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글은 "한민족참역사"의 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한민족에 대한 역사적 사실>
우리 한민족은 인류 최초의 종족입니다. 한민족은 인류역사 자체로써, 인류의 역사의 시작이며 현재입니다. 진인(중국인)들과 왜인(일본인)들이 우리민족을 조선족이라고 비하하여 부르는데, 혈통적으로 보자면, 이들은 우리 한 민족의 후손으로써 외사촌뻘이 됩니다. 이 사실은 멀지않아, 유전공학이 좀 더 발달하면 인간 유전자 게놈의 과학적 입증으로 이 세상 백일하에 드러날 사실임을 밝혀 둡니다.
우리민족은 수천 년 전부터, 기마민족이면서 농경작을 함께 해 왔고, 청색과 금색을 좋아했습니다. 중국을 정복하고 최근까지 다스린 청제국을 세운 만주족은 진인(중국인)들이나 왜(일본)인들이 조작한대로 한민족과 다른 민족이 아닙니다. 우리 한민족은 예나 지금이나 혈통을 중요시하면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고조선-고구려(돌궐)-발해(신라)-고려(원,요,금)-청-남북한으로 이어지며 단(한,칸) 민족의 정통으로 존재하면서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진인들이 자기들을 중심으로 이 사실을 조작하려다보니 지금의 동북공정식으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결코 비웃음만으로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명백한 단군신화가 지금은 신화가 되어 있듯이 이대로 왜곡되어 간다면, 멀지 않은 훗날 우리후손들에게 오늘의 우리도 신화속의 인물로 남게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실한 역사를 알리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갈족이니 흑수말갈이니 려진이니 하는 우리식의 단어를, 한자를 써 조작해 가며 우리민족이 말족(기마족)과 다른 민족인 것처럼 조작해 놓는 바, 말갈이나 흑수말갈이란 말갈퀴를 뜻하는 말로써 같은 한민족 종족의 부족 단위로 분류 구분하는 말에 지나지 않음에도 한자로 비슷하게 써가면서 이랬던 것이다 하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이고, 또 그렇게 인식되는 맹목적인 사대주의 정신병에 걸린 오늘날 우리 한국인, 한국 사학자들이 되고만 이유는, 지난 이조시대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오늘날 겉만 한국인이고 속은 이미 중국인이 되어 버
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일찌기 깨달은 바 있어, 이 점을 바로 잡고저 지난 30년 세월동안 한민족에 관한 연구와 실사에 모든 것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몽고 옛 이름이 돌궐이었는데 이것이 몽고와 터키로 갈라졌습니다. 나라도 다르고 이름도 다르며 생김새도 다르지만 그들은 같은 민족이었지요. 곰족, 호랑이족...백제(일본)족 신라족, 경상도족 전라도족, 사슴반, 호랑이반이라 해서 곰이나 사슴, 또는 호랑이들을 말하거나 곰이나 사슴 또는 호랑이들이 사람처럼 행세하던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을 부족별로 나누어 불렀던 우리식의 표현이며 언어로써 중국식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전의 중국 황실이었던 청나라에 대해 지금의 중국 정권이나 중국 사람들인 진족들은 엄청난 역사적 스트레스(열등의식)를 받습니다. 청나라의 아버지(태조)인 누런하치(=시라소니)는 함경북도 회령출신의 김(金)씨임을 함북 출신 사람들은 압니다.
