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작업은 주제에 따라 다양한 준비와 공부를 필요로 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전통문양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면서, 전통 자수기법을 이용한 작업 계획을 세웠다. 자수 재료는 인사동이나 한복집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자수 재료를 파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공이 많이 들고 수요가 없어 우리 수 놓는 법까지 가르쳐 중국에 하청을 준다고 했다. 허탈하고
막막했다.
겨우겨우 아현동 작은 한복집에서 어렵사리 전통 자수실을 구했다. 오색영롱한 자수실을 사서 보물을 얻은 듯 귀하게 가지고 돌아와 붉은
비단천에 목단 꽃을 수놓을 때의 기쁨이란! 어릴 적 잠잘 때면 방 하나 가득, 여름이면 마루에 가득 어머니는 빛깔 고운 이부자리를 펴주셨다.
펼쳐진 이부자리에 폴짝 드러누워 헤엄치듯 팔다리를 저을 때면 그 차갑고 뽀송한 감촉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 기쁨이 사라진 건 아파트로 이사를 간 뒤였다. 방방에 침대가 들어서자 어머니는 건사하기 불편한 한식 이불들을 정리하셨다. 레이스 달린
침대보에 지퍼로 열고 닫는 편리한 이불을 보며 우리는 색동요며 비단 이불을 촌스러워했다. 손때 묻은 옛 살림살이들이 우중충한 구닥다리로 여겨지고
신식 가구들이 좋아 보였던 그 시절, 우리 모두는 우리 것을 기꺼이 잊어 갔다.
책을 준비하며 조각보를 배우고, 수를 놓고, 인사동을 샅샅이 훑어가면서 나는 뒤늦은 나이에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서둘러
발전하느라 우리가 예쁜 줄 귀한 줄 몰랐던 것들. 박물관도 좋고 인사동도 좋다. 아이들이 전통의 아름다움에 대한 눈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라져가는 옛 문화를 자주 접할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
최향랑/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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