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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목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교사가 됐다.21년간 학생들의 말 한 마디에 반응하며,가르치고 시간을 보냈다”며 “어느날 정치할 기회가 왔다.교사가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겠냐고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결국 운명처럼 받아들였고,지역선거에 출마해 열심히 했고,또 낙선했으며 다시 기회가 주어져 상원의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선택의 순간을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고 ‘소명’으로 요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번 째는 차세대에 대한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그는 강조했다.“캐나다에 이민한 부모님들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우리가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희생했다.이제 우리도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인가를 줘야 할 책임이 있다”며 “1.5-2세들은 철이 좀 늦게 들긴 하지만 국제화 마인드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 우리 세대보다는 낫다”고 평가했다.
마틴 의원은 “우리는 차세대들에 성공한 것만 물려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못한 것들,실패한 것 등 모든 것을 솔직하게 전해줘야 한다”며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이 꿈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하고,꿈을 키워주는 것이 1-1.5세들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꿈이 있었지만 부모님들이 원하는 변호사,의사 등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억지로 공부하며 고생을 했다.나도 불어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교사가 됐다.당시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했더라면 상원의원의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상원의원이 된 뒤 그는 후배들에게 자연스럽게 멘토가 되고 싶어 ‘캐나다 코리안클럽’을 결성했다.그는 “내가 한인들로부터 지원을 받았듯이 나도 1-1.5세들을 후원할 것”이라며 “상원의원으로 캐나다 전역을 순화하면서 이런 클럽을 많이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세대들의 정치력 향상을 위해 선거 참여를 강조했다.마틴 의원은 “책임있게 투표하는 것은 차세대들의 터전과 미래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선거 결과는 곧 한인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기준이 되고,수단이며 힘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차세대들의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각국에서 활약하는 한인들을 초청해 조직화하는 행사를 다양하게 끌고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마틴 의원은 “성공과 실패는 혼자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나눠야 한다”며 “이번 행사 기간에 참가자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면서 우리가 한국과 거주국 나아가 차세대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공유했다”고 전했다.
결국,정치는 ‘봉사’로 귀결된다고 결론짓는다.그는 “상원의원실에 들어가면 모자를 쓴다.그 순간부터는 인종,성별,배경 등은 필요가 없고,모두가 평등하다.남는 것은 어떻게 국민을 위해 봉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라며 “나를 벗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정치”라고 정의를 내렸다.
한국과 캐나다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상생 발전하도록 디딤돌이 되겠다는 취지의 단체인 한국-캐나다의원친선협회 공동회장인 그는 최근 양국 간 오픈스카이 협정 체결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15일 한인문화의 날 참석차 캐나다로 돌아갈 마틴 의원은 서울 출생으로 7세 때인 1972년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이민해 밴쿠버에 정착했다.그는 1987년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졸업 후 상원의원에 지명되기 전까지 번바이고등학교,포트 무디중학교 등에서 영어,사회,불어교사로 활동했다.2003년 C3(Corean,Canadian,Coactive society) 커뮤니티(www.c3society.org)를 창설해 봉사활동을 펼쳐온 그는 1990년 더그 마틴 씨와 결혼해 슬하에 딸 키아나를 두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