동북공정이 왜 북한(남한)까지를 포함하냐면 만주족이 고구려족이고 고구려족은 바로 우리 한민족(조선족)이었음을 진인들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청나라(청제국)는 중국을 정복한 후에 백두산을 신성시하여 경비병을 두었다는 사실은 청사에 기록되어 있는 명백한 내용입니다. 자신들을 "백두민족"이라고 했지요. 백두민족이란 백두산이 우리민족의 영산으로써, 고구려의 우리말은 높구려 즉, 백두산이므로(구려란 : ...을 높이 평가, 존중하여 붙이는 원래 우리 말로써 높을 고자는 있는데 구려란 중국말은 없으므로 중국인들은 고구려라 씀, 이
존중의 높임말을 오늘날 싸구려란 단어로 나쁘게 쓰고 심지어 방구 냄새나 똥 냄새를 표현하는 "에이 구려 ~ " 라고 쓰는 것은 어떤 목적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연개소문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는데 이분의 성자인 연씨는 백두산 천지연의 연씨입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서는 도랑가 연못의 연이라고 조작해 놓았는 바, 이러한 수법처럼 우리 참역사가 얼마나 비참하게 조작되어 왔는지를 똑바로 아는 사람은 대학이건 고구려연구회 연구원이건 간에 현 한국사 학계에는 거의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민족은 1만년동안 백두산을 신성시 해 왔습니다. 우리가 백두산을 신성시하는 이유는, 우리민족의 "발원지로써 혼의 산"이기 때문입니다. 백두민족이란 우리 한민족입니다. 이것은 우리만의 진실이며 우리 한민족의 정체이며 "상식"입니다.
한민족은 누구나, 백두산 천지를 가면 신성한 영혼을 느낍니다. 그런데 중국인 진족들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하여 단지 하나의 명산으로만 느낄 뿐이고 백두산과 천지에서 우러나와 느껴지는 신성한 기운에 대해서는 ,괴물이 나온다고나 할 뿐, 우리처럼 신성한 기운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이것이 유전자적 현상인 것 입니다.
몽고가 중국을 정복하고, 고려를 처음 침공하기 전, 형제의 예를 갖출 것을 명했던 점과 고려를 정복하고도 중국처럼 직접 통치하지 않고, 독립을 유지시키면서 민족 전통에 따라 부마제국(형제국)이라며 황실의 딸을 서로 혼인시켜 간택케 하였던 사실, 당시 초기에 고려에 주둔시켰던 몽고 군대의 수장이 고려 장수이었던 점, 원나라 말기 실권자였던 원제국 황후는 고려 여인 강씨였던 점, ... 이러한 명백한 사실은 같은 민족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증거입니다
후고려인 려진이 결국, 중국을 정복하고 세운 청 제국 시대 때 원세개(=위안스카이=고려양평출신=마지막 청황제로서 진인들에 의해 암살되고 가족은 몰살 불태워짐)는 이조를 관리하던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은 조선말을 잘하여 통역관이 필요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합니까?
고려말 최영 장군의 중국, 명나라 정벌군(이성계 일파의 반역 회군으로 무산됨) 10만 출병은 당시 원제국(몽고)의 실권자였던 원 황실의 황후, 고려강씨의 원군 요청에 의해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숨겨진 사실, 이에 대한 명나라와 이성계 부자 일파의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위화도 반역과 성공에 따른 고려양민 대량 학살, ...
