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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시베리아 톰스크의 한 유전 시설에서 밤에도 불을 환하게 켠 채 정유작업이 한창이다. photo 로이터
- 석유정치학은 중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옛 소련 해체 이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약화됐던 러시아는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무기로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중국이 소비한 석유의 10%를 공급했다. 유럽 국가들의 주요 에너지 공급처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위상과 관련, 국제 질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곳이 바로 중앙아시아다. 미국은 소련의 붕괴로 중앙아시아가 무주공산이 되자 발빠르게 이 지역에 진출, 지배력을 강화해왔다. 중앙아시아는 카스피해를 비롯해 국명에 ‘스탄(땅이라는 뜻)’이라는 단어가 붙은 국가들이 있는 곳으로 중동에 이어 제2의 에너지 보고이다. 미국의 전략은 이 지역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킨다는 명분으로 ‘색깔 혁명’을 통해 독재정권을 붕괴시키고, 자국의 이익을 담보할 수 있는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의도는 이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동북쪽으로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남서쪽으로는 이란과 이라크를 통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이런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최악의 독재자라는 말을 듣는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자국의 하나바드 공군기지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아예 러시아와 상호군사보호조약을 맺었다. 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 공군기지도 현재 철수와 주둔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러시아, 중국 등 상하이협력기구(SCO) 6개 회원국은 지난해 8월 정상회담에서 키르기스스탄에 주둔 중인 미군의 철수를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특히 미국에 치명타를 가한 것은 러시아와 이란의 관계 강화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6일 러시아 지도자로서는 64년 만에 처음으로 이란을 공식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은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란의 평화적 핵 개발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카스피해 5개 연안국 정상들과도 회담을 갖고 카스피해에 매장된 원유, 가스 등 에너지 자원과 역내 통행권리에 대한 25개 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성명은 특히 러시아·이란·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 등 카스피해 5개국만이 카스피해 항행권과 자원이용권을 갖고 있으며, 다른 나라가 군사적 목적으로 카스피해 영역을 이용하는 것을 불허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카스피해의 석유를 지중해로 실어 나르는 BTC 송유관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미국은 또 이란 핵 시설을 공격하기 위해 아제르바이잔에 공군기지를 확보하려고 노력해왔다.
부시 대통령은 러시아와 이란, 카스피해 연안국들의 공동성명이 나온 다음 날 백악관 기자회견을 통해 “제 3차 세계대전을 피하기 위해서는 세계 지도자들이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강경 발언은 바로 중앙아시아의 지배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쇠퇴를 우려한 위기의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이 제시했던 ‘러시아-이란-중국’의 반미 동맹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중앙아시아의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물량공세를 펴고 있다. 중국은 특히 이란의 유전 개발에 10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에너지 소비량을 충족시켜야 하는 중국으로선 미국이나 러시아보다 더욱 절박한 상황이다. 중국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SCO를 구축한 것도 에너지 확보 경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이란 제재에 반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러시아-이란-중국’이란 반미의 축이 석유를 매개로 형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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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두번째)이 카리브해 연안국 정상들과 함께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photo 로이터
- 국제질서의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이란과 마찬가지로 눈엣가시이다. 미국은 중남미에서 반미 좌파의 기수를 자처하는 차베스 대통령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베네수엘라가 보유한 막대한 석유 때문에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은 1990년대 세계화의 기치를 내세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에 끌려다녔다.
