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끊어진 다리 앞에서
고구려땅을 찾아서
밤
10시 옌타이항 출발하는 빵추이따오호에 승선
선표가격 211원, 3등칸, 6인실
승무원이 복도를 돌아다니며
배가 4시에 도착하나 6시까지 하선하지 않고
선내에서 6시까지 머물 사람은 20원을 내고 신청하란다.
여름에는 갑판위에 오르는데 10원 달라고 하드니 강도같은노무스키들........
새벽 4시 따리엔(대련)항 도착...
내가 머문 방의 사람들은 대부분 20원을 내고 그냥 머물 모양이다.
바보 같은 놈들....사우나에 가서 자면 10원만 주면 되는데....
화물차운전기사부터 하선시키고 승객하선...
항구를 나오니 이른 새벽이지만 많은 택시가 기다리고 있다.
택시타고 찐하이완(김해만)호텔행....택시비 10원....
사우나에 들어가 간단히 샤워 좀 하고....안마좀 받고.....
휴게실에서 잠을 청했다.
휴게실 두 곳에는 잠자는 사람들로 꽉차 자리가 거의 없다.
푹 자고 깨어나니 9시...
좌석을 채웠던 사람들이 전부 나가고 없다.
그런데도 나는 몰랐다.....깊은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사우나 10원 + 안마 120원 = 130원....
계산대에 게시된 안마종류엔 120원 짜리가 없다.
퇴폐안마를 권했지만 단호히 거부했는데 내가 받은 안마는 뭐지....
사기 당한 것 같은데....다시는 새벽 안마를 하지 말아야지.....
호텔내 여행사에 찾아가 아는 복무원에게 인사하니
단동 가려면 대련역 뒤 버스터미널로 가라고 한다.
가는 도중에 택시기사가
버스 타는 곳이 두 곳인데 어디로 갈까 묻는다.
이런....내가 어떻게 아냐?....좌우간 치처종짠으로 가자....
택시비 10원....호텔여행사 복무원이 7원정도 나올 거라고 했는데....
지도를 보니 좀 돌아 온 것 같기는 하지만....별 수 없지......
아름다운 도시, 깨끗한 도시로 소문난
따리엔의 버스터미널 치고는 지저분하다.
단동행 몇 시에 있느냐?
10시 15분...
몇 시간 걸리느냐?
6시간....
고속으로 가는 버스는 없냐?
없다....고속도로로 가는 4시간 정도 걸리는 버스가 있다고 하던데.....
한 장 달라.....여행자보험료 1원 포함 55원
터미널 내부를 돌아다니다 표를 확인하니
목적지가 단동이 아니고 한자를 알 수 없는 곳이다
급히 매표소에 찾아가서 말하자.....단동 가는 표 맞다고 한다.
버스에 올랐다.....앗....지저분의 극치...승객들의 모습까지....
손만 들면 아무데서나 태워주는 완해버스임이 분명했다.
이미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경험 한 번 해보는 거지.....
내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데 어떤 미모의 아가씨가 아는 체 한다.
처음으로 찾아간 낯선 중국땅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지......
자리에 앉아 있는데...그녀가 돌아서서 다시 나를 쳐다본다.
아!.....그래.....너였구나.......
연태 최고급 호텔의 카라오케에서 나의 파트너를 한적 있는 샤오지에......
그러나 이름도 성도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했다.
비어있는 그녀의 옆자리를 찾아가 잠시 이야기 했다.
정말 오랜만이다.....
우리가 만난지 1년이 다되어 간다.
추석이라 고향에 간다.....그래....고향이 단동이라고 했었지.....
혼자 가냐?....친구 두 명도 같이 간다........
대련에서 단동 가는데 정말 4시간 정도 걸리는 버스가 없냐?
있다...고속도로로 가는....표를 잘 못 산 것 같다.....
매표소 복무원이 없다고 하더라.....그 복무원 화이단(나쁜놈)이다.
나의 표에 적힌 지방이름을 어떻게 읽느냐?
“콴디엔”......단동 지나서 2시간을 더 가야 한다.
하지만 단동시에 내려준다.
그럼 엉뚱한 곳의 표를 팔고 돈을 더 받은 거냐?
아니다....대련에서 단동까지 55원, 65원 두 종류다.
중국처녀의 핸드폰번호를 받아
내 자리로 돌아와서 준비해간 김밥으로 점심을 대신....
대련시내를 벗어나니 중국의 다른 지방과는 달리
넓은 황금들판이 나탄 나다....
산동성에서는 이런 풍경을 볼 수 없다.
넓은 들판 틈틈이 마을이 보이고...
마치 한국의 농촌길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장장 6시간을 달려 단동시내 도착...
고향 가는 중국처녀는 보름 후에 연태에 돌아온다고 했다.
연태에 돌아오면 전화 하라고 한 뒤 터미널이 아닌 대로변에서 하차....
단동시......압록강을 건너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중국 땅....
동강(동항)시, 펑청(풍성)시, 콴디엔현이라는 위성도시와
3개의 구를 둔 인구 240여만의 항구도시....
북조선의 신의주, 자강도, 평안북도와 북으로는 길림성과 이웃하고 있는
동북 3성중의 하나인 요령성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
중국 농산물과 해산물을 관세를 피하기 위해 북한산으로 둔갑시켜
선박을 이용해 한국으로 반입시키는 항구이기도 하다.
