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외국작가 畵壇

[스크랩] 드가, 춤 , 데생 -15-

鶴山 徐 仁 2005. 11. 20. 17:39


드가,춤,데생/열화당미술문고/저자,Paul valrey/역자,김현




*<드가.춤.데생>이라는 책은 열화당에서 나온 작은 미술문고입니다.
같은 시대를 잠깐 겹쳐 살았던 폴 발레리가
드가에 대해서, 그리고 드가를 통해 자신의 예술에 대한 생각을
적어논 아름다운책입니 다.
폴발레리의 문장과 생각이,
타인을 관찰한 섬세한 마음이 저는 좋았습니다.
드가의 외로운인생과 또 외로움과 괴팍함이 공존하며
이 세상에 남긴그의 그림들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번역은 별세하신 평론가 김현씨의 것이고요,
폴발레리가 드가를 처음 만난것은 그의 나이 이십대 초 반이었는데,
이미 그때 드가는 예순이었다하니,
우리의 상식으로는 친구로 부적절하다 느껴지는
현격 한 나이차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차이라는 무거운 옷을 벗을수 있었던 것은
높은 정신적인 유대감과 서로이해할려는 따뜻한 마음이었을거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해봅니다.
그 책중 몇 구절을 그대로 발췌하였습니다









칠십세 때에 그는 에른스트 루아르에게 말했다.

"자기가 하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해야 할 것에 대해 높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게 없으면 일할 필요가 없다."

칠십 세에...
그게 진정한 오만이며 온갖 허영심의 예방물이다.






Mary Cassatt at the Louvre - 1880 c.




소박한 눈으로는 작품이란
주제와 재능의 행복스러운 만남에서 생겨나는 것 같지만,
이런 심오한, 이 정도 심오한 것이 좋겠다는 것보다
더욱 심오한 종류의 예술가는 즐 거움을 미루고,
어려움을 만들어내고,
제일 쉬운 길을 겁낸다.
드가는 자기 생각의 대상이 아닌 모든것을 거부하듯이,
쉽게 그리기를 거부했다.






Race Horses Before the Grandstand - 1866-68




예신(藝神)들은 절대로 서로 다투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다.


"예신들은 온종일 서로 떨어져서 작업해요.
황혼이 내리고, 일이 끝나면 서로 모여 춤을 추거든요.
논쟁하는 법이 없어요."

하지만 그는 그 자신이 대단한 논쟁가였으며, 무서운,
특히 정치와 그림에 대해서는 흥분 잘하는 이론가였다.
그는 양보하는 법이 없었고,
곧장 목청을 돋우어 가지고는 제일 독한 말을 내던지고는
딱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The Orchestra of the Opera - 1870 c.




나는 드가의 아틀리에에 들어간다.
드가는 거기서 가난한 자처럼 옷을 입고, 헌 신발을 신고,
바지를 결코 여미지 않은채 느슨하게 입고 돌아다닌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저 가장 안쪽은 은밀한 곳이 잘 보인다.
나는 그 사나이가 우아했다고,
그가 원할 때면 그의 거동이 아주 자연스러운 품위를 드러냈다고,
그가 오페라좌의 무대 뒤에서 저녁을 보냈다고,
롱샹 경마장의 기수 무게를 재는 장소에 드나들었다고,
인간 형태에 가장 예민한 관찰자였으며,
여인의 선과 태도의 가장 잔인한 애호가였으며,
가장 좋은 말의 아름다움을 세련되게 감식하는 자였으며,
가장 지적이고, 가장 생각이 깊으며, 가장 까다롭고,
가장 철저한 화가였다고 생각한다.