이러한 이조건국은 근본적으로 한민족과 진족의 지배 체제 문제였음에도 오늘날 국사에서는 단순히 친원파, 친명파의 문제로 취급하여 가르치고 있는 바, 사실은 칸(한)민족과 진족과의 민족지배 문제였다는 사실은 왜 외면하고, 숨기고 있는지 본인은 사학자들에게 학자의 양심으로 질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후일 금(청제국=여진족=려진족)나라 초기에는 고려에 대하여 형의 나라(형제지국)라 하여 정중히 예의를 갖추었으나, 중국인 정권 이조가 들어서면서, 철천지 원수인 중국을 어버이로 받들고 중국인 공자를 신으로 섬길 뿐 아니라 도리어 같은 형제지간인 자신들을 중국인들과 같이 오랑케라 욕하여 부르고, 천대시하자, 결국, 정벌하여 군신관계로 복속시키고 유지 시켰던 역사적 사실(몽고는 고려와 같이 독립국으로 유지시킴: 병자호란, 환향녀 사건). 이들은 후일 중국을 정복한 후, 같은 민족인 몽고에 대해서는 형제의 예를 갖추기를 명하고,몽고가 칸으로 받아들이자 민족 전통 의례에 따라 몽고 황실의 공주를 데려다 칸비(황후)로 삼았던 점등 이러한 사실은 같은 민족이라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청제국이 한민족 전통인 칸비 간택을 몽고에는 하고, 이조에 하지 않은 이유는 위만조선과 같이 이조가 중국인 정권이었기 때문이었으나, 백성은 같은 민족이라 하여 백두산 출입은 허용하였고, 중국인들은 더럽다 하여 일체 출입시키지 않았음 : 청사기록, 거대한 세계 최대의 비석 칸비(광개토 호태왕비)에 보호 건물을 세워 보호했던 점, 청제국이 진족(중공)에 의해 멸망하면서 불태워졌다가 최근 중공이 구려사를 자국사로 왜곡하면서 다시 지음)
우리와 이들이 형제국이라면, 형제란 뜻이 아닙니까? 형제라면.... 그러면 그 아버지는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고구려 시대 때 고구려 황제를 칸이라고 불렀고, 형제국인 돌궐이 세계를 정복하고 세운 원나라의 왕을 칸이라고 했으며, 려진이었던 금나라가 세계를 정복하고 세웠던 청황제 역시 "칸"이라고 불렀던 이러한 명백한 역사적 사실들은 이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 漢은 우리 최고의 단어인 "한" 이란 말로 부를 수 없는데 중국을 섬기는 정권인 이조 들어 지금의 미국을 아름다울 미자로 부르듯이 사대주의 정신에서 붙여 주었던 것이 이렇게 쓰이게 된 것이므로 버려야 할 폐습입니다. (일본은 미국사람들의 얼굴이 쌀처럼 희다 하여 쌀미자를 씀)
진(쥐나=china)족이라고 해야 바른 말이고, 중국이란 말은 이전에는 없었던 말인바, 중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나라는 중국을 어버이나라로 받들고, 중국인 공자를 지금의 기독교 예수그리스도 믿듯이 신앙화하던 이조 이후 현재의 대한민국 우리나라가 시작입니다.
우리 민족의 흐름을 다시 정리하자면, 최초의 국가 쥬신(조선=고조선=단4군=단군조선(한4군중 하나였던 위만 조선까지 포함)=구려(=고구려=돌궐)=발해(=신라)=후구려(고려=몽고=칸4국)=구련(거란,요)=금(려진)=청=남북한으로 이어집니다. (은나라나 기자조선은 조작인데 기자 조선을 이은 이씨 조선은 여러모로 한민족 역사로 보기 어려움)
한=단=칸 은, 큰, 지도자, 호태왕(황제)의 뜻으로 써 온 순 우리말입니다. 고조선의 본래 땅은 몽고, 북중국, 만주, 반도로써 지금의 중국보다 더 컸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완성된 것으로 진나라 때는 지금의 3분의1이 안되었음) 쥬신의 후손인 구려, 발해, 고려, 돌궐, 금의 국시는 원토 회복이었고, 중국 정복은 불가피했습니다. 동북아 패권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 자신들의 영토회복의 뜻이었던 것 입니다.