진달래식당.....이름만 보아도 북한식당이 분명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중국식당풍이다.
테이블 하나에 중국말을 주고받는 4명의 남자가 낮술을 마시고 있다.
한국음식도 되나요?
여기는 조선음식 전문식당입니다.
메뉴판에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한국요리들이다.
붕어찜, 평양김치, 청도맥주 1병....그리고 공기밥 하나...
북한식당은 주문한 음식에 반찬이 딸려 나오는 것이 아니고
반찬도 따로 주문해야 한다. 평양김치 한 접시는 10원이나 한다.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원피스를 입은 북한 복무원...
백영옥이라는 복무원이
요리가 나오기 전에 맥주를 들고 와서 따라준다.
잔이 빌 때마다 옆에서 술잔을 채워 준다.
남조선에서 오셨습니까?
려행 오셨습니까?
혼자 오셨습니까?
왜 혼자 다니십니까?
중국말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기 한국사람 참 많이 옵니다.
북한 처녀의 입에서 한국이라는 말이 나왔다.
북한 복무원의 가슴에 김정일뱃지가 아닌
북한 인공기(인민공화국기)뱃지를 달고 있었다.
대부분의 북한 음식점 복무원들은 김정일뱃지를 달고 있다.
북한도 서서히 변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식사를 마치자 또 다른 복무원이 내 옆을 찾아와 여러 말을 건넨다.
백영옥동무! 기념사진 한 장 찍읍시다.
사진 찍어서 뭐 합니까?
인터넷에 올려 주겠습니다.
그럼 식당 광고도 많이 되어 찾아오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런 것 보다 내가 실질적인 도움이 중요한 거 아닙니까?
ㅎㅎㅎㅎㅎㅎ.....
동무사진 보고 만나자고 찾아오는 사람 많으면 기분 좋잖아...
어렵게 사진 한 장 촬영성공.....그리고 북한음식 메뉴판도.......
민박집에 전화를 하니 5분도 안되어 차를 가지고 왔다.
배낭을 방에 놓고 바로 앞 압록강 철교를 찾아갔다.
하나는 지금 사용 중인 철교.....김일성,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할 때도 지나가는 철교...
또 하나는 강 중간에서 끊어진 철교...북한쪽엔 철교가 없다.
중국측은 이 철교를 수리하여 관광자원으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유지비용 별로 들이지 않고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1인당 입장료 20원 + 관광객의 숙박비와 식사비....엄청 날 것 같다.
끊어진 끝 부분에 전망대도 설치하고...
다리 중간 중간엔 한국전쟁(조선항미전쟁이라고 표시되어 있음)과
철교의 건축과 폭파, 수리에 관한 역사적 사실과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한국인이 많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나를 딱 보는 순간 기념품매점놈들은 내가 한국인임을 알았다.
기념품 매장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여성한복을 걸어 놓고
기념촬영을 권하는 모양으로 보아 중국인도 많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다리를 빠져나와 유람선을 타고 북한해변 가까이 돌며 구경했다.
강 중간에서 바라본 극과 극을 달리는 풍경.....
곳곳에 높은 굴뚝만 보일뿐 3층 이상의 눈에 뛰는 건물도 없다.
해변에는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고....칙칙한 어둠의 도시...
성장을 멈춘......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듯한.....50년대, 60년대의 모습.....
다시 눈을 돌려 보면....
초현대식 고층건물과 고층아파트...휘황찬란한 조명...
승용차로 혼잡한 거리...깨끗한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들......
강변에는 유람선으로 가득.........
북한 인민들의 생활상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온다.
저곳을 남한에게 개발권을 준다면....
저 눈앞에 보이는 이성계의 회군으로 유명한 위화도는 관광단지로 만들고
강변 하류는 거대한 산업항구, 물류항구로 변할건데.........
오늘은 추석이다.
그러나 아침상엔 별다른 음식도...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민박집 주인은 식사 후 산소에 간다고 했다.
아버지의 고향이 철도폭팔사고로 유명해진 용천이라는 60살의 주인남자는
60년대 초 중국이 너무나 가난해 배가고파 북한에 들어가서
중학교도 다니며 3년을 살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70년 초까지만 해도 북한은 중국보다, 남한보다 잘 사는....
어버이수령 김일성장군(ㅎㅎㅎ)이 만들어 놓은 지상낙원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13억 중국인이 부러워하고....
지구상의 많은 국가들이 부러워하는 한국.....
한국이 얼마나 부유한 국가이고....
한국인이 얼마나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고...
한국의 생활환경과 자연환경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많은 나라를 여행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이런 오늘의 한국이 되도록 초석을 다진 사람이 박정희대통령이 분명한데.....
박정희 기념관 하나 없고....
한국의 어느 곳에도..........
박정희거리, 박정희동상, 박정희의 이름이 붙은 건물 하나 없는 것이 아쉽다.
등소평의 개혁 개방정책 이전의 중국....
중국인민들은 죽의장막 속에서 얼마나 탄압받고...얼마나 가난한 삶을 살아왔는가...
하지만 모택동의 사후에도
계속 마오주시(모주석)로 부르며 추앙하고 존경할 뿐....
