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쟁기를 이용하여 논갈이를 하는 농부에게 예수교를 전도하는 전도사의 모습(1899년,
목포)
숭일학교와
전교생(1908년)
명절날 예복과 새옷을 차려입은
일가족(1910년대) 갓, 수식등이 이채롭다.
나주
남평시장(1910년대)
전남 제빙회사(1920년대) 현재의
여수시 중앙동 부근
마님의 가마행차(1920년대) 건너
편에 인력거가 보인다.
능주 공립보통학교(1920년대,
화순) 능주객사에서 임시 운영했다.
화순경찰서(1920년대)
흔적이 없어진
영산포나루터(1920년대)
나주향교
전경(1920년대)
가마니짜기
대회(1920년대)
여수 최초의 종포 어시장(1920년대) 산밑의 초가는 현재의 삼성냉동의
부속건물이다.
여수신항매립과 철도부지
조성광경(1920년) 당시 바다였던 덕흥동앞일대를 매립했다.
사립 완도소안학교 여학생
교련(1923년)
나귀타고 출장가는 여수군청
수산계직원들(1925년)
함평 궤도차
운행모습(1925년) 함평읍에서 학교역까지 6.8㎞를
운영했으며,1960년대에 없어졌다
목포
유달해수욕장전경(1929년) 현재의 신안비치호텔
자리
목포
제빙냉장주식회사(1929년대) 현재의 목포시 만호동 부근
부유층의 행렬(1930년대,
여수)
전라남도물산공진회대회장(1930년대) 현재의 유달초등학교 자리
목포 내항 풍경(1930년대) 현재의
용당 도선장 부근
오동도 방파제
축조공사(1930년대) 현재의 쌍용시멘트공장일대에서 채석공사를 하는 장면
벼탈곡 장면(1930년대,
순천) 일본인이 감시하고 있다.
목포 면화판매소에서 면화를 고르는
장면(1930년대)
여수보통학교 학생들의 체조
광경(1930년) 당시 진남관에서 임시 운영했었다.
여수군청(1937년) 여수군은
1897년 6월 1일 신설하였는데 순천군에 속해있던 율촌, 소라, 삼일, 여수면을 관할했다.
1940년대 옹기를 싣고 가는 돛단배(1940년대,
강진)
보성광 수력발전소댐
전경(1940년대) 이 댐의 물은 우리 도의 유일한 수력발전소인 보성강 수력발전소의 수원으로
쓰인다.
전라남도청
일대(1946년)
함평 고막천 석교(1950년대, 일명
뚝딱다리) 다리위를 걸어가는 노인과 빨래와 머리를 감는 여인네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이엉(마람)을 엮는
촌로(1950년대)
정미소 풍경(1950년대)
김을 가공하고있는 어민(1950년대,
완도)
양곡수매광경(1950년대,
완도)
유선스피커 가설과 어린이들의
환호(1950년대)
수편물
기계(1950년대)
광주북문위 교회로 예배가는 수피아여학생
행렬(1950년대) 당시 양림리에는 교회가 없어 광주천을 건너 북문내 교회로 예배를 갔었다.
목포 시가지와
삼학도(1950년대)
순천
시가지(1957년)
과자를 받고있는 목포성덕원
어린이들(1957년)
여수 서시장
상가(1958년)
목포양조주식회사(1959년) 현
목포시 호남동 부근, 삼학소주를 생산했다.
# 상기 자료는 전남도청( http://www.jeonnam.go.kr/ ) 에 수록된 자료를 연대별로
재편집하였습니다(http://blog.empas.com/ddnnddnn/14979291).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