Dance Class - 1871




예술가에게는 아주 드문 일이지만, 드가는 취미인이다.
그는 자기가 그렇다고 자랑했고 또 그러했다.
"낭만주의"의 와중에서 태어나 나이들면서 "자연주의" 운동에 휩쓸려들어
뒤랑티, 졸라, 콩쿠르, 뒤레 등과 자주 만나게 되었고
최초의 인상주의자들과 같이 전람회를 했다고 해 봐야 헛일이었다.
그는 언제나 섬세한, 완고하고 관능적으로 엄격한,
단지 새로운 것일뿐인 그런 새로움에는 가차없는,
라신느와 고전음악으로 자란 감정가,
잔인할 정도로 엉뚱하고 눈부시게 인용을 잘 하는 사람,
"고전작가"였다.
그런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사라져 버린 품종이지만.




드가는, 자기와는 아주 먼 예술가라도 그가 말을 잘 연구했다고 생각될때는,
그의 장점을 인정할 정도로 승용마를 사랑했고,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어느날 뒤랑 뤼엘 화랑에서 약 오십 센티미터쯤 되어 보이는
메소니에의 작은 입상, 나폴레옹의 청동 기마상 앞에
아주 오랫동안 나를 붙잡고 있더니 자세하게 그 아름다움을,
아니 오히려 그가 이 조그만 작품에서 인정한 정확성을 설명해주었다.
정강이, 발목, 구절, 말 탄 자세, 엉덩이 부근....
비판적인 그리고 마침내는 찬양조의 그 분석을 다 들어야만 했다.
그는 또한 생 오귀스탱 앞에 있는 폴뒤브와의 잔 다르크의 말도 칭찬했다.
그는 갑옷이 그토록 정교한 그 여주인공에 대해서 말하는 건 빠뜨렸다.






Aux courses en province At the Races in the Country1872




어느날 루브루에서 나는 드가와 함께 큰 화랑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멋지게 거대한 삼나무 길을 보여주는 루소의 중요한 그림 앞에 멈춰 섰다.
찬탄을 한 뒤에 나는 얼마나 의식적으로, 얼마나 인내심있게,
수많은 잎의 대단한 효과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한없는 작업을 생각케 할 정도로 화가가
한없는 세목을 그렸는가 혹은
그 세목들에 대한 환상을 충분히 만들었는가를 주목했다.

"대단해요. 하지만 이 잎을 그리느라고 얼마나 한심해 했을까요...
.정말 지겨운 일이었을거예요." 내가 말했다.

조용히 있게."드가가 나에게 말했다.
"지겹지 않다면 즐겁지 않을테니까."

사실인즉 사람들은 이제는 이런 유의 근면성을 즐기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아주 나이브한 단조로운 외양의 모든 작업,
혹은 오랫동안 되풀이 되는 별로 다를 것 없는 동작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모든 작업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가
커 가고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었다.
기계는 인내를 압살했다




드가는 자신의 정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하고 단호했으며 본질적으로 파리 사람다웠다.
드레퓌스 사건 때는 화를 냈다. 그는 자기 손톱을 깨물었다.
조금만 표시해도 그는 예측을 하고, 터뜨리고, 깨끗하게 끊었다.
"잘 있게..."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적에게 영원히 등을 돌렸다.
아주 오랜, 그리고 아주 친밀한 친구들이 그래서 지체없이
다시 말붙일 수도 없게 그에게서 잘려 나갔다.
드가 식의 정치는 그처럼 고귀하고, 격렬하고, 어쩔 수 없어야 했다.






The Bellelli Family - 1858-67




나는 루아르씨의 식탁에서 드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내가 보기 전에 거기에 대해 한 생각과 비교해 보는데
대단한 흥미를 갖고 있다.
그러한 비교는, 불완전한 여건에 놓여졌을 때의 우리의 상상능력을
잴수 있게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개인 전기나 일반 이야기가
얼마나 헛된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한가지 교훈은 직접적인 관찰이 갖고 있는,
그럴지도 모르는 그 놀라운 부정확성이며,
우리 눈이 말들어내는 허위이다.

