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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쓰는 법 | 관련 컨텐츠 : 2005 추석 |
지방(紙榜) : 종이에 지방문을 써서 만든 신위(神位) |
규격 : 너비 6cm 정도, 길이가 22cm 정도가 좋으며 백지를 사용 |
위치 : 고위(아버지)를 왼쪽에 쓰고 비위(어머니)를 오른쪽에 쓴다. |
한 분만 돌아가셨을 경우에는 돌아가신 분만 중앙에 쓴다. |
관련정보 : 지방 접는 법 제례순서 축문 쓰는 법 지방/축문 서식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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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하는 법 전통예절에서의 동서남북은 웃어른이
계신 곳을 상석으로 보고 북쪽으로 친다. 혼례에서는 주례가 서있는 곳이,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게신 곳이, 직장에서는 상사의 자리가, 행사장에는
단상이, 제사에서는 신위를 모신 곳이, 건물이나 사당, 묘지는 실제 방위와 상관없이 북쪽에서 남향한 것으로 간주한다.
웃어른의 위치가 북쪽이므로 어른의
위치에서 보아 그 왼쪽을 동쪽, 오른쪽을 서쪽, 그 앞을 남쪽으로 보았다.
실제 방위에 관계없이 어르신이 앉는
자리가 북쪽이고 남향해 있는 것으로 친 것이다.
그리고 동쪽은 해뜨는 곳이므로
음양으로 따지면 양이어서 남자의 방위이고, 서쪽은 해지는 곳이므로 음이어서 여자의 방위가 된다. 남자는 동쪽, 여자는 서쪽이란 의미로
남동여서(男東女西)이다.
그러나 어른의 위치에서 볼 때 남자의
방위는 동쪽인 왼쪽에 있고, 여자의 방위는 서쪽인 오른쪽에 있어서 남좌여우(男左女右)가 되는 것이다.
두 손을 마주잡는 공수를 할 때도 이
원리로 하기 때문에 남자는 동쪽이며 양을 상징하는 왼손을 위로 올리고, 여자는 서쪽이며 음을 상징하는 오른손을 위로
올린다.
남좌여우, 남동여서이기 때문에 어른과
남녀가 함께 있을 때는 북쪽에 어른이, 서쪽에 여자가, 동쪽에 남자가 앉는다.
혼례 때는 주례가 북쪽에서 남향해
서면 신랑은 동쪽에서 북향해 서고 신부는 동쪽에서 북향해 선다. 제례를 올릴 때도 북쪽의 신위를 향해 동쪽에는 남자 자손이, 서쪽에는 여자
자손이 선다. 제상 가까운 곳부터 항렬이 높은 사람 순으로 선다.
일렬로 자리 배치를 할 때는, 동쪽은
해다 뜨고 밝은 곳이어서 동쪽이 상석이다. 단상의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로 좌석을 배치할 때는 중앙이 1순위자가 앉는 상석이 되고, 2순위자는
1순위자의 서쪽에 자리배치를 한다.
짝수일 때는 동쪽을 상석으로 하여
일렬로 배치하면 된다.
높은 곳과 낮은 곳에서는 높은 곳이
상석이다. 그러므로 행사를 할 때는 단상을 만들어 어른을 높은 곳에 모신다.
앞쪽과 뒤쪽은 앞쪽이 상석이다.
어른의 앞에 가리는 것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리한 곳이, 안전한 곳이, 상석과 가까운 곳이, 전망이 좋은 곳이, 들락날락하는 문과 먼 곳이, 겨울에는 따뜻한 곳이, 여름에는
시원한 곳이, 어른이 앉아 있는 곳이 바로 상석이다.
어른을 안내할거나 수행할 때는 어른의
3보 앞이나 3보 뒤에서 인도하거나 수행한다.
수행자나 인도자는 어른의 서쪽에
위치해야 한다.
여럿이 수행할 때는 좌우로 서서
수행한다. 제1수행자가 오른쪽에, 제2수행자가 왼쪽에 서야 한다.
