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유럽 아프리카

(14) 진정한 멜팅 폿 에티오피아

鶴山 徐 仁 2007. 2. 25. 09:15

 

아디스 아바바에 멕시코 스퀘어라는 곳이 있다. 지하철은 없지만 우리나라로 치자면 종로 3가역쯤 되는 곳으로 이 곳에 가면 볼레(아디스 아바바 국제공항 방면) 쪽으로 가는 차, 서드스 키로(아디스 아바바 대학 방면) 쪽으로 가는 차, 피아사(아디스 아바바 시청 방면) 쪽으로 가는 차를 전부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 차는 이곳의 대중교통수단인 미니 버스(현지인들은 꼭 미니 택시라고 한다.)를 의미한다.

멕시코를 연상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왜 멕시코 스퀘어라고 부르는지 이유를 물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답변을 해 주는 사람이 없다. 멕시코 스퀘어 한 가운데 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이것만으로 멕시코를 연상하기는 어렵다. 멕시코에서 일어난 전쟁에 에티오피아 군대가 참전을 해서라는 설이 있지만 멕시코 정부나 관련 기업의 원조가 있지 않았나 감만 잡을 뿐이다. 문득, 광화문 한복판에 왜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는지 외국인이 물으면 답변을 할 수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왜 세종로라고 부르지?

▲ 멕시코 스퀘어에서 사르베트 가는 방향에 있는 ‘’Melting Pot’’ 레스토랑. 냉건기의 아디스 아바바 하늘은 늘 저렇게 맑다. 식당은 개인주택을 개조했는지 화장실에 가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크고 화려한 욕조가 있다. 34번, 39번 요리를 비롯해 스테이크 한 접시는 35birr, 천연(정말 천연이다.) 오렌지 주스는 10birr 정도.

▲ 아디스 아바바 시내의 한 음반가게. 중동에서 온 음반, 남아프리카에서 온 음반 등 전세계에서 흘러 들어온 음반들을 다 구경할 수 있다. 맨 위의 음반들은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가수들의 음반이다.

멕시코 스퀘어에서 사르베트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다 보면 오른쪽에 국방부 건물이 보이고 조금 더 걸어가면 왼쪽에 수단 대사관이 보인다. 수단 대사관을 지나 조금만 직진하면 ‘Melting Pot’이라는 레스토랑을 만날 수 있다. AU(African Union) 바로 전에 위치해 있다. 이름에 걸맞게 이 곳에 가면 에티오피아 음식은 물론 아프리카, 아랍, 남미 음식을 모두 먹을 수 있다. 음식 종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인제라가 지겨울 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 곳을 자주 찾는다. 아랍 요리 중에 밥이 포함된 게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는 메뉴 중에 34번과 39번을 강추한다.

흔히 인종, 문화의 도가니라며 미국을 지칭할 때 ‘멜팅 폿’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미국 보다 오히려 더 멜팅 폿이 이곳 에티오피아가 아닐까 싶다. ‘Melting Pot’ 레스토랑에 가면 아주 잘 차려 입은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암하릭어가 아닌 영어나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며 식사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AU가 가깝다 보니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이 레스토랑을 자주 찾기 때문이다.

▲ 아디스 아바바에는 국제기구를 비롯해 외교공관들이 많다 보니 외국인 취향의 바와 레스토랑이 아주 많다. 이 바에 가면 유럽 강호들의 축구 경기와 외국 유명 아티스트들의 지난 콘서트 실황을 볼 수 있다.

▲ 비디오 가게의 비디오 테이프들. 전부 불법 복제된 것들이지만 영화를 제작한 나라들은 유럽, 미국,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를 망라하고 있다. 이 복제품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에 온 중국인들에게서 흘러 나오는 물건들이다. 중국에서 불법 복제된 영상물 중에는 극장에서 직접 찍은 것들이 많은데 이곳의 불법 복제품들은 극장에서 직접 찍은 것은 물론이고 제작 당시의 스크립트가 그대로 자막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자막은 영어 혹은 암하릭어로 되어 있고, 헐리우드의 영화도 에티오피아 영어와 다르기 때문에 대부분 영어자막이 포함되어있다.

