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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 칼럼] 김흥국씨의 퇴출과 삭발/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1. 6. 25. 00:21
사설·칼럼
최보식 칼럼

[최보식 칼럼] 김흥국씨의 퇴출과 삭발

입력 : 2011.06.23 23:40

최보식 선임기자

김흥국이 타깃 된 건 한나라당 쪽이기 때문, 반대 진영에 있었다면 '개념 연예인' 대접받고 구명 촛불시위 이어졌을 것

모자를 벗으니 빡빡머리였다. 가수 겸 방송인 김흥국씨는 "흥국사의 나비스님(그의 히트곡 '호랑나비')이 됐다"며 겸연쩍어했다.

그는 MBC 라디오 프로 '두시 만세'에서 퇴출됐다. 방송사에서는 "김흥국씨가 일신상 사유로 물러난다"고 보도자료를 돌렸다. 그런데 그는 "억울하다"며 방송사 앞에서 닷새간 1인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때 삭발했다.

그의 퇴출 이유는 이미 밝혀졌다. 지난 4·27 재·보선 당시 정몽준 의원이 불러서 경기도 분당의 조기축구회원들과 축구를 했기 때문이다. 봄 프로그램 개편 때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정 의원과의 그런 관계는 만천하가 알고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문제가 된 것은 파업 중인 MBC 노조가 "김흥국은 되고 김미화는 안 되느냐"고 뒤늦게 떠들면서였다. 회사측에서는 "자칫 빌미가 잡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을 것이다.

현재 방송에 출연 중인 연예인 중에는 선거유세를 따라다닌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대선 때면 편을 나눠 "우린 의식 있는 딴따라, 저쪽은 의식 없는 딴따라" "서로 종자가 다르다"며 갈라선다. 이런 풍토에서 어느 날 김씨가 '한나라당 연예인 대표'로 찍힌 것이다.

연예인도 정치적 성향과 입장이 있다. 정치활동을 못할 이유가 없다. 방송의 신뢰와 공정성만 해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MBC 방송 강령에는 '방송 내용을 통해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반대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김씨가 오락노래 프로에서 그렇게 했을 리는 없다. 실제 방송 진행에서는 그 연예인이 어떤 편향적인 이미지를 주느냐가 더 중요하다. 시청자들이 방송 속 그를 보는 순간 연예인에 앞서 특정 정파와 이념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그렇다.

김씨가 선거 때 한나라당을 위해 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정치 연예인'을 떠올릴까. 머리에는 든 게 없는 것 같고 가끔 단순한 말도 실수한다. 가수인지 코미디언인지 불분명하지만, 축구에 미쳤고 해병대 30개월 근무한 걸 지금까지 우려먹는다. 서민들에게는 만만하고 친숙한 '코털 아저씨'쯤 된다. 이런 그가 '정치 연예인'으로 찍혀 오락노래 프로에서 잘린 것은 어쩌면 희극이다. 김미화씨처럼 '시사프로'도 못 되고.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걸 이렇게 표현했다. "으아, 내게 한번 들이대 주세요."

김씨가 타깃이 된 것은 어쩌면 '한나라당 쪽'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반대 진영에 있었다면 이런 횡액을 결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일 촛불시위가 벌어졌을 게 틀림없다. 방송 퇴출을 특정 정치 현안에 개입하거나 어떤 편향적 이미지로 정한다면 그의 순위는 한참 뒤로 밀릴 것이다.

아마도 방송인 김제동씨부터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는 홍대 청소노동자 해고 항의시위에 개입하고, 반값등록금 시위는 500만원을 내면서 지지하고, 제주도 해군기지 설치 반대에도 뛰어들었다. 사회현안에 대한 관심 폭이 그렇게 넓다. 야당의 맨 앞줄에 선 것처럼 자신의 정치성향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는 '개념 있는' 연예인으로 대접받지, 김흥국씨처럼 단번에 퇴출 통보를 받지 않는다.

김제동씨 못지않게 열성인 배우 김여진씨도 방송 활동을 한다. 처음 그녀 이름이 들릴 때 대체 누구인가 싶어 사진을 찾아봤다. 그녀가 무슨 작품에 출연해 어떤 연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시위 현장에 들어갔다가 경찰에 체포된 것은 안다. "연예 뉴스에 한 번도 못 나오는 대신 9시 뉴스에는 매일 나온다"는 지적은 본업이 배우라면 그냥 무시할 일은 아니다.

김흥국씨의 퇴출이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희생양이라는 것일 뿐, 진짜 '정치 성향'의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퇴출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2년 전 김제동씨가 KBS 2TV '스타 골든벨' 진행자에서 하차했을 때, 조선일보는 '개그맨 김제동씨에게 다시 마이크를 쥐여주라'는 사설(2009년 10월 13일)을 썼다. 김제동씨가 정치적 이유로 잘린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방송 속의 그에게서 시청자들이 편향 이미지를 느끼지 않는 한, 그의 정치 성향만으로 퇴출돼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 생각이었다. 더욱이 오락프로그램이다.

연예인이 사회적 이슈마다 뛰어들거나 정치 행위에 열중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금방 매스컴을 더 끌지는 모른다. 어떤 영향력은 세질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잃을 게 더 많을 것이다. 만인(萬人)의 사랑을 받는 것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유능한 배우 문성근과 명품 조연 명계남을 잃었으며, 한때는 친근했던 김제동씨도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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