국기 게양할 때도 마찬가지의 방위를
적용하면 된다. 우리나라 국기를 상석에 놓는데, 기타 다른 나라의 국기는 나라에 상하가 있을 수 없으므로 알파벳 순으로 게양한다.
그러나 국제연합기와 함께 게양할 때는
국제 연합기가 우리나라 국기보다 우선한다.
손님을 맞이할 때는 주인이
서향립(西向立)해야 한다.
주인의 자리는 동쪽이고 손님의 위치는
서쪽이다. 이때 주인은 동쪽에 서서 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서향립이다. 손님은 서쪽에 서서 동향을 바라본다. 전통예법은 동쪽 계단은 주인이
사용하고, 서쪽 계단은 손님이 사용한다.
이상의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예법에
해당한다. 생사유별, 즉 산 자오 죽은 자와는 다름이 있다. 죽은 사람은 어두운 세상인 음부로 갔으니까 이제는 서쪽이 상석이 된다.
그러므로 두 분 신주를 모실 때나
시신을 안장할 때에는 서쪽을 상석으로 해서 웃어른을 모신다.
또 합설할 때 서쪽에 남자 신위를,
동쪽에 여자 신위를 모신다.
저승에서는 남녀의 방위가 바뀌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대 조상 신위를 모실 때도 서쪽부터
고조, 증조, 그 다음에 조부 신위, 아버님 신위를 차례로 모신다.
그러나 웃대 시조를 중앙에 모시고
아랫대 조상을 좌우로 모실 때는 시조를 중앙 북쪽에 모시고 그 앞에 제상을 차리고, 그 동쪽에 고조 신위와 제상을, 그 서쪽에 증조 신위와
제상을 차리고, 중앙과 떨어진 동쪽에 조부 신위와 제상을, 중앙과 떨어진 서쪽에 부친 신위와 제상을 차리면 된다.
고조를 시조의 동쪽에 모셔야만이
시조가 상석이 되고 또 좌우로 채워졌으므로 중앙이 상석이 된다. 살아있는 자손들은 동쪽에 남자 자손들이, 서쪽에 여자 자손들이, 연장자는
앞쪽에, 연하자는 뒤쪽에 서면 된다.
같은 항렬이라도 가운데 절하는 자리
가까운 곳에 서열이 높은 사람이 서고, 먼 곳에는 낮은 사람이 선다.
예의 가장 기본이 절하기이다.
우리나라는 좌식 생활에 맞게 앉아서
하는 절을 행해왔는데, 요사이는 명절이나 폐백 때에 절을 한다.
절할 때의 기본 자세는 공수이다.
전통예절에서는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을
당했을 때 먼저 절을 하고 인사말을 나중에 하였다.
공수(拱手)란 어른을 모시거나 공식
행사에 참석할 때 공손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하는 우리의 전통 예절이다.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잡으면서
엄지손가락은 깍지를 끼고 네 손가락은 가지런히 펴서 포개야 한다.
남자의 공수한 손의 위치는 바지
허리선이며, 여자의 위치는 저고리 밑이다. 평상시 남성은 왼손이 위로, 오른손이 아래로 가게하며, 여성은 오른손이 위로 가게 한다. 흉사시에는
평상시와 반대로 한다. 동양의 음양법에 의하면 남성은 양이기 때문에 동쪽을 나타내는 의미로 오른손을 위로 하며, 여성은 음이어서 서쪽을 나타내는
오른손을 위로 하는 것이다.
이것을 남동여서(男東女西)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이치로, 웃어른을 남녀가
함께 뵈올 때는 공수를 하고 여자의 오른편에 남자가 남좌여우(男左女右)로 서야 한다.
어른의 편에서 보면 남성이 왼쪽,
여성이 오른쪽에 서는 것이다.
공수는 어른 앞에서 공손함을 표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모든 절의 시작이기도 하다.
큰절은 답배하지 않아도 되는 높은
어른에게나 의식 행사시에 하는 절이다.
남성의 경우, 공수하고
대상을 향해 선 다음, 허리를 굽혀 공수한 손을 바닥에 짚는다. 왼쪽 무름을 굽히고 오른 무릎을 마저 굽혀 왼 푸름과 가지런히 꿇는다.
