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
추로(鄒魯) |
(6136-BC1062) |
65 |
태자 추로가 즉위 |
27 |
두밀(豆密) |
(6201-BC997)
|
26 |
갑신 원년(BC 997) 천해의 물이 넘쳐 아란산이 무너졌다.
이해 수밀이국 양운국 구다천국 등이 모두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쳤다.신묘 8년 큰 가뭄 뒷끝에 큰 비가 쏟아지듯 내려 백성들의 수확이 없으매,
단제는 명을 내려 창고를 열어 널리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
28 |
해모(奚牟) |
(6227-BC971) |
28 |
정묘 18년 빙해의 뭇한들이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
29 |
마휴(摩休) |
(6255-BC943) |
34 |
무인 원년(BC 943) 주나라 사람이 공물을 바쳤다. 을유 8년 여름
지진이 있었다.병술 9년 남해의 조수가 3척이나 물러갔다.
|
30 |
내휴(奈休) |
(6289-BC909) |
35 |
청구의 다스림을 둘러보시고 돌에 치우천왕의 공덕을 새겼다. 서쪽으로는 엄독골에
이르러 제후국의 여러 한들과 만난후 병사들을 사열하고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주나라 사람들과도 수교를 맺었다. 병진 5년 흉노가 공물을
바쳤다.
|
31 |
등올(登올) |
(6324-BC874) |
25 |
임인 16년 봉황이 백악에서 울고 기린이 와서 상원에서
노닐었다.
|
32 |
추밀(鄒密) |
(6349-BC849) |
30 |
갑인 3년 선비산의 추장 문고가 공물을 바쳤다. 계해 12년 초나라 대부
이문기가 조정에 들어와 벼슬을 했다. 갑자 13년 3월에 일식이 있었다.
|
33 |
감물(甘勿) |
(6379-BC819) |
24 |
계미 2년 주나라 사람이 와서 호랑이와 코끼리 가죽을 바쳤다.무자 7년 영고탑
서문밖 감물산 밑에 삼성사를 세우고 친히 제사를 올렸다. |
34 |
오루문(奧婁門) |
(6403-BC795) |
23 |
을묘 10년 두개의 해가 나란히 뜨더니 마침내 누런
안개가 사방에 그득했다. |
35 |
사벌(沙伐) |
(6426-BC772) |
68 |
갑술 6년 이 해에 황충의 피해와 홍수가 있었다.임오 14년 범이 궁전에
들어왔다.임진 24년 큰비가 내리니 산이 무너져 골짜기를 메웠다. 무오 50년 단제께서 조을을 파견하여 똑바로 연나라 서울을 돌파하고 제나라
군사와 임치의 남쪽 교외에서 싸워 승리하였음을 알려왔다. |
36 |
매륵(買勒) |
(6494-BC704) |
58 |
갑진 28년 지진과 해일이 있었다.무신 32년 서촌의 한 백성의 집에서 소가 다리
여덟개 달린 송아지를 낳았다.신해 35년 용마가 천하에서 나왔는데 등에는 별무늬가 있더라.갑인 38년 협야후 배반명[일본 서기는 이사람을
神武王(신무왕)이라며 건국시조로 날조하여 떠받들고 있다.]을 보내어 바다의 도적을 토벌케 하였다. 12월에는 삼도가 모두 평정되었다.무진 52년
단제께서 병력을 보내 수유의 군대와 함께 연나라를 정벌케 하였다.이에 연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위급함을 알리자 제나라 사람들이 크게 일어나 고죽에
쳐들어 왔는데 우리의 복병에 걸려서 싸워 보았지만 이기지 못하고 화해를 구걸하고는 물러갔다. |
37 |
마물(麻勿) |
(6552-BC646) |
56 |
|
38 |
다물(多勿) |
(6608-BC590) |
45 |
|
39 |
두홀(豆忽) |
(6653-BC545) |
36 |
|
40 |
달음(達音) |
(6689-BC509) |
18 |
|
41 |
음차(音次) |
(6707-BC491) |
20 |
|
42 |
을우지(乙于支) |
(6727-BC471) |
10 |
|
43 |
물리(勿理) |
(6737-BC461) |
36 |
을묘 36년 우화충이 무리 수만명을 모아 서북 36군을
함락시켰다. 백민성 욕살 구물이 장당경을 점령하니 동서의 압록 18성이 모두 병력을 보내 원조하여 왔다. |
44 |
구물(丘勿) |
(6773-BC425) |
29 |
병진 원년(BC 425) 3월 우화충을 죽임.백민성의 욕살구믈 즉위. 국호를
대부여로 고치고 삼한은 삼조선이라고 바꿔불렀다.무인 23년 연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새해 문안 인사를
올렸다. |
45 |
여루(余婁) |
(6802-BC396) |
55 |
을유 원년(BC 396) 장령의 낭산에 성을 쌓다.신축 17년 연나라 사람이
변두리의 군을 침범하매 수비장수 묘장춘이 이를 쳐부수었다.병진 32년 연나라 사람 배도가 쳐들어와서 요서를 함락시키고 운장에 까지 육박해 왔다.
이에 번조선이 대장군 우문헌에게 명하여 이를 막게하고 진조선 막조선도 역시 군대를 보내어 이를 구원하여 오더니 복병을 숨겨두고 연나라
제나라의 군사를 오도하에서 쳐부수고는 요서의 여러 성을 남김없이 되찾았다.
|
46 |
보을(普乙) |
(6857-BC341) |
46 |
을축 46년 한개가 수유의 군대를 이끌고 궁궐을
침범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하니 대장군 고열가가 의병을 일으켜 이를 쳐부수었다.고열가가 43대단군 물리의 현손으로서 무리의 사랑으로 추대받기도
하였고 또 공도 있었던터라 마침내 즉위하였다 |
47 |
고열가(高列加) |
(6903-BC295)
|
57 |
임술 57년 해모수가 웅심산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켰는데 그의
선조는 고리국사람이었다.대저 북부여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니 고구려는 곧 해모수의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에 연호를 고구려라 칭했다. 단군기원
원년 무진부터2,096년이라 임술 57년고열가 단제께서 조선 폐관하시고 마침내 왕위를 버리시고 입산수도 하시어 신선이
되시었다. |
조선폐관 (6960-BC2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