모택동을 원망하는 사람도...모택동의 동상을 끌어내리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죽은지 26년이 된 박정희는
아직도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독재자... 백성을 탄압한 폭군.....
민주주의를 말살한 철천지원수로 묘사되고....
박정희가 심은 나무 한 그루....글씨 한 자 까지 시비를 당하고......
오늘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실패책임 까지도 떠안고 있다.
그들의 말대로 위대한 민권이 승리하고....
자칭 민주인사들이 정권을 차지한 지난 15년....
그들은 과연 국가와 백성을 위해 무엇을 했고
그들이 책임질 일이 전혀 없단 말인가?
귀신에게 국가운영책임을 돌리는 정치지도자...
자신들 정권의 책임까지 회피하는 정치지도자.....
이런 무책임한 정치인들에게
다시는 나라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로 부터는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민박집 주인의 추천을 받아
북한땅이 제일 가깝다는 후산창청(虎山長城)을 관광하기로 했다.
단동역앞 커윈짠(버스터미널)에 가서 다음날 단동-집안 버스표 예매(42.5원)
단동지도상에는 단동-호산장성 운행 15번 버스가 있었지만
아무리 돌아 다녀 보아도 정류장을 찾을 수 없어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터미널-호상장성....10분마다 마이크로버스가 운행된다. 차비 4원
호산장성...단동시 동북방 약 15km지점
명나라 때 건축된 만리장성의 동쪽시작지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공원 주차장엔 한국의 TV방송프로의 하나인 지구탐험대의 방송이
한국어 원음 그대로 나오고 있다.
한국의 관광지인지...중국의 관광지인지....좌우간 기분이 좋다.
장성입장료 30원 + 장성역사박물관입장료 10원 = 40원
이른 시간이라 장성을 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북경 팔달령의 만리장성과 거의 같은 모습니다.
정상 가까이 오르니 아주 가파르다.
단숨에 오른 탓인지 숨이 찬다.
정상 누각에 도착하자 50대로 보이는 부부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올라 왔느냐고 묻는다.
위에서 나를 바라보았단다.
중국에 산지 13년 되었다는 한국남자...여자는 조선족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휴식...
눈앞에는 북한땅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시 반대편으로.... 가파른 내리막길.....밑을 보니 아찔하다.
박물관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핸드폰이 울린다.
추석이라 송편하고 먹을 것좀 가지고 가고싶은데 괜찬겠느냐 묻는다.
모른는 여성이었다.....누구며, 우리 집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이웃 아파트에 사는 27살의 조선족처녀였다.
야임마! 놀랬잔아......나 지금 단동에 와 있으니 올 필요없어....
받은 걸로 생각하겠다....고맙다.
장성 끝 부분에 있는 박물관 구경하고....
강을 향해 외진 길을 한 참 걸어가니 배 한 척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거의 없었다...아마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혼자서 배를 타기엔 조금 두려운 길이었다.
5명 정도 타면 적당할 것 같은 엔진이 달린 배...
한 사람당 10원을 주고 승선......흥정도 가능함.......
10m 정도 되는 강폭(사실은 냇가)사이를 10분정도 돌아보았다.
우리 배가 나타나자 건너편 나무 숲속에 숨어있던
북한 국경수비대 2명이 총을 들고 나와 우리를 처다 본다.
우리가 강을 도는 동안 두 군데의 초소가 있었다.
북한 병사가 배를 가까이 대라고 손짓한다.
먹을 것을 좀 던져 달라는 신호라고 한다.
또 한곳의 병사는 입에다 두 손가락을 갖다 된다.
담배를 달라는 신호라고 한다.
담배도 안 피우는 나, 피우던 담배밖에 없던 그...
먹을 것을 준비하지 않았던 우리는
북한 병사의 거듭되는 요구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을 찾을 때는 과자 등 먹을 것을 준비하면 좋을 듯 하다.
동남아 관광시 원주민촌을 찾을 때
어린아이의 두 손을 외면할 수 없어 과자를 준비하는 것처럼.............
병사가 없는 곳에서는 배가 1m 가까이 까지 다가가기도 했다.
하선은 승선한 곳이 아닌 원래의 선착장에서 했다.
그곳엔 관광 온 일본인 청년 3명도 있었다.
부근엔 농가민박도 가능하고 푸짐한 농가식사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족여인의 반대로 우리는 중국농가식사를 맛볼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이 좋다니까.......
단동시내로 돌아와 위화도가 마주 보이는 압록강변 북한 식당에서
맥주잔을 교환하며 점심을 먹었다.
길림성 통화시의 폐교된 소학교건물를 빌려 돼지를 기른다는....
나보다 5살 아래 한국 남자...
50이 넘었다는 아주 세련된 조선족 여인...
둘 사이는 부부인 것 같은데 부부는 아니라고 한다.
늙어서 자기에게 찾아오면
몇 천 평은 공짜로 줄 테니 채소도 가꾸며 이웃하고 살자고 한다.
오후에 심양으로 떠난다는 그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작별.......
다시 위화도를 바라보며 강변산책을 하다가
배타는 값 15원을 10원으로 에누리하여
다시 배를 타고 신의주해안을 구경하고 민박으로 돌아오니
주인내외와 조선족 숙박객 네 명이 마작을 하고 있었다.
