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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 上陸 作戰
仁川 上陸作戰 大勝
55 周年 記念
맥아더 장군의 용단
맥아더원수가 인천상륙 작전을
계획했을 때,
미군 수뇌부는
동경회의('50년 8월 25일)에서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와
항공지원의 항속거리밖에
있다는 이유 등으로
크게 반론을 제기하였다.
이 때 맥아더 원수는
"북한군 지휘관들도 당신들과
같이 훌륭한 장군이다.
여러분이 인천상륙작전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북한군의 장군들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것이며,
따라서 인천은 방비가 소홀할
것이다.
고로 이 허점을 친다면 성공할
수 있다.
사실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작전은 대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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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제5해병연대의 출동(샌디에고 항에서 승선)
▲ 상륙작전부대 부산항 승선 :
1950년 9월 12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될
국군 해병대와 제17연대. 미 해병대가
부산항에 집결해 배에 오르고 있다.
일본 요꼬하마에서는 미 7사단이
고베에서는 미 해병1사단,
사세보에서는 화력지원함이 출발했다
▲ 마운트 매킨리 함상의 맥아더 :
9월 15일 261척의 대수송단을 이끌고
인천앞바다에 도착한 맥아더 장군이
그의 기함 마운트 매킨리 함상에서
상륙작전을 지휘하고 있다
▲ 손원일 해군 참모총장 :
인천에 상륙하기 직전 미 수송선 함교에서
상륙 명령을 기다리는 손원일 제독
▲ 함상에서 17연대장 백인엽 대령
▲ 월미도와 인천 해안의 모습
▲ 월미도의 엄체호 속의 북한군 76밀리 곡사포
▲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감행하다
9월 12일 261척의 대 수송 선단으로
인천 앞 바다에 도착 한 상륙작전 부대인
제 10군단은 9월 15일 2단계로 나누어
작전을 개시하였다.
9월 16일 01:30 해두보를 완전 확보하였다
▲한국해병의 인천상륙
신현준 대령이 이끄는 한국군 해병대가
해안에서 육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 월미도의 화염방사기
▲ 월미도에 상륙한 미 해병대
▲ 인천항에 발을 내디딘 맥아더 원수
9월 16일 01:30 인천해두보를 완전 확보하게 되자
맥아더는 인천에 첫발을 디디게 된다
▲ 바다물이 완전히 빠진 부두에 드러난 LST
인천상륙작전시 상륙부대를 괴롭혔던
인천만의 간만의 차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 한국군 인천시가 진입
▲ 인천탈환 기념식
인천 상륙작전 후 인천 시가를 탈환한 아군은
인천 시청에서 인천탈환 기념식을 가졌다
▲고위 수뇌들을 위한 브리핑이
1950년 9월 17일 미 제1해병사단사령부(인천)에서
열렸다.
우측으로부터 맥아더 장군, 사단장 스미스 소장, 스트러블 제독,
위트니 장군(민정참모부장), 라이트 장군(작전참모부장)
▲ 미 제5해병연대가 김포비행장을 점령 후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서울진격전에 지뢰로 사망한 미군
▲ 경인가도에 산재된 파괴된 북한군 전차
▲(위) 서울로 미 해병
▲ 한강변의 맥아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서울로 진격하기에
앞서
전선을 바라보고 있는 맥아더
▲ 125고지에서 심한 사격을 받고 있는 미 제5해병연대
▲ 한강변에 도달한 미 제1해병대원이
파괴된 한강철교를 바라보고 있다
▲ 한강
도하작전
▲ 폐허로 변한 서울 시가지
▲ 서대문 일대에서의 시가전 모습
▲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기 위해 장충동 일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시가전에 대비하고 있는 유엔군
▲ 적의 바리케이트를 제거 후
시내로 진입하는 유엔군 전차
▲ 충장로에서 투항하는 북한군
1950년 9월 26일
▲ 덕수궁 중화전
덕수궁 중화전 앞에 주둔한 미군
. 포격으로 중화전의 지붕이 무너지고
경내는 온통 잡초 밭이다
▲ 파괴된 서울역
▲ 폐허가 된 광화문
▲ 폐허가 된 종로 거리
▲ 파괴된 수원 북문
▲ 서울 중앙청에 감격의 태극기 게양
1950년 9월 27일, 맨 처음 중앙청에
진입한
국군 해병 제2대대 6중대 용사들이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인민군 치하 90일만에 서울을 수복한 국군 해병
▲서울 수복 기념식
1950년 9월 29일, 중앙청 홀에서 거행된
수도탈환 경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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