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우리나라 畵壇

[스크랩] 이중섭

鶴山 徐 仁 2005. 9. 26. 22:22


이중섭(李仲燮)
1916∼1956. 서양화가. 호는 대향(大鄕).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이희주(李熙周)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오산고등보통학교(五山高等普通學校)에 들어가 당시 미술교사였던 임용련(任用璉)의 지도를 받으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1937년 도일, 분카학원(文化學院)미술과에 입학하여 재학중 독립전(獨立展)과 자유전(自由展)에 출품하여 신인으로서의 각광을 받았으며, 분카학원을 졸업하던 1940년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출품하여 협회상을 수상하였으며, 1943년 역시 같은 협회전에서는 태양상(太陽賞)을 수상하였다.
이무렵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山本方子)와 1945년 원산에서 결혼하여 이 사이에 2남을 두었다.
1946년 일시 원산사범학교에 미술교사로 봉직하기도 하였다. 북한 땅이 공산치하가 되자 자유로운 창작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았으며, 친구인 시인 구상(具常)의 시집 《응향 凝香》의 표지화를 그려 두 사람이 같이 공산주의 당국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6·25사변이 일어나고,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그는 자유를 찾아 원산을 탈출, 제주도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였다. 이무렵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이중섭은 홀로 남아 부산·통영 등지로 전전하였다.
1953년 밀항하여 가족들을 만났으나 굴욕적인 처가신세가 싫어 다시 귀국하였고, 이후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그의 나이 40세에 적십자병원에서 죽었다.
그가 추구하였던 작품의 소재는 소·닭·어린이〔童子〕·가족 등이 가장 많으며, 불상·풍경 등도 몇 점 전하고 있다. 소재상의 특징은 향토성을 강하게 띠는 요소와 동화적이며 동시에 자전적(自傳的)인 가족에 대한 정감의 요소이다.
〈싸우는 소〉·〈흰소〉(이상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움직이는 흰소〉·〈소와 어린이〉·〈황소〉(이상 개인 소장)·〈투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등은 전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며, 〈닭과 가족〉·〈사내와 아이들〉·〈집떠나는 가족〉(이상 개인 소장)과 그밖에 수많은 은지화(담배갑 속의 은지에다 송곳으로 눌러 그린 일종의 선각화)들은 후자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화단활동은 부산 피난시절 박고석(朴古石)·한묵(韓默)·이봉상(李鳳商) 등과 같이 만든 기조전(其潮展)과 신사실파에 일시 참여한 것 외에 통영·서울·대구에서의 개인전이 기록되고 있다.
생시의 많은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강한 개성적 작품으로 1970년대에 이르러 갖가지 회고전과 재평가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즉, 1972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과 화집발간을 위시하여, 평전(評傳)의 간행, 일대기를 다룬 영화·연극 등이 상연되었으며,

아내에게 보낸 편지



글 사이사이에 그림을 곁들였다.

봉투의 주소와 받는 사람 이름을 쓰면서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쓰느라 수많은 파지를 내곤 했다 한다.

봄의 어린이



종이에 연필과 유채
32.6×49cm
1953년 전후로 추정
개인 소장


화면의 아래와 위에는 가로로 띠를 두르듯 했는데, 이 밋밋한 띠가 화면에 눈길을 집중시켜주는 효과를 내면서 편안하고 연속적인 느낌을 준다.

한없이 계속될 것 같은 이런 느낌은 왼쪽에서 봉우리를 이루었다가 오른쪽으로 가면서 천천히 낮아지는 동산과, 위를 향해 머리와 손만 내밀고 있는 맨 오른쪽의 어린아이로 인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마치 옆으로 펼쳐지면서 드러나는 전통적인 두루마리 그림을 연상시킨다.

흰소



종이에 유채
30×41.7cm
1953~4년 무렵
서울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흰 소>는 이중섭의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이다.

이 그림에서 두드러진 것은 굵고 짧게 그어진 흰 선이다.
형상을 따라 의도적으로 길게 그어진 검은 선이 이 흰 선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있다.

소머리 부분은 이런 바탕 위에 선과 색을 더욱 절묘하게 배합하여 그렸다.
흰 선은 마치 살아 있는 소가 거친숨을 내쉬며 분노하는 듯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머리 부분에서 보인 이러한 절정은 목덜미를 지나 꼬리와 생식기를 거치면서 힘이 분산된다.
이 그림에서도 서예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흰 소>는 범접하지 못할 위엄을 띠고 있다.
이 그림 속의 소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지만, 건드리면 즉각 반격하며 분노를 토할 듯하다.

돌아오지 않는 강



종이에 연필과 유채
20.3×16.4cm
1955년 말
개인 소장


이중섭은 완전히 자포자기한 듯한 예감이 드는 그림도 그렸다.
미국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을 보고 난 뒤에는 그 제목이 좋다면서 자꾸 영화 제목을 되뇌이기도 했다.

어느 날 한묵이 방문을 열어보니 이중섭이 술 냄새를 풍기면서 신문에 실린 영화 광고를 잘라 벽에 붙여놓고 웃고 있었다 한다.
그는 <돌아오지 않는 강>을 제목삼아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것이 그의 절필작이라고 하는 일련의 그림들이다.

이 그림들은 모두 집안에서 창문에 팔을 기대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남자와 머리에 무엇인가를 인 여자가 기본 설정이다.
창 안쪽의 인물은 창틀에 기댄 팔에 고개를 뉘기도 하고 똑바로 들고 있기도 한데, 한 그림에서는 등장인물이 쳐다보는 쪽, 즉 화면 아래에 담을 그리고 그 위에 흰 새 한 마리를 올려놓았다.
머리에 물건을 인 여인은 만나기가 어려운 아내라고 여겨지지만, 같은 설정은 한 이전 그림을 염두해 둔다면 아내뿐 아니라 북에 두고 온 어머니일 수도 있다.

어느 날 집 밖 골목길에서 보았을 하나의 장면을 여러 가지로 변주한 이 그림들은 비록 작은 크기에 간단한 설정으로 그려져 있지만 이중섭이 한 가지의 소재에도 얼마나 많은 배려를 쏟았는가를 알 수 있는 생생한 사례이다.

이중섭은 이 그림들을 벽에 붙여놓고 그 아래에 아내가 보내온 편지를 잔뜩 붙여놓았다.
이 무렵 이중섭은 아내에게 온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았다.


은박지 그림



뒷날 대작으로 완성할 것이니 남에게 보이지 말라고 하며 아내에게 맡긴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은박지 그림을 통해 이중섭은 화가로서의 명성과 신화를 형성하기도 했다.
은박지 그림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담배향을 보존하기 위해 싸는 은박지를 편 후에 연필이나 철필 끝으로 눌러 밑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수채나 유채를 온 화면에 칠한 뒤 이것이 다 마르기 전에 헝겊 또는 손바닥으로 닦아낸다.
그러면 패인 선에 물감이 스며들어 선각이 나타난다.
이 과정을 거친 후 나타나는 그림은 연필이나 붓으로 그린 선과는 달리 철선과도 같은 독특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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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곳: [Time Box]  글쓴이: 풍경화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