짐을 정리하여 안주인의 여동생이 운영한다는 모텔(압록강모텔)로 옮겼다.
하룻밤 숙박비 + 식사 = 100원
압록강모텔
압록강변...강과 신의주 눈앞에 보이는 고층아파트
7층과 8층에 호텔방 수준의 11개의 객실
객실엔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컴퓨터, 욕실, TV설치
정말 깨끗한 침구...매끼 식사가 제공...
숙박비 + 식사 = 120원(컴퓨터, 욕실 없는 방은 100원)
단동시 순타이구주화원 14호 5단원 710호 810호
전화 0415-617-2877 FAX 0415-617-2997
사장 홍영화 (핸드폰 139-4155-7289)
압록강민박은 홍영화 사장의 언니가 운영
아침 8시 30분
단동발-집안(집안) 버스를 탔다.(314km, 차비 43원)
도로변에 까오리두춘(高麗度村)이라는 간판도 보인다.
여기가 확실히 고구려 땅임을 증명해 주는 듯 하다.
조선족민속촌이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30분 정도 비포장길도 달렸다.
길림성과 인접한 콴디엔현은 만주족자치현이었다.
압록강변을 따라 한참을 가니 수풍댐도 저 멀리 보인다.
길 옆 공장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는 공장 건물벽에는
保護藍天 造福人類....파란 하늘을 보호하고 인류의 행복을 이룩하자.
구호와 행동의 정반대......웃음이 나왔다.
오후 1시 45분
요령성과 길림성의 경계지점에 도착.
환닝닌지린성라이(길림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넓은 냇가를 경계를 이루고 긴 다리가 길림성과 요령성을 이어준다.
같은 중국 땅이지만 길림성에 들어서니
잘 포장된 아스팔트도로...양 옆으로 하얀차선...황색의 중앙선....
도로변엔 형형색색의 코스모스꽃...
개천엔 맑은 물이 흐르고...
논과 밭....마을 뒤엔 나지막한 산....
짚 부근 밭에는 배추, 가지, 고추, 콩...
집 마당을 노니는 토종닭과 개...
논엔 누렇게 익은 벼......
어린시절 한국의 농촌풍경 그대로다.
길림성의 산천은 확실히 한국의 산천과 닮았다.
몇 년 전 백두산과 두만강을 가는 길도 이런 모습이었다.
동북 3성의 땅은.....한국의 고대국가인 고구려의 땅....
산천이 스스로 한국땅임을 증명해 보이는 듯 하다.
산동성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터널도 있었다.
3시 가까이 되어 집안시에 도착했다.
세계로 하여금 집안시를 주시하도록 하고
집안시는 세계를 향해 달려가자.
거리에 세워진 집안시의 구호이다.
集安市(지안서)....고구려의 수도 國內城(궈네이청)...425년의 역사 깊은 도시....
길림성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서남으로는 요령성과 인접....
북쪽엔 통화시, 동쪽엔 백산시
백두산 남쪽과 압록강을 따라
북조선의 1개시와 3개 군과 경계하고...203km의 국경선
북조선과 상통하는 철로가 있고 중국-북한의 3대 교역연안지역....
집안시에는 10개 민족이 살고 있다.
버스에 내리니 티고보다 적은 택시들이 줄을 서 있다.
나의 옆을 지나던 중국놈이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차를 타고 한국인이 많이 숙박하는 호텔로 가라면서
택시를 잡아 1원에 흥정해 준다.
도착해 보니 압록강변 묘향산주점.....입구엔 북한 인공기가 걸려 있었다.
우선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식당에 들어가니 강한 북한사투리의 여동무가 나를 맞는다.
그녀의 권유를 받아 몇 가지 요리와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혼자 먹기엔 좀 과한 것 같았지만
부자인 남조선사람(?)의 자부심도 있고 해서.....
식사 중에 계속 나의 옆에서 맥주를 따라주기도 하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남조선에서 오셨습니까?
혼자 다니시는 것을 보니 중국말도 잘 하시는 모양이네요.
여기 남조선 사람 많이 옵니다.
중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선생님은 왜 혼자 려행을 다니십니까?
선생님 고향은 어디십니까?
저는 고향이 강계입니다.
강계는 중국과 국경선 부근인데....
맞습니다. 저 강 건너편이 바로 자강도의 강계입니다.
혼자 다니면 심심하지 않습니까?
저는 중국에 온지 1년 좀 넘었는데 중국말을 잘 못 합니다.
중국말 공부는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혹시 가지고 오신 중국어 책 있으면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저는 중국어 공부를 하려고 해도 마땅한 책이 없습니다.
더구나 조선말로 설명한 책도 없고.....한자도 잘 모르고......
북한 복무원동무는 식사 중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는 가지고 있던 북경어언대학의 회화교재를 보여 주고
한 페이지를 읽어주며 해석을 해 주었더니
그 참 재미있는 문장이네요....하면서 책을 뺏어간다.
이 책.....저에게 선물로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상권이 아니고 하권이라 나도 조금 어려운 책인데...
1년 이상 열심히 공부한 사람 정도 되어야 이해가 가는 책인데...
책을 보고 욕심내는 북조선처녀의 청을 거절 할 수 없었다.
다음에 올 때 원하는 책을 사다 주겠다고 하자 엄청 좋아했다.