베네수엘라 등은 이들 기관의 경제 개방·민영화 요구에 따라 석유기업과 유전개발권을 다국적기업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남미 각국에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원 민족주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유전의 국유화를 선언하고, 엑손모빌 등 다국적기업들에 내주었던 유전개발권을 되찾았다.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7월 이들 다국적기업들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볼리비아 등 좌파들이 집권한 국가들도 베네수엘라처럼 자국의 권리를 다시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은 오히려 새로운 유전 개발에 참여하기 위해 중남미 국가들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됐다. 세계화도 자원 민족주의와 석유의 힘 앞에 무릎을 꿇은 격이다. 지난해 12월 9일 베네수엘라의 주도로 남미은행이 출범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석유를 무기로 반미 전선을 확대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쿠바 등 카리브해 연안의 15개국과 ‘페트로 카리브(petro-caribe) 동맹’을 맺고 이들 국가에 석유를 싼 값에 공급해주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를 두고 “원유의 새로운 지정학적 구조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쿠바는 현재 베네수엘라로부터 하루 9만2000배럴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데 대금 가운데 상당부분을 베네수엘라에서 파견한 의사를 중심으로 한 3만6000여명의 용역서비스로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국제 유가 급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자원 민족주의라는 사실이다. 석유를 무기로 국력 신장이나 국제사회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자원 민족주의가 고유가를 부추겼다는 말이다. 차베스 대통령이 “앞으로 몇 년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베네수엘라의 영향력 확대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차베스 대통령은 석유정치학을 가장 적절하게 이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유가 100달러 시대에서 국제질서의 가장 큰 변화는 에너지 확보를 위해선 친구와 적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또 아프리카와 북극 등 미개발 지역을 놓고 열강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포용하려는 인도는 에너지가 풍부한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지난해 11월 모스크바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에너지와 군사, 우주 및 통상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경제발전을 위해 에너지가 절실하게 필요한 인도로선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와의 유대 강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인도는 올해를 ‘러시아의 해’로, 러시아는 2009년을 ‘인도의 해’로 각각 선포하는 등 우호관계를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인도는 오는 2월 러시아와의 원유 및 가스 탐사, 채굴, 수송, 정제 등 에너지 분야에서구체적인 협력 청사진을 마련키로 했다.
또한 인도는 중국·미국의 압력을 무시하고 이란은 물론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인권탄압과 대량학살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는 수단과 미얀마 등과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월 7일부터 11일까지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4개국을 순방하는 등 에너지 외교에 나섰다. 중국의 적극적인 아프리카 진출에 자극 받은 미국은 지난해 아프리카사령부(AFRICOM) 창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대응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도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 최근 에너지 확보 경쟁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은 북극이다. 지구온난화로 북극해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최악의 기후조건으로 개발이 지연돼왔던 북극에 대한 각국의 야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러시아가 지난해 8월 심해잠수정을 이용, 수심 4000m가 넘는 북극해 해저를 처음으로 탐사한 후 자국 국기를 꽂자, 캐나다와 덴마크 등도 북극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대규모 탐사대를 보냈다.
미국도 이에 질세라 역시 북극해에 대한 자국의 영역표시작업에 착수했다.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자칫 북극에서 외교 및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석유정치학의 대가인 대니얼 예르긴 미국 케임브리지 에너지개발협회 회장이 “석유가 새로운 국제질서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듯이 국제질서는 이미 에너지 패권 경쟁시대로 접어들었다.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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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11월 O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 사우드 알 파이잘 왕자. photo AP
- ‘2012년 1월. 미국은 이미 오래전에 바그다드를 떠났고 이라크는 시아파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다. 이란은 핵 보유국이 됐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가를 붕괴시키고 이슬라미야라는 국가를 수립한다.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아직 친서방 국가로 남아 있다. 이때 워싱턴의 정보 전문가들은 중국이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과거 사우디 영토에 비밀 미사일 기지를 건설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펜타곤의 주전론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 보유지역을 둘러싼 마지막 승부를 위해 핵무기를 투입할 계획을 세운다.’
- 잘 알려진 리처드 클라크 전 미국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이다. 클라크 전 보좌관은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과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의 대테러정책 수립에 관여했고,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에 이어 2003년까지 부시 대통령 밑에서도 백악관 테러 담당보좌관을 지냈다. 클라크 전 보좌관은 이 소설에서 이라크전쟁으로 석유와 우방을 모두 잃게 된 미국이 석유를 놓고 중국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2008년 새해 벽두부터 ‘유가 100달러 시대’를 맞고 있는 지구촌은 힘의 이동(Power Shift)을 실감하고 있다. 고유가에 따른 국제질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지위는 앞으로 더욱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약 20분의 1이다. 하지만 미국은 전 세계 산유량의 4분의 1을 소비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원유의 53%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석유에 대한 대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미국으로선 석유 확보가 외교·안보정책의 제1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세계전략이 에너지에 좌우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중동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른바 ‘카터 독트린’이 미국 역대 정권에서 유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80년 당시 “페르시아만을 장악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미국의 사활적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될 것”이라면서 “미국은 군사력을 포함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통해 격퇴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 같은 카터 독트린은 석유정치학(petro-politics)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당연하다. 유가 100달러 시대를 맞아 석유정치학은 더욱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부시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지난 1월 9일부터 16일까지 중동 순방에 나선 것도 석유정치학적 관점에서 볼 때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라크전쟁에서의 실패를 만회하는 동시에 눈엣가시인 이란의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다. 석유 매장량 세계 4위인 이란이 핵무기까지 보유한다면 미국의 중동 지배력은 급속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란이 석유 수출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가뜩이나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국제유가는 천정부지로 상승할 것이다.