왼발이 아래가 되게 발등을 포개며
뒤꿈치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려 깊이 앉는다.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며 이마를 고수한 손등에 댄다.
이때 엉덩이가 들리면 안 된다. 잠시
머물러 있다가 머리를 들며 팔꿈치를 바닥에서 뗀다.
오른 무릎을 먼저 세운 뒤
공수한 손을 바닥에서 떼어, 세운 오른 무릎 위에 얹어 힘을 주며 일어나서 발을 가지런히 모은다.
여성의 경우 공수한 손을 인중
가까이로 올린 뒤, 고개를 숙여 공수한 손등에 붙인다.
시선은 자신의 발끝을 본다. 이 때
손바닥이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도록 한다. 왼 무릎을 먼저 꿇고 오른 무릎을 마저 꿇어 오른발이 아래가 되게 발등을 포개며 뒤꿈치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려 깊이 않는다. 윗몸을 45도쯤 앞으로 굽히는데 이때 손등이 이마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잠시 머물렀다가 오른 무릎을 먼저
세운 후 무게 중심을 뒤로 하면서 바로 선다.
양손을 다시 공수한 자세에서 평절보다
조금 더 머리를 숙여 굴신례를 한다.
평절은 설날의 세배, 어른의 생신,
신혼 여행 후 양가에 인사할 때, 정중히 맞절해야 하는 상대에게, 상례 때 상주와의 인사 시에 하는 절이다.
남성은 큰절과 같은 동작으로 하되,
이마를 공수한 손등에 댄 뒤 바로 일어난다.
여성의 경우 큰절과는 달리 공수한
손을 풀어 양 옆으로 내린다. 왼무릎을 굽혀 천천히 앉는다. 두 손을 무릎선과 일치가 되게 놓고 고개를 숙인다.
손가락을 가지런히 붙여 모아서 손끝이
양 옆을 향하게 한다.
이때 팔굽이 구부러지지 않게,
상대방에게 손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조심한다. 목이 저고리 깃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발꿈치를 세워 일어나기 쉽게 않은 후 오른쪽 무릎을
세우며 일어나면서 두발을 가지런히 모은 다음에 공수하고 굴신례를 한다.
반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절에 대해
답배할 때 하는 절이다.
남성의 반절은 엉덩이를 내리지 않고
이마를 공수한 손등에 대지 않는다는 점이 큰절과 다르다. 공수한 손을 바닥에 대고 무릎꿇은 자세에서 엉덩이를 머리까지 수평이 되게 엎드렸다가
일어나는 절이다.
여성의 반절은 평절을 약식으로 하면
된다.
앉은 자세에서 일어나지 않고 두 손만
바닥에 짚으면 된다. 오른손만 바닥을 짚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으며 고개를 약간 숙이는 식으로 해도 무방하다.
맞절이란 동서간이나 형제 등 같은
항렬간이나 친구간에 하는 절로 평절을 약식으로 한다.
아랫사람이 먼저 절을 시작하고 늦게
일어난다.
웃어른은 늦게 절을 시작해 먼저
일어난다. 웃어른은 조금만 숙이고 아랫사람은 조금 많이 숙인다.
답배는 아랫사람이 절을 시작해 무릎을
꿇는 것을 본 다음에 웃어른이 시작한다.
웃어른은 아랫사람이 일어나기 전에
절을 끝낸다.
아랫사람인 제자나, 친구의 자녀,
자녀의 친구에게서 절을 받으면 웃어른을 답배를 한다.
절하는 회수는 남자는 한번, 여자는
두 번이 기본회수이다.
이는 남은 양, 여는 음이라는 음양의
이치에 따른 것이다. 절을 많이 할수록 공경을 많이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산 사람에게는 기본 회수만 하고, 의식행사와 죽은
사람에게는 기본회수의 배를 한다.
절의 종류와 회수는 절을 받을 어른이
시키는 대로 변경하거나 줄일 수 있다.
혼례 때는 의례이므로 신랑은 재배를
하고, 신부는 수모의 도움을 받아 사배한다.
