤집을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주 법원의 판결을 인정함에 따라 이날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데이비스는 교도관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서도 "나는 총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죽음 앞에서 사람은 정직해진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무죄인가 유죄인가.

1961년 4월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인 황윤석(당시 34세) 판사가 그의 방에서 남편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부부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남편만 깨어났다. 한국 첫 여성 판사의 변사 사건으로 세상은 시끄러워졌다. 경찰은 부부가 감기약을 두 알씩 먹었는데 부인만 죽었고 남편은 부인과 함께 병원에 실려갔을 때 혼수상태를 가장했다며 타살을 의심했다. 황 판사는 남편·시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황 판사의 남편이 사건 당일 신속히 아내를 병원으로 옮기지 않아 죽음을 방치했다며 유기치사 혐의로 남편을 기소했다. 1심은 유죄였으나 2심은 무죄였다. 남편은 풀려났고, 사건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황 판사의 죽음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2003년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현 민주당 의원)의 현대비자금 150억원 수수 혐의가 대북송금 특검팀에 포착됐다. 이익치현대증권 회장은 특검에서 "2000년 4월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양도성예금증서(CD) 150억원을 받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던 박 장관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특검은 미국 시민권자인 무기거래상 김영완씨가 이 CD를 세탁한 사실을 포착했으나, 김씨는 출국한 상태였다. 특검 기간이 연장되지 않자 특검은 박 전 장관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등으로만 기소하고, 사건을 대검 중수부로 넘겼다. 그해 8월 정몽헌 회장이 갑자기 자살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했으나 검찰은 해외에 있던 김씨로부터 "박 전 장관에게서 150억원의 CD를 받아 관리했다"는 자술서를 제출받았다. 검찰은 박 전 장관에 대해 뇌물혐의를 추가해 기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6년 9월 이 사건의 무죄를 확정했다. "이익치·김영완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검찰은 당시 150억원 중 120억원을 압수해 은행 보관금 계좌에 넣어두었다. 뇌물 사건에서 압수한 돈은 무죄가 선고되면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선 관련자들이 서로 "내 돈이 아니다"고 주장하면서 돈이 허공에 떠버렸다. 박 전 장관은 돈 받은 사실을 부인했고, 김씨는 "돈 관리만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올 초 이 돈을 국고로 환수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아직 처리 방법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범행은 있는데 범인이 없는 150억원의 실체는 대체 무엇인가.

미스터리 사건을 접할 때마다 형사재판의 한계를 떠올리게 된다. 수사와 재판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 완벽할 수는 없다. 억울하게 수감되거나 사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무죄 추정을 받는 게 현대법의 기본원리다. 우리 헌법에도 규정돼 있다. 반면 죄를 지은 사람도 이 원칙에 기대거나 교묘한 진술로 판사의 판단을 흐려 죗값을 치르지 않을 수 있다.

판사들 사이에선 "민사재판은 머리가 아프고, 형사재판은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이 있다. 돈 문제가 얽힌 민사재판은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진실을 밝히기 어렵고 안타까운 사연이 많은 형사재판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는 판사들의 토로(吐露)다. 얼마 전 옷을 벗은 한 고위법관은 1심 재판장 때 유죄를 선고하면서 피고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지만 혹시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항소해 보기 바랍니다."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정말 솔직한 말일 수 있다. 형사재판에서 오판(誤判) 가능성은 늘 상존하기 때문이다.

판사의 영원한 숙제는 오판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유죄를 속단해서도 안 되지만, 진술이 조금 흔들린다고 무죄에 쉽게 기대서도 안 된다. 미스터리 사건은 판사들에게 더 겸손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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