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어느 도시에 도착하든 일단 서점부터 가본다. ‘이 나라 사람들이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사나’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번 출장 중엔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가 눈에 띄었다. 잡지든 신문이든 펼치기만 하면 다이애나가 있었다. 최근에 출판된 ‘다이애나 연대기(The Diana Chronicles)’라는 책 때문에 다시 불붙은 다이애나 열기 덕분이었다.
사실 나는 10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이애나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한 게 없다. 다이애나의 인생에 대해서라면, 우리 이모나 고모에 대해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다이애나에 관한 뉴스가 끊임없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 다이애나가 이젠 신데렐라나 백설공주급으로 대접 받는 모양이다.
그런데 다이애나는 과거의 공주님과는 좀 다르다. 기존의 공주들은 시련을 겪다가 왕자만 만나면 그걸로 고생 끝, 해피엔딩이었다. 그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거다. 반면 다이애나의 이야기는 왕자를 만난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된다. 왕자와의 만남은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불행의 시작이다.
다이애나는 공부를 굉장히 못했다고 한다. 귀족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찰스 왕세자와 결혼하는 것이 꿈이라 애당초 학업에 뜻이 없었다. 웬만하면 다 통과하는 졸업자격시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 영국의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이 시험에 두 번 떨어지는 것은 한 번 붙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다이애나의 빈약한 학력과 교양은 결혼생활이 어려워질수록 문제였다. 워싱턴포스트 회장이었던 캐서린 그레이엄이 “대학에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다이애나가 한창 방황할 때는 주변에서 “어려서 공부라도 제대로 했으면 저렇게 살겠느냐”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와 책에서 배운 지성과 교양이 전부는 아니다. 다이애나에겐 나름의 재능이 있었다. 눈치가 빨랐고 체험을 통해 배우는 재주가 있었다. 다이애나는 ‘공주’라는 지위 그 자체보다는 대중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다이애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AIDS에 대한 공포가 극심했을 때 다이애나가 AIDS 환자와 악수하는 장면은 대중의 편견을 깨는 엄청난 충격을 줬다. 지뢰 때문에 손발이 잘린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체험을 통해 다이애나는 ‘홍보’의 중요성을 배웠다. 파파라치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법도 알았다.
세기의 결혼이 이혼으로 끝난 후 순진무구하고 아름다운 다이애나가 찰스 왕세자의 괴팍한 성격에 희생됐다는 이미지도 사실은 다이애나의 오랜 홍보 노력이 맺은 결과였다. 훗날 언론은 다이애나가 특유의 정치감각으로 ‘미디어 전쟁’에서 남편에게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세상은 옳은 일만 일어나는 곳이 아니다. 부당한 일도 일어난다. 우리는 “이건 옳지 않아”라고 분노한다. 그러나 분노와 비판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울거리만 생길 뿐이다. 부당한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사실은 그것이 다이애나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고, 사후에까지 사랑 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동시대인은 다이애나가 고통을 겪으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고 공감했기 때문에 애정을 갖는 것이다. 작가는 “고통은 다이애나를 총명하게 만들었다”고 썼다.
아기도 한 번 심하게 앓고 나면 부쩍 크고 약아진다. 어른도 그렇다. 시련과 역경으로 망가지지 않고 이겨냈을 때 가장 값진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책을 선반에 갖다 놓고 서점을 나왔다. 사실 다이애나가 그런 이야기를 해줄 줄은 몰랐다
강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