신랑은 절하기 전에 읍을
한다. 원래 읍례는 장소가 여의치 않아 절을 하지 못할 때 간단하게 공경을 나타내는 동작이다.
읍례는 여성의 굴신례(서서하는 30도
인사)에 해당한다. 혼례 때는 선배후읍을 한다.
선배후읍은 먼저 절을 하고 나중에
읍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읍이란 공수한 손을 가슴까지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는 동작을 말한다. 읍을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읍
공수하고 편한 자세로 서서 고개를
숙여 자기의 발끝을 바라본다.
공수한 손이 무릎 아래에 이르도록 허리를 굽힌다. 허리를 세우며 공수한 손을 밖으로 원을 그리며 팔이 수평이 되게 올린 다음 팔꿈치를 구부려 공수한 손을 가슴높이로 끌어올린다. 이때 손바닥은 아래를 향한다. 공수한 손을 원위치로 내린다.
◆ 여성 한복
옷고름 매는 법
오른쪽의 짧은 고름을 왼쪽의 긴 고름
위에 걸친다.
걸친 짧은 고름을 긴 고름의 밑으로 넣어 위로 잡아 뺀다. 위로 빼낸 짧은 고름을 왼손으로 잡아 둥근 원을 만든다. 긴고름으로 고를 만들어 짧은 고름의 원 안에 넣으면서 매어준다. 고는 매듭보다 1.5배 정도 길이로 하고 고와 매듭은 수평을 이루도록 정리한다. 저고리 고름매는 법
◆ 남성
한복
대님 매는 법
바지가 주름지지 않도록 손으로
잡아준다.
바지 폭이 발목에 맞게 잡는다. 바지 솔기를 돌려 바깥 복숭아 뼈에 댄다. 대님은 안쪽 복숭아 뼈에서부터 바깥쪽으로 돌린다. 대님을 한번이나 두 번 돌려서 안쪽 복숭아 뼈 위에 맨다. 매듭이 풀리지 않게 정리한다. 한복 대님 매는
법
①바지의 배래 솔기선을 안쪽 복숭아뼈에 고정시킨다.
②바지 폭을 모아서 뒤로 돌려 끝부분이 바깥쪽 복숭아뼈 위에 오도록 한다.
③대님 한쪽 끝을 배래선에 고정시킨 다음 두 번 돌려서 묶어준다.
④너무 조여지지 않도록 마무리한다.
마지막 공주 이홍씨의 한복 입는법
"한복의 포인트는 하얗게 드러난 목선"
한가위를 맞아 모처럼 한복을 입어본 사람들은 잊혀져 가는 한국의 전통미에 대해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가졌음직하다. 한복 입은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 이홍 씨. 그의 귀족적 기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마지막 황제 고종의 증손녀인 그를
만나 한국의 전통미와 살아 있는 왕실의 위엄을 조명해보았다.
...... 한복 차림을 한 조선왕조의 마지막 공주를 본다는 사실에 인터뷰 전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마 후 이중 치마에 금박으로 수놓아진 당의를 곱게 차려 입은 그가 피팅룸에서 나왔다. 이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중전들이 입던 옷차림을 재현한 것으로 왕후의 기품과 위엄이 이씨의 모습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배어 나왔다. 하얀 피부에 갸름한 얼굴, 긴 목선이 한복과 더없이 잘 어울렸다. “저희 가족들은 명절 땐 항상 한복을 입습니다. 추석에는 제사를 지내고 여느 가정처럼 송편도 빚으며 가족들끼리 오순도순 지내죠. 한복은 입었을 때 여성스럽고 또 입을수록 불편하지 않은 옷이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제 외모가 서구적이지만 일단 한복을 입으면 동양적인 모습이 나온다고들 해요.” 궁중의 격식에 맞춰 한복을 입은 그는 영락없는 조선시대 양반 여인이다. “외모보다 제가 받은 교육은 더 서구적이에요. 어머니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승마, 성악 등 20가지가 넘는 예체능 교육을 시키셨어요. 어머니는 자식들이 귀족적 소양을 갖춘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하지만 서구적 교육과 현대적 외형을 가졌다고 우리의 뿌리를 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제 정신은 항상 고전을 추구합니다.” 그는 전통적인 취미활동 중에서도 궁중의 다도와 전통 음악, 무용, 사군자를 특히 좋아한다. 한복은 계절별 그리고 명절별로 한 벌씩 가지고 있으며 컬러풀한 한복을 좋아한다고. 그러나 그는 한복 고유의 선과 문양의 아름다움을 살리지 못한 퓨전 한복은 질색이다. 또한 여자가 한복을 입었을 때 심플하며 우아하고 도도한 인상을 주는 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잘 모르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고 덧붙였다. 이씨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것이 어디 그뿐이랴. 일반인이 우리나라 근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도 왕손인 그에게는 사무친 한(恨)이다. 