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우동 한 그릇

鶴山 徐 仁 2007. 7. 14. 13:42
우동 한 그릇

조카와 함께 떡볶기를 사려고 명훈이네 집에 들렀더니 가게 자체가 온데 간데 없어져 찾을 수가 없었다. 경성고등학교 옆 작은 구멍가게 한쪽을 빌려 떡볶이와 오뎅을 팔던 명훈이 엄마는 그나마 경쟁이 심해 장사가 안돼 어디론가 이사했다는 것이다. 가끔 퇴근길에 들르면 오뎅 국물에 우동을 맛있게 말아주던 명훈이 엄마는 몇 년 전 남편이 죽고 어린 형제를 데리고 근근히 살고 있었다. 삼모자 (三母子)의 안부를 생각하며 나는 몇 년 전 읽었던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섣달 그믐날 ‘북해정’이라는 작은 우동집이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아주 남루한 차림새의 여자가 들어왔다.

“우동을 1인분만 시켜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묻는 그녀의 등뒤로 아홉 살,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두 소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물론이죠, 이리 오세요.”
주인장의 부인이 그들을 2번 테이블로 안내하고 “우동 1인분이요!” 하고 소리치자 부엌에서 세 모자를 본 주인은 재빨리 끓는 물에 우동 1.5인분을 넣었다. 우동 한 그릇을 맛있게 나눠먹은 세 모자는 150엔을 지불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다시 한 해가 흘러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문을 닫을 때쯤 한 여자가 두 소년과 함께 들어왔다. 부인은 곧 그녀의 체크 무늬 재킷을 알아보았다.
“우동을 1인분만….”
“어서 오세요,”

부인은 다시 그들을 2번 테이블로 안내하고 곧 부엌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말했다.
“3인분을 넣읍시다.”
“아니야, 그럼 민망해 할거야.”
남편이 다시 우동 1.5인분을 끓는 물에 넣으며 말했다.

우동 한 그릇을 나누어 먹으며 형처럼 보이는 소년이 말했다.
“엄마, 올해도 북해정 우동을 먹을 수 있어 참 좋지요?”
“그래, 내년에도 올 수 있다면 좋겠는데.” 엄마가 답했다.

다시 한 해가 흘렀고, 밤 열 시 경, 주인 부부는 메뉴판을 고쳐 놓기에 바빴다. 올해 그들은 우동 한 그릇 값을 200엔으로 올렸으나 다시 150엔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었다. 열시 반 쯤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세 모자가 들어왔다.

“우동을 2인분만 시켜도 될까요?”
“물론이죠. 우동 2인분이요!”
부인이 그들을 2번 탁자로 안내하며 외치자 주인은 재빨리 3인분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부부는 부엌에서 세 모자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현아, 그리고 준아.” 어머니가 말했다.
“너희가 도와줘서 이제 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졌던 빚을 다 갚았단다.”
“엄마 저도 엄마에게 할 말이 있어요. 지난 주 준이가 쓴 ‘우동 한 그릇’이라는 글이 상을 받았어요. 준이는 우리 가족에 대해 썼어요. 12월 31일에 우리 식구가 함께 먹는 우동이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구요.”

다음 해에 북해정 2번 탁자 위에는 ‘예약석’이라는 푯말이 서 있었다. 그러나 세 모자는 오지 않았고, 다음 해에도,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오지 않았다. 그동안 북해정은 성업해서 내부 구조를 바꾸면서 테이블도 모두 바꾸었으나 주인은 2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두었다. 2번 탁자는 곧 ‘행운의 탁자’로 불리워졌고, 젊은 연인들은 그 탁자에서 식사하기 위해 일부러 멀리서 찾아왔다.

십수년이 흐르고 다시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그 날 인근 주변 상가의 상인들이 북해정에서 망년회를 하고 있었다. 2번 탁자는 그대로 빈 채였다. 열 시 반 경, 문이 열리고 정장을 한 청년 두 명이 들어왔고, 그 뒤로 나이든 아주머니가 깊숙이 허리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우동 3인분을 시킬 수 있을까요?”

주인은 순간 숨을 멈췄다. 오래 전 남루한 차림의 세 모자의 얼굴이 그들 위로 겹쳤다. 청년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14년 전 우동 1인분을 시켜 먹기 위해 여기 왔었죠. 1년의 마지막 날 먹는 우동 한 그릇은 우리 가족에게 큰 희망과 행복이었습니다. 그 후 이사를 가서 못 왔습니다. 올해 저는 의사 시험에 합격했고 동생은 은행에서 일하고 있지요. 올해 우리 세 식구는 저희 일생에 가장 사치스러운 일을 하기로 했죠. 북해정에서 우동 3인분을 시키는 일 말입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아름다운 귀결,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이런 해피엔딩이 가능할까. 아마 우동집 주인은 문 닫는 시간에 들어와 겨우 한 그릇을 시키는 가난한 세 모자를 구박했을 것이고, 어머니는 아무리 일을 해도 빚을 갚지 못했을 것이고, 아들들은 의사, 은행원이 되기 전에 비행 청소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 훗날 우연히라도 명훈이 가족을 만나게 된다면, ‘우동 한 그릇’의 해피엔딩이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 /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