관찰한다는 것은 대부분 자기가 보려고 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다






Cabaret - 1876-77




나는 드가에 대해서 그가 데생의 정확성에만 집착하는 인물,
스파르타식이며, 금욕주의자인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식에 기원을 둔 일종의 난폭함이 그 기본적인 특성이었다.
금요일이면 드가는 충실히, 발랄하게, 견딜 수 없게,
루아르씨의 저녁 식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아주 지적인 불공평한 온갖 말들을, 아주 확실한 취미에서 나오는,
아주 엄격한 정열에서 나오는 가장 명석한 정열에서 나오는
온갖 말들을...내품는다.
그는 문인, 가짜 은둔자, 출세한 예술가들을 깔아 뭉갠다.






Madamoiselle Dobigny - 1869




하나의 작품이란 드가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에튀드(習作)의 결과,
그리고 일련의 조작의 결과였다.
나는 그가 하나의 작품이란 결코 끝이 났다고 말해질수 없으며,
얼마 후에 가지 작품을 다시 볼 때
다시 가져가 손을 봐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예술가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믿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의 친구집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 다시 사로잡혀
자기 소굴로 그걸 옮겨가는 일이 자주 그에게 일어났는데
되돌아온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그와 가까이 지낸 몇몇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의 그림들을 숨기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림보다 더 지성적인 예술을 알지 못한다.
복잡한 외관에서 새로운 묘선을 추출해내고, 구조를 요약하고,
손에 양보하지 않고, 형태를 쓰기 전에
그것을 이릭고 또 자체로 말하게 한다.
혹은 발명이 순간을 지배하며,
생각이 눈 밑에서 종이 위에 드러나는 것에 복종하고
그것으로 정확해지고 부유해진건,
정신의 온갖 재능이 이 작업에 사용된다.
그 작업에서는 그 사람의 모든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Woman in Her Bath Washing Her Leg - 1883-84




어느날 저녁 무용회관에서 같은 의자에 앉게 되어
클레망소(프랑스정치가)곁에 있게 된 드가는 그를 설복하려 했다.
그는 십오년 후에 나에게 그 대화에 대해서,
아니 그 독백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그는 자기의 고지식하고 순진한 이론을 개진했다.

만일 자기가 권좌에 있게 되면,
자기의 커다란 직책이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내리눌러
금욕적인 삶을 영위할 것이며, 아주 소탈한 집에 살 것이며,
매일 저녁 근무처에서 오층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운운.

"그때 클레망소가 뭐라 대답했나요?"내가 그에게 물었다.

"멸시의 눈초리로...째려 보더군!"






The Tub 1886




수많은 나체들이 모여 있는 해변에는 아주 새로운 사고가 마련된다.
거기서는 아직까지 서로 격의 없이 대하지는 않는다.
베일에 가린 어떤 지역에 있는 거처럼 아직까지 어떤 형식이 있다.
하지만 벌거벗은 신사와 벌거벗은 숙녀 사이에서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부인"
따위를 듣는 것이 사람을 놀라게 하기 시작한다.

나체는 성스러운 것, 말하자면 불순한 것이었다.
나체는 결국 정신에 두 가지의 의미 작용만을 한다.
하나는 미의 상징이고, 또 하나의 외설이다.
그러나 구상화가에게는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이다.
사랑이 사기꾼이나 시인에게서 차지한 위치를,
나체는 구상화가에게서 차지하고 있다.






The Dance Class - 1876 c.




몸짓에 대한 감수성
점점 고독해지고 우울해진 드가는 저녁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좋은 철에는 전차나 버스의 특석에서 보낼 생각을 했다.
그는 어느날 관찰한 것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것은 오히려 관찰자를 생생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관찰이었다.

