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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무아젤과 마담

鶴山 徐 仁 2006. 5. 27. 11:50
2006년5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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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무아젤과 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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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할 때마다 에어프랑스 홈페이지에 이런 항목이 나온다. 그냥 남녀 성별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M.(무슈)’ ‘Mlle(마드무아젤)’ ‘Mme(마담)’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격식을 갖춘 호칭을 많이 사용하는 프랑스에서는 ‘남자’ ‘미혼여성’ ‘기혼여성’에 따라 호칭이 달라진다.

남자는 결혼했든 안했든 ‘무슈’인데 여자는 ‘마드무아젤 강’ 아니면 ‘마담 강’으로 나뉜다. 말하자면 ‘강 아가씨’냐, ‘강 아줌마’냐를 밝혀야 한다. “아니, 애 딸린 아줌마라고 표값 깎아줄 것도 아니면서”라고 투덜대며 표를 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영어에는 미혼·기혼 구별 없이 여성에 대해 미즈(Ms.)라는 호칭이 있다. 프랑스어에는 그런 신조어가 없다. 얼마 전 한 여성단체가 미혼의 여성을 부르는 호칭 ‘마드무아젤’을 공문서에서 없애달라고 정부에 청원했다. 여성도 호칭을 마담 하나로 통일하자는 제안이다. 여성만 굳이 결혼 여부에 따라 호칭을 달리하는 건 성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프랑스는 어떤 부분은 신식이더라도, 의외로 시대에 뒤떨어진 구석이 많다. 남녀 평등에 있어서도 그렇다. 결혼 여부에 따라 마담과 마드무아젤로 구분하는 건 결혼 형태가 급격히 변하면서 더 이상 몸에 안 맞는 낡고 작은 옷처럼 되어버렸다.

현재 프랑스에서 인기 가도를 달리는 여성 정치인으로 세골렌 루아얄이란 인물이 있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성 대통령을 노리는 사회당 후보다. 그녀는 아이 넷을 둔 엄마다. 당연히 마담 루아얄이겠네.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루아얄은 현재 사회당 제1서기인 프랑수아 올랑드와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은 고급 엘리트 양성기관 ENA(국립행정학교)를 나란히 나왔고 젊은 시절부터 연인 사이였다. 그런데 아이 넷 둔 지금까지도 둘은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법률혼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언론에서 루아얄을 ‘올랑드의 부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파트너’라고 표현한다. 그럼 마드무아젤 루아얄이란 말인가?

현실은 이렇듯 언어의 외연을 깬 지 오래다. 프랑스에서 해마다 결혼 건수는 줄고 동거 건수가 늘어나니 서류상 미혼이지 실제로 기혼과 다름없는 경우도 많다. 겉보기에는 기혼 여성처럼 나이 들었지만 실제로는 미혼 여성인 정반대 경우도 많아졌다. ‘무늬만 마담’ ‘무늬만 마드무아젤’이 늘어난 것이다.

그래서 공문서에는 기혼·미혼에 따라 마담과 마드무아젤로 나눠질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나이에 따라 호칭이 나눠진다. 대부분은 존칭 표현인 ‘마담’이 널리 통용된다. 마담이라고 하기에 너무 앳된 여성한테 마드무아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점에 착안해 이 호칭을 계속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오직 한 남자랑 결혼해 살아가는 것과는 다른 라이프 스타일의 현대 여성을 반영할 수도 있고, 아이를 여럿 낳고도 아가씨처럼 보이는 여성 심리를 담아낼 수도 있다”는 옹호론이다.

그 말도 일리는 좀 있다. 한국에서는 영락없이 아줌마인데 동양 여성의 나이를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프랑스 사람한테 어쩌다 ‘마드무아젤’이라고 잘못 불릴 때의 그 유쾌함이란. 으흐흐 하고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그렇다고 해도 변덕스러운 상대방의 판단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는 애매한 상황은 본의 아니게 큰 결례를 범할 수도 있다.
늘 헷갈리고 뒤죽박죽인 우리 사회의 호칭 문제도 한번 곰곰 생각해볼 문제다.

 

 강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