중국어 사전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 사전도 하나 사주마.................
한국 사람들은 거의 이곳에 머문다는 말에
밤을 묘향산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집안시에서는 좋은 호텔이라고 했지만
막상 방을 들어 가보니...완전히 여인숙 수준이었다.
더운 물도 저녁에만 잠깐 공급한다고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좋은 곳이 없다고 하니 별수 없지 않은가.......
호텔은 알고 보니 사장이 중국인이었다.
방을 정하고 시내를 돌아보기 위해 호텔을 나왔다.
이곳에서도 단동처럼 압록강 유람선이 있었다.
서점을 찾아가 집안시내 지도 한 장을 사고....
문구점에 들어가 형광펜도 하나 사고....
터미널에 가서 다음날 심양가는 버스표를 샀다.
집안-심양 버스는 하루 두 편....
아침 8시 30분....오전 11시 201분....소요시간 5시간 좌우......차비 75원
시장으로 가보았다.
어둠이 깃들기 전의 재래시장....
배추김치와 콩자반 등이 있는 반찬가게에 멈추어 자세히 들여 보자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여인이 빙긋이 웃으며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둘 사이는 학교동창이라고 했다. 한국에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한국취업으로 인한 사기피해, 부부간 이별, 자식의 가정교육문제....
이로인한 조선족가정의 가정파괴현상을 말하며
중국에서 먹고 살 정도 되면 한국에 가지 마라고 했다.
나이를 물으니 40이리고 한다.
아버지 고향이 북한이지만
아직 한번도 북한을 가보지 못했단다.
북한에 가도 맘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1년에 한번밖에 갈 수 없기도 하고....
가난한 나라.....별로 가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압록강변 경계비에서 시내로 관통하는 도로에는
한글간판이 많이 있었고 대부분 식당이었다.
저녁 7시....호텔 부근엔 가로등도 없고....어둠이 깔려 있어 위험했다.
아침 6시 기상....창밖을 보니 강변엔 아침운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간단한 차림으로 나가 강변을 따라 산책했다.
조깅을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산보를 하는 사람
가족끼리.... 이웃끼리...부부간에 재기놀이를 하는 사림들이 많았다.
한 부부에게 다가가 제기를 가리키며
무어라고 부르냐고 물으니...."찌엔저"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제기라고 부른다고 하자...“차부뚸”라고 한다.
강변에서 강을 쳐다보며 혼자 산책하는 노인에게 다가가
일면서도 일부러 마주 보이는 곳이 조선이냐고 하니...
고개를 끄득이며....춍(窮)이라고 말한다....아주 궁한 곳, 가난한 곳이라는 말이다.
최근 중국인 누구나 조선이라는 말을 하면 제일먼저 “쿤난(困難)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난한(남한)이 베이한(북한)을 좀 도와주어야 한다고 한다.
아침운동을 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한국에서 온 가족 4명이호텔을 나서고 있었다.
어제밤 4층에서 머물렀다고 했다.
윤경희(尹景姬)복무원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아침식사를 하란다.
짐을 꾸려 나와 식당으로 갔다.
죽, 오이무침, 빵....정말 먹고 싶은 것이 없다.
아침식사는 숙박비 200원에 포함되어 무료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 또 내 옆에 앉아서 계속 이야길 하다가
자기 때문에 식사도 못할 것 같다며
아버지에게 피아노 한곡을 선사 하겠다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북한에서는 전자풍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제 “선생님”에서 하룻밤 사이에 나는 북한 처녀의 “아버지”로 호칭이 바뀌었다.
중국 여직원들이 아빠로 불러 “중국 딸”도 많은데 “북조선 딸”도 한 명 얻었다.
나 같은 딸부자 없을 것 같다.
이 곡 저 곡... 다섯 곡 정도의 피아노를 치며 들어본 곡이냐고 물었지만...
음악에 문외한인 탓인지 아는 노래는 하나도 없어 미안했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고 한다.
피아노를 칠 줄 알면
남들에게 품위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 피아노를 배웠단다.
매우 솔직한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음악을 전공한 사람의 말 치고는 의외였다.
나에게 선사한 노래는 책을 보내 주겠다는 감사의 표시일 것이다.
만약 빠른 시일 내에 올 수 없으면 우편으로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남조선사람과 우편물을 주고받으면 문제가 없겠느냐고 물으니
“공부하겠다는 건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나의 염려를 일축한다.
중국테리비만 보고, 조선말은 가급적 말하지 말고
매일 틈만 나면 중국어문장을 외우라는 말을 남기고 작별인사를 했다.
호텔객실에 설치된 고객 필수 숙지사항이 특이하다.
남녀가 같이 한방에 잘경우에는 결혼증을 제시해야 한다.
숙박등기를 한 사람외에 추가로 숙박할 수 없다.
숙박등기후 타인에게 방을 주어서는 안된다.
매춘을 해서는 안된다.
객실에서 허가없이 화기나 별도의 전기제품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만약 위 사항을 위반할 경우
호텔비의 3배 내지 10배 해당액을
벌금으로 징수할 권리가 호텔경비대에 있으며
필요한 경우 공안국에 인계할 수 있다.