이씨로부터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해방 후 한국전쟁과 군사정권 등 격동의 시기를 보내며 왕실 가족이 겪어야 했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으며 선릉으로 발길을 옮겼다. 은은한 금빛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전통문양이 곱게 수놓아진 자색 한복을 입은 단아한 이씨의 모습에서 명성황후가 되살아난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혹시 본인이 명성황후를 닮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웃음과 함께 “할머니는 키가 작으셨다”며 “조선시대 왕비들은 20kg나 되는 머리를 이고 다녀서 키가 클 수 없었다”고만 말했다. “증조할머니이신 명성황후는 매우 총명한 분이셨고 나라를 위해 순국한 애국자이셨죠. 궁궐에 들어가 사건이 났던 장소를 방문했는데, 저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눈앞을 가리더군요. 한 맺힌 증조할머니의 위령이 저를 그렇게 울게 만든 게 아닌가 해요. 제가 언젠가는 할머니의 명예를 회복시켜드리고 역사를 바로잡을 겁니다.” 눈물을 머금고 침착한 어조와 결연한 태도를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격랑을 헤쳐오면서도 고고함. 지켜온 우리의 자존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씨는 자신의 온화한 성격은 의친왕의 아들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너무 조용하셔서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예요. 소리 지르는 걸 싫어하시고요. 항상 책을 읽으시고 가족들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죠.” 그에게는 꿈이 있다. 테레사 수녀를 가장 존경한다는 그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한다.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보다 황실 사람들은 매우 따뜻하며 친근했으며 인간적이었어요. 저는 우리나라가 황실을 보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경제적 이유만 봐도 그래요. 영국, 일본, 스웨덴 등 황실이 있는 45개 나라 중 경제적으로 부강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그만큼 황실로 인해 거둬들이는 관광수입 등 경제적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이 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구의 문화에 밀려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전통적 아름다움과 정신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한복협찬 금단제: (02)517-7243, 515-6383 “현대적 액세서리는 한복과 相剋” 이제 사람들은 특별한 행사 외에는 한복을 거의 입지 않고 있으며 한복 문화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한복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현실이 몹시 안타깝다. 한복을 만들 때 색상은 현대적 감각에 맞게 컬러풀하게 하지만 패턴과 문양 등 전통적 느낌은 그대로 살려 전통의 미를 계승하고자 한다. 한복을 입을 때 여자들의 경우 목걸이와 귀고리 등 현대적인 액세서리는 한복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므로 피하고 대신 뒤꽂이와 노리개, 한복과 어울리는 반지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도 한복의 은은한 멋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피해야 한다. 치마를 입을 때는 뒤 중심에서 양쪽으로 7∼10cm 정도 여며서 입고 끈은 앞에서 묶는다. 이때 치맛 자락은 왼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즉 왼쪽으로 겉자락이 오도록 입는다. 저고리는 동정니가 잘 맞도록 맞춰서 목선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입는다. 깃고대와 어깨솔기가 뒤로 넘어 가지 않도록 약간 앞으로 숙여 입어야 한다. 이때 저고리 안에 입은 속적삼이나 치마허리 부분이 저고리 밑으로 보이지 않도록 조심할 것. 남자한복은 바지저고리와 조끼, 마고자, 두루마기를 입고 외출시에는 반드시 두루마기를 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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