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세계적인 대학에 왜 못 드나?”
내년 신입생부터 전과목 영어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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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2층 서남표(徐南杓·70) 총장의 집무실. 마침 서 총장이 도시락으로 회의 겸 점심식사를 마친 뒤 제주도 출장을 위해 문을
나섰다.<사진> 손수 가방을 든 그는 “IBM이 주최한 행사 때문인데 나중에 지원받을 일이 있을까 싶어서…”라고 했다.
카이스트 변화의 출발점은 서 총장이다. 청주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노벨상 수상 후보자의 반열에 올라 있는 노(老)공학자는 카이스트의
현재에 대한 가혹한 진단과 변화의 절박성을 거침없이 얘기했다.
“현재 카이스트 학생들의 수준은 그대로 미국에 갖다 놔도 20위권 안에 든다.
세계적인 연구를 진행 중인 교수들도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왜 카이스트는 세계적인 대학에 끼질 못하고 있는가.”
서 총장은 그 해답을 글로벌화에서 찾았다. 이를 위해 내년 학사과정 신입생부터 전 과목을 영어로 수업키로 했다. 커리큘럼 자체를 조정하기로
했다. 또 내년에는 학부 과정에 외국인 학생을 최소 50명 데려오기로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글로벌화, 국제화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서
총장은 거듭 강조했다.
“머리 좋은 사람은 노력을 안 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다 요즘 학생들은 너무 쉽게 공부하고 있다.” 제품설계와 정부·기업 조직에 활용되는
‘공리적 설계’(Axiomatic Design)론을 정립한 서 총장은 외국 학자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자리잡았다. 그
때문인지 학생들의 분발을 촉구할 때는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공짜로 공부하는 카이스트 학생들은 국민들이 얼마만큼의 희생을 감수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년 신입생부터 학점이 2.0(만점
4.3) 아래로 떨어지면 수업료 전액을 돌려받고, 2.0~3.0이면 일부를 돌려받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현재 제로(0)로 표시된
등록금 고지서의 수업료 부분에 정확한 금액을 표시해 놓고 그만큼 장학금을 주는 방식으로 바꿀 예정이다.
학교 운영체제 개편도 밀어붙이고 있다. MIT 식으로 학과장에게 인사·예산 등 자율권을 넘겨주는 대신 각 과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라는
방식이다. 서 총장은 “회사를 만들어 놓고 운영하듯이 각 학과가 알아서 세계적인 학과로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한다”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장차
안정적인 학교 운영에 필요한 기금 규모를 5조원으로 잡은 서 총장은 요즘 늘 기업인을 ‘쫓아다닌다’. 이 같은 적극성을 각 학과장에게도 주문하고
있다.
왜 이렇게 다급한 것인가. 서 총장은 장차 카이스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중국의 칭화대(淸華大)를 꼽았다. 그는 “중국 정부는 엄청난
돈을 그 대학에 쏟아 붓고 있다. 우리도 그만큼 하지 않으면 반드시 뒤처진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전기 및 전자공학 전공의 박현욱 학과장은 “가야 할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생명화학공학과 박승빈
학과장은 “교수 각자가 나가서 뛰라는 주문에 대해 불만도 있겠지만 총장의 리더십이 이를 부드럽게 극복하고 있다”고 평했다. 또 다른 학과장은
“실용적이지도 근본적이지도 않은 연구결과를 내놓고 면피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렵다”고 했다.
전자전산학과의 한 4학년생은 “학점을 잘 따기 위해 학생들이 더 노력할 테니 동기부여 측면에서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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