아침 7시 30분....호텔 체크아웃
장군무덤 등 관광지의 중국발음을 중국인 호텔복무원에 배운 뒤
길에 널어선 택시 중에서 나이가 듬직한 착해 보이는 기사를 찾아가
장수왕릉(장쮠펀)을 갔다 오는데 얼마냐 물으니 15원을 달란다.
대려다 주기만 하면 10원...
일단 택시를 탔다....그리고 흥정 시작....
주요관광지를 일괄해서 관광하는데 50원으로 낙착...
장군무덤에 가니...아직 직원이 출근 안 해 입장할 수 없단다.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 안되었다. 30분 정도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
그럼 집안-북한 만포간의 압록강에 놓인 철교를 먼저 구경하고 오자고 했다.
나이가 얼마냐 ?....50살
운전 한지는 얼마냐......아주 짧다....1년
운전하기 전에 뭘 했느냐?....공장에서 아주 힘든 일을 했다.
아니가 몇 명이냐? ...둘이다.
너는 한족인데 벌금을 하지 않았느냐?....안했다.
아주 힘든 일.....아주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2명까지 놓을 수 있다.
각 성마다 다를 수도 있지만...........
운전하면 하루 수입이 얼마냐?......4-50원 정도....
장사를 해라. 그래야 돈을 번다.......밑천이 없다.
그놈은 밑천을 번치엔(本錢)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집안에서 만나본 모든 중국인들을 보고 놀란 것은
고구려의 중국 보통화 발음인 “까오쥐리”를 “고꼬우리”로 발음 했다.
한국어 “고구려”에 가까운 발음이다.
철교입구엔 인민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입구 초병에게 철교를 보러 왔다고 하니
증찌엔(신분증)을 보여 달란다.
안으로 들어가 다시 표 파는 군인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신청서, 입장표 영수증을 받아 부대 연병장을 지나 철교로.....
철교 입구엔 초병이 경계근무를 하고
나를 수행한 병사가 망원경 있는 곳으로 가서 북한땅을 구경하라고 한다.
잘 안 보인다고 했더니 내가 망원경을 볼 줄 모른다고 하며 초점을 맞추어 준다.
다시 보았지만 역시 아침 안개 때문에 잘 안 보인다.
철교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가능 하단다.
하지만 어제부터 디카의 카드가 잘못되어 촬영이 불가....아쉽다.
부대 안 기념품상점에 들어가니
북한 우표, 북한 물건, 북한 화폐를 팔고 있다.
1원권, 5원권, 10원권, 50원권..그리고
앞면에 김일성사진, 뒷면에 김일성생가사진이 있는 100원권...
1set에 인민폐 20원을 달라고 한다.
좀 깍자고 하니 길게 설명하며 안 된단다.
아마 북한화폐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 같은데....뿌밍바이....
가짜가 아니냐고 물으니...진짜란다....묻는 내가 바보지....
100% 가짜돈일 것이라고 믿고 기념으로 20원을 주고 샀다.
여성복무원에게 결혼 했느냐고 불으니
아이가 자기의 허리까지 크다고 자랑한다.
남편은 군인이라고 했다....군부대내의 매점을 운영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군 하사관 정도 간부의 마누라 인 모양이다.
이곳을 찾는 한국인 중에 혼자 구경 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한다.
여름에는 많은 한국인 단체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했다.
다시 장군무덤(장군분. 장쥔펀)으로.....
안내지도에는 고구려 20대 장수왕릉으로 설명되어 있다.
높이 13.1m, 바닥 최장 길이 31.58m, 22개층의 돌로 쌓여져 있다.
무덤을 오르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이 다르다.
계단은 무덤보호를 위해서인지 나무로 되어있다.
제일 위층에 올라가 내부로 들어가면
두개의 큰 돌이 유리에 덮여져 있는데...
안내설명을 시작하기에 하지말리고 했다.
못알아 듣는 설명 하면 뭘하겠는가.....
제일 위에 올라가니 10리 전방에 집안시가 한눈에 바라보이고
바로 뒤에는 산이 둘러싸고 있다. 그저 좋은 묘터구나 하는 생각만......
밑으로 내려오니 50명가량 되는 노인들이 들어서고 있다.
노인회서 단체관광 온 것인가 했는데....
매표소 주차장에 오니 대형 버스 한 대...
그리고 인민폐 50만원 가까이 됨직한 5-6대의 고급승용차와 운전수들....
차에는 모두 길림성의 번호판이 달려 있었다.
나의 기사에게 물으니 라오간부(老幹部)...은퇴한 고급 간부들이라고 한다.
중국은 은퇴한 공산당 간부나 퇴역한 군 간부는 엄청난 대접을 받는다.
청도, 연태 등 경치 좋고 환경 좋은 곳곳엔 퇴역간부의 휴게소가 있고
기차역, 여객터미널 등에도 이들을 위한 대합실이 따로 있다.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생명을 바친 항일 독립운동의 영웅들.....
김일성의 남침을 저지가기 위해 피 흘린 6.25전쟁의 영웅들......
북한공산집단의 침략위협을 막고 국토를 수호한 직업군인들.......
건설과 생산현장의 산업기술자들....
수출증대를 위해 세계를 누비며 피땀 흘린 무역전사들.....
60만 대군으로 일컬어지는 군인이 있는 나라에서...
오늘의 풍요한 한국을 만든......
이런 사람들을 배려하는 시설이 전혀 없음이 이상하다.