- 석유를 둘러싼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를 그린 소설 ‘전갈의 문(The Scorpion's Gate)’의 줄거리이다. 저자는 9·11 테러 이전부터 알 카에다의 위험성을 경고했다가 묵살 당한 것으로 이라크전쟁이 시작될 때만 해도 국제 유가는 배럴당 27달러였다. 미국 케임브리지 에너지개발협회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5달러 오를 때마다 이란의 수입은 매주 8500만달러 증가한다. 이란은 지난해 중국이 소비한 석유의 11%를 공급했다. 미국의 일부 강경파는 이란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주장하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가 이란에 대한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국제정치의 역학관계에서 ‘석유의 힘’이 갈수록 위력을 떨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석유의 영향력은 컸지만 지금은 석유라는 변수가 국제 정치의 지형 자체를 바꿀 만큼 파괴력이 커지고 있다.
석유정치학적 측면에서 볼 때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힘도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세계에너지전망 2007’ 보고서에 따르면 OPEC 13개 회원국의 전체 원유생산 비중이 현재 42%에서 2030년에는 52%로 높아질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비(非)OPEC 국가들의 원유생산량은 지금보다 7% 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하루 원유생산량 8480만배럴 중 3360만배럴을 OPEC이 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의 경우, 전체 석유 수입의 절반을 OPEC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세계 2위 소비국인 중국도 전체 원유 수입량의 45%를 OPEC에서 들여오고 있다. 어찌 보면 OPEC이 미국과 중국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최근 석유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도 사우디가 석유를 전량 공급하겠다고 약속하자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상하이증권보 2007년 11월 16일자) 중국은 사우디로부터 전체 원유 수입량의 14%를 공급받고 있다. 현재로선 OPEC 13개 회원국 가운데 반미 국가가 이란과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정도지만 OPEC의 행보에 변수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양국이 OPEC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도 국제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각국이 석유 확보를 위해 OPEC 회원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OPEC의 영향력이 앞으로 계속 확대될 것은 강 건너 불 보듯 뻔하다.
석유정치학은 중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옛 소련 해체 이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약화됐던 러시아는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무기로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중국이 소비한 석유의 10%를 공급했다. 유럽 국가들의 주요 에너지 공급처이기도 하다.
측면에서 볼 때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힘도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세계에너지전망 2007’ 보고서에 따르면 OPEC 13개 회원국의 전체 원유생산 비중이 현재 42%에서 2030년에는 52%로 높아질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비(非)OPEC 국가들의 원유생산량은 지금보다 7% 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하루 원유생산량 8480만배럴 중 3360만배럴을 OPEC이 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의 경우, 전체 석유 수입의 절반을 OPEC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세계 2위 소비국인 중국도 전체 원유 수입량의 45%를 OPEC에서 들여오고 있다. 어찌 보면 OPEC이 미국과 중국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최근 석유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도 사우디가 석유를 전량 공급하겠다고 약속하자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상하이증권보 2007년 11월 16일자) 중국은 사우디로부터 전체 원유 수입량의 14%를 공급받고 있다. 현재로선 OPEC 13개 회원국 가운데 반미 국가가 이란과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정도지만 OPEC의 행보에 변수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남미에서도 국제질서의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이란과 마찬가지로 눈엣가시이다. 미국은 중남미에서 반미 좌파의 기수를 자처하는 차베스 대통령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베네수엘라가 보유한 막대한 석유 때문에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은 1990년대 세계화의 기치를 내세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에 끌려다녔다.
베네수엘라 등은 이들 기관의 경제 개방·민영화 요구에 따라 석유기업과 유전개발권을 다국적기업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남미 각국에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원 민족주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유전의 국유화를 선언하고, 엑손모빌 등 다국적기업들에 내주었던 유전개발권을 되찾았다.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7월 이들 다국적기업들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볼리비아 등 좌파들이 집권한 국가들도 베네수엘라처럼 자국의 권리를 다시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은 오히려 새로운 유전 개발에 참여하기 위해 중남미 국가들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됐다. 세계화도 자원 민족주의와 석유의 힘 앞에 무릎을 꿇은 격이다. 지난해 12월 9일 베네수엘라의 주도로 남미은행이 출범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양국이 OPEC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도 국제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각국이 석유 확보를 위해 OPEC 회원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OPEC의 영향력이 앞으로 계속 확대될 것은 강 건너 불 보듯 뻔하다.
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16/20080116008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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