현재 AU에는 모로코를 제외한 아프리카의 53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모로코가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는 이유로 아프리카 국가를 54개국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로코는 AU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모로코는 아프리카가 아닌 위쪽의 유럽과 친구로 지내고 싶어하는 분위기다. AU만 따져도 에티오피아에서는 아프리카 53개국 사람을 전부 만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한국, 중국, 일본 사람도 이곳에서 다 만날 수 있다. 외교 공관이 100여 개가 넘기 때문에 이런 나라 사람들을 모두 에티오피아에서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셀 수도 없는 NGO단체가 에티오피아를 원조하겠다고 이나라저나라에서 오늘도 속속 도착하고 있다. 사람이 가는 곳에 문화가 따라가는 법. 에티오피아는 가히 멜팅 폿의 지존이라 할 수 있겠다.

셈족계와 햄족계의 혼혈이 조상인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또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 아주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현재 에티오피아의 대통령 영부인은 피부색이 하얀 독일인이다. 에스닉 그룹(소수민족)이 80여 개가 넘는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이민족에 대해서 그리 배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 옆집에 사는 베사. 엄마는 중국인, 아버지는 에티오피아 사람이다. 흑인과 아시안의 콤비네이션은 별로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다시 봐도 예쁘다. 유명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경험이 있어서 어떻게 포즈를 취해야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지 잘 아는 아주 영특한 꼬마다.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 포즈가 다 똑같다.

▲ 아디스 아바바에 딱 두 개가 있는 판투(FANTU) 수퍼마켓. 볼레 공항 가는 쪽에 하나가 있고 사진은 사르베트 쪽에 있는 판투다. 우리나라 작은 슈퍼마켓 규모지만 판매품목에 있어서는 백화점을 방불케한다. 맨 아래층의 빨간띠가 둘러져 있는 물건들은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파스타, 그 윗층의 노란색 봉지는 아랍에서 건너온 라면들.

▲ 아디스 아바바 시내를 구간별로 이동하는 미니 버스. 미니 버스보다 차비가 저렴한 대형 버스가 있지만 토요타에서 나온 이 승합차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다. 현지인들이 꼭 미니 택시라고 부르는 이 차들은 지하철이 없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주된 대중교통수단이다. 멕시코 스퀘어에 가면 정식 터미널은 아니지만 일정 장소에 정해진 구간만 왕복하는 미니 버스가 방향별로 모여 있다.

아디스 아바바의 작은 수퍼에 가면 전세계에서 온 물건들을 다 만날 수 있다. 스위스에서 온 유제품, 이탈리아에서 온 파스타, 중동에서 온 잼, 중국에서 온 싸구려 물건들까지 한마디로 박람회장을 연상케 한다. 직접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라고 하지만 전세계에서 온 물건들이 사이 좋게 매장을 채우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국 전쟁 때 참전했던 에티오피아의 6천 여명의 지상군은 미군 중 절반 가까이나 되는 흑인들보다 15개국의 UN참전국 사람들과 형제처럼 잘 어울렸다고 한다. 문화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다른 인종의 피가 섞여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한국 사람들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지금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이지만 그래도 이곳이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문화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이문화가 함께할 때 문화가 찬란했었고 융성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함께했던 통일신라가 그랬었고, 말갈을 끌어안았던 고려시대가 또 그랬었다. 암묵적인 차별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가장 큰 힘도 바로 이문화의 수용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너무 가난해서 별볼일 없는 나라로 분류되는 에티오피아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측면에서 보면 멜팅 폿, 에티오피아는 지금의 한국보다는 분명 선진국이다.

 

 

 

<윤오순>

기사일자 : 2006-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