어떤 여자가 그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와 앉았는데,
잘 자리잡고 앉으려고 그녀가 애쓰는 것을 그가 알아보았다.
그녀는 옷을 손질해서 주름을 펴더니
구부러진 의자에 잘 앉기 위해 준비를 하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손 가까이에 장갑을 끌어당겼고,
조심스럽게 그것의 단추를 채웠고,
혀로 입술을 축이더니 약간 잘근잘근 씹었고,
아주 편하게,
후덥지근한 내의 속일지라도 시원하게 느끼려고
옷 속에서 몸을 움직였다.
마침내 가볍게 코 끝을 잡더니, 얼굴 가리개를 당겼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귀걸이를 매만졌으며,
힐끔 핸드백의 내용물을 점검해 본 다음에,
자기 작품을 끝낸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무슨 일을 시도하기 전에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서,
편안히 쉬며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자의 정신으로
일련의 조작을 끝낸 것 같았다.

전차가 흔들거리며 갔다.
완전히 자리잡은 채 그 부인은 오십여 초 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에게는 영원한 것처럼 보인 그 시간이 지난후,
드가는 그녀가 불편해 하는 것을 본다.
내가 위에서 어렵게 묘사해 놓은 것을 드가는 멋있게 흉내냈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 목을 움직여 보고,
콧날을 약간 찌푸리고, 뽀로통해진다.
그리고는 자세와 단장을, 옷 장갑, 코, 얼굴 가리개를 새로한다.
아주 개인적인 작업, 그 뒤에 눈에 띄게 안정된 새 상태의 균형,
하지만 얼마밖에는 지탱못하는 균형.

드가가 그것을 다 말없이 재현해 주었다.
그는 몹시 기뻐했다.






The Tub - 1885-86 c.




그의 애정사가 어떠했는지 나는 모른다.
여자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흔히 우리의 경험의 결과이다.
이 세련된자가 원할 수 잇는 온갖 우아함과 온갖재치를 다 부여한
아주 드문 몇몇 여인을 제외하면 드가는 여성을 틀림없이
내가 말한 자세의 일상적인 모델에 따라 판단했다.

나는 현대성의 모습이 정신적 중독의 그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관찰한다.
우리로선 양을 늘리거나 다른 독으로 바꾸어야한다.
그게 법칙이다. 더 나아가고, 더 격렬해지고, 더 커지고, 더 빨라지고,
언제나 더 새롭다




내가 "대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모든 능력이 적용되길 요구하는 예술이며 다른 사람의 모든 능력이 그 작품을 이해하는데 요망되며 관계되어야 하는 그런 작품을 낳는 예술이다






죽음.
작업이 점점 불가능하게 되었고, 그
래서 그의 생존 이유는 죽기 전에 없어졌다.
그가 만든 마지막 작품은 텁수룩한 짧은 턱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쓴 그의 자화상이었다.

그는 그것을 보여주며, "개를 닮았지"라고 말했다.

너무 많이 써서 시력을 잃자,
정신은 방심 상태와 절망상태사이를 왔다갔다했고,
광태와 되풀이가 늘었다.
무시무시한 침묵은 결국
"난 죽음만 생각하고 있어"라는 지독한 말로 끝이 난다

그토록 고귀한 사람이 나이가 들어 황폐해가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없다




사회생활을 유지할수 없게 된 노인의 이 한심스러운 노쇠현상,
이 자아방기가, 사람들과 떨어져서 그들을 불신하고, 헐뜯고, 혹은 단순화시켜
무섭게 요약해 버리는 성향이 농후한 사라에게서 진전되었다는 것을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염인증은 아마도 그게 선험적으로 우울한 기질이며,
다양한 사람앞에서도 똑같은 태도이므로, 노쇠의 씨를 포함하고 있나보다.









드가는 언제나 혼자 있다고 느꼈고,
모든 형태의 고독 속에서 혼자 있었다.
성격 때문에 혼자였고,
특출난 그리고 특이한 본성 때문에 혼자였고,
성실성 때문에 혼자였고,
오만한 엄격성 때문에,
굽히지 않은 원칙과 판단 때문에 혼자였고,
자기 예술, 다시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 그가 요구한 것 때문에 혼자였다.




"미래는 불길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약속해 주지 않는다."

* The Elephant Man Main Theme - John Morris *

원본: 드가, 춤 , 데생
 
출처 : 블로그 > .. | 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