중국 최초의 국가인 진이, 왜 성벽을 만들었겠습니까? 당시 진인들이 만들었던 진장성(만리장성)은 지금의 3의1도 안되었습니다. 왜, 그때 지은 것이 지금의 만리장성 3분의 1밖에 안되었겠습니까? 그이유는 돌이 없어서나 성을 지을 사람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때 자기들 땅은 거기 밖에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성 넘어 자신들의 최초국가를 강력하게 위협하던 강력한 제국은?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그것은 그 옛날 110만 대군 등을 동원하여 정복하려다가 한번에 30만명씩 비참한 떼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강인한 한민족의 제국(고조선, 고구려)인들이었고, 최근세까지 자신들을 정복하여 각 백년씩을 다스렸고 오늘날 진인들 본래의 영토에 5배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로 확장시켜준 바로 그 위력적인 단 하나의 큰(칸)민족인 한민족...바로 당신들이요,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고구려란 뜻이 백두산(높구려)이고, 고구려 벽화에서와 같이 고구려인들은 기마 민족으로써 몽고나 만주인들과 기마 문화나 풍습이 같고 기질도 같고 생김새도 똑같습니다. 한 아버지의 자식들은 어디가 닮아도 닮는 법입니다. 이것은 우주의 이치입니다. 역사에도 상식이 있고 앞뒤가 있고, 전후좌우가 있는 법입니다. 고려말기 원나라 황후로써 실권자였던 고려강씨가 아버지의 나라 고려의 최영 대장군에게 아직 변방국 수준에 지나지 않던, 신흥 명나라를 제압해 주기를 요청하였고, 최영 대장군 등 고려 황실은 즉시 10만 중국정벌군 편성하
여 출정시켰으나 명과 내통하고 있던 이성계 일파의 교묘한 위화도 회군으로 실패했음은 앞에서 언급한 바, 우리 한민족은 그 이후에 이들의 행적을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한민족인 고려의 명맥을 자르고 중국으로 만들기 위해 청렴결백한 최영 대장군을 비롯한 고려의 충신 현자뿐 아니라 무고한 20만 명에 달하는 고려 혈통의 주백성들을 모조리 살륙함으로써 수천 년 동안 이어온 한민족의 정통성이 이로 인해 상당히 훼손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반역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 부자의 뒤에는 명나라가 있었고, 이들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명나라와의 철저한 커뮤니케이션 하에 이루어졌다고 보기 충분한바, 이들의 조선 개국과정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볼 때 과연 같은 한민족일까? 는 상식적 의문이 드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은 세계역사에서 이 사건 밖에 없는 일입니다.
단지, 중국인들의 과거에서,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에 의해 살수와 사수에서 그 정도의 떼죽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엄연히 군사작전이었지 무고한 백성을 상대로 하는 것은 아니었음에도 이성계 일파의 조선 개국과정에서 이러한 보복적 대량학살이 백주에 이루어졌는바, 이것은 단순히 정권을 유지하고저 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민족 말살을 노린 의도적 살육 행위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일제의 일조 합방 이후 3.1운동 등에 있어서도 이러한 대량 살륙은 없었습니다. 이러함으로 이들이 세운 조선이 원조선인 한민족의 단군조선이나 고구려의 대통을 이은 조선인가? 에 대해서는 더 이상 두말의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이 이와같이 명백함에도 이조를 조선이네, 조선왕조네 하면서 마치 단군조선처럼 착각하게 하는 것은 명백한 역사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조는 기자조선으로 개국한 조선이며, 기자는 단군조선을 신화로 조작하기 위한 가상의 조선입니다.(기자는 중국 사료에만 있고 자작의 흔적이 많음) 기자조선을 조선의 하나로 인정하고 가르치고 있는 강단사학자들이 진정한 학자라면 본인의 이 지적에 대하여 학자적 양심과 정신으로 이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 입니다.
이들 이성계 부자가 중국(명)의 허락 하에 개국할 수 있었던 만큼, 한민족(고조선, 고구려)의 대통을 이어서는 개국이 (허락)될 수 없었음은 상식적인 일로써 이성계 일파의 조선이란, 한민족 정통인 단군조선이 아니라 중국 변방국 조선으로써 고조선을 부정하기 위해 지어진 기자조선으로 개국을 허락받았다고 보는 것이 눈이 똑바로 박힌 한국사학계 학자의 일치된 견해일 것으로 봅니다.
때문에 반역으로 정권을 잡은 이들은 이후에 정권의 안정을 위해 중국 변방국으로써의 기자조선에 보다 충실하게 되었는 바, 역사(김부식의 삼국사기등), 경제(사농공상천시), 종교(유교), 문화(선비, 양반상놈), 군사(양반 병역면제)등 전반적이고도 대대적으로 그렇게 왜곡, 축소시킬 수 밖에 없었던 시대였는 바, 그중에 세종이나 이순신같은 인물이 등장하나 한민족 역사에 있어서 가장 가난하고 빈곤했던 등의 전체적인 시대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다가 결국은 후손 일본에게 나라 자체가 없어지면서 한민족이 속방화 되어 버리는 이조식 결과로 종결되고 말았고 이후에 이조는 부흥운동조차 전혀 없었습니다.
