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인에게 길을 가르쳐 주지 마라." 왜?
몽골 여행
중에 만난 한 몽골인이 유목민들의 해학이 담긴 속담이라면서 한마디 던졌다. “모든 것을 맛보려고 하는 개가 달 보고 운다”.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본다는 뜻과 같은 몽골 속담이다. 그 개 얼굴 표정이 생각나서 참 재미있게 웃었다.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고 했더니 그는 “간이
굳었느냐?”고 물었다. 허파에 바람 들어 갔느냐는 말이냐고 물으니 몽골에선 그런 경우는 꼬리뼈가 부러졌다고 말한단다. 참 많이도 닮았다. 하늘에
침뱉기는 위로 돌던지기,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스케일이 더 커져서 무쇠 솥이 깨진다로 바뀌었다. 처삼촌 벌초하듯 한다는 손등으로
일한다고 말한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는 속담도 태어나지 않은 아기 갑옷 만들기란 것으로 쓰인다.
유목민답게 몽골에는 가축과
이동에 관련된 속담이 많다. “여자는 고향이 없다”는 말이 있다.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을 말타고 떠난다(모르도흐)고 하는데, 한번 떠나면
그만인 유목민들의 삶, 여성들의 애틋한 정서을 보여주는 것 같다. 유목민들은 “세 번만 이사해도 살아남을 가구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집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구는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다. 그러니 책도 없는 것이고, 족보 같은 허장성세는 더더욱 있을 까닭이
없다.
말은 유목민의 친구이고 가족이다. 그래서 말에 관한 속담이 많다. “좋은 말은 타봐야 알고 좋은 사람은 사귀어봐야 안다”,
“아버지가 있을 때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하고, 말이 있을 때 멀리 가봐야 한다”와 같은 속담은 우리가 느끼는 정서와도 비슷하다. 다만 '좋은
술'이 '좋은 말'로 바뀌었을 뿐이다.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한국의 속담이 어쩐지 정착적으로
느껴진다.
몽골 사람들은 동물을 통해 인간사를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일을 미루지 말고 빨리 해야한다는 말은 “염소
고기는 삶아서 바로 먹어야 한다”는 말로 표현한다. 다른 고기는 천천히 식는데 반해 염소 고기를 삶아 놓으면 금방 식어서 맛이 없다. 염소의
기름기 때문이다. 그러니 염소 고기를 빨리 먹으란 말은 어떤 일을 시작하면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낙타 꼬리가 땅에 붙는다”는 속담도
있다. 절대 안되는 일,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을 말한다. 30cm밖에 되지 않는 낙타 꼬리가 땅에 닿는 일은 결코
없다. 이밖에도 “풀이 많은 좋은 초원에는 가축들이 살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비난하는 속담이다. 아무리 좋은 풀이 있어도 더 좋은 곳을 찾아서 떠나는 동물들의 꼴이 꼭 인간을 닮았다.
유목민들의 옛 속담 중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유난히 신용에 관한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 몽골 속담에 “한번 좋다고
말한 뒤에는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약속을 하면 철썩같이 지킨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칭기스칸과 고원의 패자를 두고 끝까지 경쟁을
했던 라이벌 자모카가 칭기스칸에게 말했다.
눈보라가 쳐도 집결에 비바람이 불어도 집합에 늦지 말자! 약속하지 않았는가,
우리 몽골은? 한번 응낙하면 그것을 서약처럼 준수하는 자들 아닌가? ‘그러자’라고 맹세한 자들이 아닌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추방한다. - [몽골비사 108장]
이런 말들이 최초의 지구촌 사회를 만들고, 또 그 사회를 신용 사회가 되게
한 배경이 아닐까. 그것은 “가장 낮은 데를 보는 자가 가장 넓은 데를 어루만질 수 있다”는 칭기스칸의 격언과도 연결된다. 사소한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일도 하지 못한다. 신의를 강조하는 내용은 칭기스칸이 만든 법령인 [대자사크]에도 있다. 대자사크 제5조의 내용은 '물건을
사고 세 번 갚지 않거나 세 번 무르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이다. 물건값을 세 번씩이나 떼어 먹는다면 신용사회를 주장하는 사람들로써 사형에
처한다는 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물건을 세 번 물린다고 사형에까지 처하는 건 좀 심한 것 아닌가? 그런데 다시 보니 ‘참 유목민적인
법조항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상인은 서울에서 물건을 팔고 부산으로 광주로 벌써 옮겨버렸을텐데 그걸 쫓아다니면서 물려달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킵차크칸국의 역사를 다른 [황금사]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있다.
마음이 두 개인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다. 일심(一心) 일덕(一德)을 가진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 보물이다. 일심(一心) 일덕(一德)의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이다. 마음이 두 개인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 한 마리 개와 같다.
몽골인이 신용을 잘 지키는 데에는 몽골인의 습성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그들의 습성을 말해주는 속담 중에 이런 것들이 있다. “몽골인에게 길을 가르쳐 주지 마라. 길을 가르쳐 주면 그는 이후
영원히 그 길로만 갈 것이다. 그는 영원히 길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다.” 얼핏 바보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말이다. 이런 습성
때문에 소련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도, 특히 소련의 70년 지배 속에서도 종교를 비롯한 민족 정통성을 확고히 지킬 수 있었고,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유목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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