최근엔 몇 개 밖에 없는 군 골프장도 폐쇄 시키겠다고 하고 있으니......
앞으로 누가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줄 것인가...........
장수왕릉 앞에 있는 고구려 19대 왕릉(중국표현 하오타이왕. 장수왕의 아버지)과
하오타이왕비(好太王碑.공덕비)를 구경하고(입장료 30원) 시내로 돌아오니 10시...
약 2시간 반 동안 차를 이용한 셈이다.
당초 계약한 50원에 잘 안내 해준 대가로 5원의 팁을 얹어 주니 황송해 한다.
아니 든 놈은 젊은 놈에 비해 편안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어 좋다.
그의 명함을 받아 다음에 오면 찾겠노라고 했다.
아침식사가 부실했고....
심양까지는 가는 6시간을 굶어야 하기 때문에
조선족불고기 식당을 들어가
돌솥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맥주도 한잔 하고 싶었지만 버스에서 소변이 염려되어 참았다.
종업원인지....주인인지 모르는 30대 조선족여성...
서명희(徐明希) 131-9614-1977
민박집이 있느냐고 물으니 집안에도 있다고 한다.
그녀가 소개해준 민박집 연락처 626-6798(이영숙)
묘향산호텔 보다는 낳을지 모를 것 같은데....안전문제가 걱정.....
여러 명이라면 민박을 시도해 볼만하지 않을까.......
서명희는 10년 전에 위해에서 1년 정도 살았다고 했다.
11시 20분 집안버스터미널 출발
버스 속 여기저기서 한국말 대화가 있고
핸드폰이 울리자...여보세요...라는 한국말이 들린다.
승객 3분의 1쯤이 조선족인 것 같다.
내 옆좌석의 아줌마 둘도 한국말로 대화를 나눈다.
한 아줌마는 한국에 가기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말을 완전히 못 알아들어 걱정이라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다른 아줌마에게
내말을 모두 이해하느냐고 물으니 50% 정도라고 한다.
한국비자신청을 해놓은 아줌마가 자기는 다 알겠는데
뭘 못 알아듣느냐고 하면서 핀잔을 준다.
내 말이 너무 빨라서 못 알아듣겠다고 한다.
내가 본디 말이 빠른데다...경상도 사투리....
서울사람도 내 말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으니까.......
집안->통화->무순->심양
6시간의 버스여행 끝에
어둠이 깔리고 도시의 모든 조명이 켜진 시각에 심양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
심양시....요령성의 성도...동북 3선의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
9개의 구, 1개의 위성도시, 3개현....총인구 750만....도시인구 5백만
북경으로 천도 하기전 청나라의 수도였다.
일제괴뢰정권인 만주국의 수도 봉천이 지금의 심양이다.
한국인이 수 만명, 조선족동포도 많이 있는 도시이다.
민박집에 전화.....방이 없단다.
다시 호텔식 민박집아라고 선전한 곳에 전화.....방이 있다고 했다.
택시를 잡았다. 수중엔 지도도 없다. 방향도 길도 모른다.
전화를 해서 택시기사와 통화를 시켰다.
하지만 기사도 민박집 주인의 중국말을 정확이 모르겠다고 한다.
그럼 좌우간 시타(西塔)으로 가자........
차가 아주 깨끗하고 기사도 예쁜 여자다.
누구 차냐고 물으니 자기 개인택시라고 한다.
가는 도중에 나에게 양해를 구한다.
시타까지 가려면 택시비가 7원정도 되니 7원만 내라.
기름도 떨어져 주유소에도 가고
개인 일도 있어 어디 좀 들렸다 가겠다. 괜찮겠느냐?
기름 넣고 나서 한참을 가다가 길에 차를 세운다.
신체 건장한 남자와 교대를 하면서
나의 목적지와 받아야 할 택시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여성기사가 나에게 한 말....
그들끼리 하는 말... 다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대충 그런 말인 것 같았다.
분명이 터미널에서 가깝다고 했는데 한참을 가도 아직 더 가야 한다고 한다.
시타에 가서도 동방명주호텔 위치를 모르겠다고 한다.
다시 민박집에 전화를 해서 통화 한 다음 동방명주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택시비가 14원이나 나왔다. 얼마를 줄까 물으니 10원을 달라고 한다.
여자 기사가 7원이라고 했었지만 그냥 10원을 주고 내렸다.
호텔 바로 뒤에 있는 아파트가 민박집이었다.
마중 나온 할머니와 함께 집엘 들어가니
200평가량의 고급 고층아파트....7층.......
방 4개...넓은 방에는 목욕탕, TV, 깨끗한 침대........거실도 엄청 넓다.
모두가 아직 저녁식사 전이었다.
식탁에 있는 삶은 반고구마로 일단 허기를 체우고....
할머니가 차려준 저녁식사......여러 명이 둘러 앉아 먹는 식사...
된장국도, 반찬도, 밥도 맛있었다.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밥을 더 먹는 일은 나에게 아주 더문 경우이다.
할머니의 아버지 고향은 평안도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일본에서 공부하던 두 딸은 일본대학에 유학 온 한국청년과 결혼...
모두 한국에 살고....사위는 한국 대기업의 부장......
아들은 위해에서 공인 150명 정도의 고급브랜드 체육용품의 임가공 공장의 사장....
영감님은 10년 전에 하늘나라고 갔다고 했다. 곧 70이 된다고 했다.
장기 투숙하고 하고 있는 한국인 부부의 말에 의하면
운동하고, 마작하고, 집안 청소하고, 식사준비하고, 빨래하고......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몸놀림도 빠르고 경쾌하며 참 건강해 보인다.
아침 5시 기상....
샤워를 하고 거실로 나오니 할머니가 새벽시장에 가기위해 대문을 나선다.
나도 따라 나섰다. 그런데 70 노인 할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간다.......
시장은 엄청 컸다.....아침장을 보러온 시민들로 붐빈다.
나는 할머니를 놓쳤다. 사람이 많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천천히 물건값을 묻기도 하며 시장 전체를 30분정도 구경하고.....
시타 부근을 돌아보니 중국땅임에도 중국 글씨와 중국 상점이 없었다.
한국 서울의 어느 음식촌 거리로 착각할 정도이다.
거리 한 모퉁이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적은 팻말을 먹에 걸고
구인자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재빨리 얼굴을 돌린다.
조선족 여성들이었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로 돌아오니 할머니는 이미 돌아와 아침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길거리 간판을 다 읽을 줄 알아 찾으려고 생각도 안했단다.
아파트 뒤에는 중학교가 있었다. 심양6중.....조선족 학교라고 했다.
심양 1중에서 6중까지 조선족 학교라고 했다.
자존심 강한 한족이 1번을 조선족 중학교에 주었을 리 없는데.....
이상 했지만 당장 확인할 길이 없다. 다음에 꼭 확인해 봐야지.....
숙박비 +식사 = 150원을 드리고 민박집을 나왔다.
하루 더 심양에 머물고 싶었지만
급한 일이 생겨 연태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선양베이짠(심양북역)으로 갔다.
택시비가 9원 나왔다. 베이잔에서 터미널이 가까웠다.
어제 택시비 10원은 바가지 쓰지는 않은 것 같다.
10시 50분 심양북역 출발 대련행 기차표를 산 뒤 (차비 55원)
1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역 부근 구경......
역광장 옆에는 북경, 천진, 하얼빈, 단동, 대련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많이 있었다.
심양북역은 대대적인 플랫트홈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열차에 오르니....너무나 지저분....잉쭤가 이런 것인가.....
콧수염을 기른체 옷차림도 지저분한 놈을 코앞에 마주하고
6시간을 버텨야 할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차가 출발하자 앞의 칸에 자리가 비어 있다며 그곳으로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재빨리 찾아가 창문 옆자리를 잡았다. 훨씬 깨끗한 좌석이었다.
좌석 쿠션도 좋았다......내가 구입한 표와 다른 것이라면 추가요금 주면 되지 뭐....
현급 지역의 역만 정차하는 것 같았다.
열차 안에서 항공권 판매소에 전화....
오늘 대련-연태 항공편을 알아보니 오후 2시 30분. 밤 11시 5분에 있단다.
20% 할인이 가능 하다니....360원....6시간이나 걸리는 선박의 3등간은 221원
정말 지루하고 피곤한 6시간의 기차여행 끝에 대련역 도착.
택시타고 민항따사(민항빌딩) 매표소에 가서 11시 5분 항공권을 360원에 구입
한국식당도 찾을 겸... 거리도 구경할 겸....중산광장까지 걸었다.
한국식당은 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한글간판 조차도..............
넓은 중산광장을 둘러싸고 일본 침략당시에 건축한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중산광장 주변은 고대건축물의 전시장 같았다.
지금 한국은행 신관건물을 닮은 중국인민은행을 바로 뒤에 두고 있는
조선은행 대련지점의 건물도 있었다.
건물 입구에는 당시에 어떤 건물이었다는 설명과
절대 보존 건물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전에 가보았던 대련역 앞 태능갈비식당으로 가서 해물된장으로 식사...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몸도 피곤하고.....마땅히 갈 곳도 없어 버스(710번)를 타고 공항으로.......
6년전 공항호텔에서 하룻밤을 머물 때보다는
공항청사도 새로 건축하는 등 발전했지만
아직도 공항 부근의 밤은 어둡기만 했다.
공항입구에는 한국식당과 사우나가 있었다.
2시간 넘게 소설책을 보며 기다리다 체크인.....
검색대를 통과하고 나니 배낭을 열어 보아야겠다고 한다.
별 것 없는 배낭족의 짐이 뭐가 의심스러운지....
배낭의 물건을 꺼내던 나는 아차 했다.
과일을 깎아 먹기 위해 여행시에 가지고 다니던 소형과도가 있었던 것이다.
아주 좋은 칼이고 요긴하게 사용하던 칼인데....압수당했다.
SDA....산동동에어....80인승 소형비행기.....
예정보다 조금 일찍 이륙했다.
대련공항을 이륙한지 30분만에 연태공항에 착륙....
대련공항에서 마중을 부탁한 중국인의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4박 5일의 선조의 발자국을 따라 떠난 혼자만의 중국여행......
아버지 엄마를 모시고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젠가 다시 시간을 내어 아버지 어머니의 사진을 품고 돌아보아야 겠다.
서기 598년 당. 수나라 시대 실지 수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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