한민족 오천년 역사 속에서의 많은 국가체제의 흥망성쇠 속에서 나라 자체가 없어지는 초유의 결과는 이조 정권의 일본 침략(임진왜란)부터 점령(합방)까지, 민간 항일운동(임진왜란때부터 3.1운동과 빨치산까지)은 있었지만 이것이 이조 부흥운동은 아니었다는 사실은 이조정권의 한계요, 생리적 결과로 평가함이 [역사 정치학적]평가로 타당할 것입니다. (이조-일조합방-남북분단)
당시나 지금이나 단지, 이조시대는 왕족만 호의호식하면서 번식해왔을 뿐이므로 오늘에 이르러서도 당시의 왕족 전주 이씨들은 앞으로는 자기들끼리 모여 황손부활을 운운하면서도 뒤로는 나라 팔아먹은 리베이트로 받은 땅 소송을 통해 승소하면서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취하는 저 모습에서 이조시대 당시의 모습, 시스템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할 것입니다.
이제 100년이 되어가는 이 싯점에서, 뒤늦게나마 이에 대한 역사의 바른 평가가 있어야 할 것임을 본인은 강단사학계에 다시 한번 공개적 요청합니다. 어떻든, 오늘날 이조 멸망으로부터 100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한국국사는 사실과 너무 다른 국사를 사실인양 가르치고 또, 배워오고 있음은 참으로 한심하고 통탄스럽고 비통하기 그지없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는 바, 지금 우리 강단사학자들에 의해서 학교교육을 통해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조작된 역사, 이조사관 즉, 이조시대 500년 위주의 조작된 우리"국사 교과서의 왜곡"은 곧 중공의 동북공정 국사와 맥을 같이 하는 바, 여기에다가 왜정의 36년 동안 철저한 반도사관으로 샌드위치식 가공된 현 불량 국사(음식)의 공급을 즉각 중단하고 본래의 바른 역사교육(음식)을 공급 실시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대반역자가 그렇게 하지 않고서야 중국정권인 이조 성립이 존재될 수 없었는 바, 이 커다란 칸(한)의 민족을 (500년동안) 다스릴 방도는 없었던 것이고, 한민족의 후손인 일본 또한, 그렇게 하지 않고서야 우리 민족을 지휘하여 중국을 정복하는 큰 뜻을 이룰 수야 없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민족이 정통성을 지금까지 해 온 이런 식으로 근본적으로 말살하려는 파렴치한 역사공작은 계속되는바, 이조를 근거한 이른바 "동북공정 프로젝트" 인데, 당신은 한민족의 한사람으로써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고구려처럼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조처럼 사시겠습니까?
중국인들의 소설 삼국지와 똑같은 대한민국의 동북공정 국사...언제까지 중국의 삼국지소설과 같은 동북공정사를 우리 후손들에게 국사라고 계속 가르칠건지....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히고, 피눈물이 납니다.
대한민국의 강단사학자들에게 다시 한번 분명히 고하노니 !
편히 앉아서 이조시대처럼 왜곡된 국사만 암기시키지만 말고 최소 오천년이 넘은 한민족역사에 있어서 이제부터라도 이성계의 위화도 반역부터, 우리 민족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위화도 회군과 일조합방만이라도 바른 역사적 평가를 역사의 주인인 이 시대의 학생이나 국민 스스로가 내릴 수 있도록 이들에게 맡길 부분은 맡기는 역사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주기를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에게 역사왜곡하지 말라고 하기 이전에 더 크게 잘못된 우리 국사부터 우리 스스로가 바로 잡지 않는다면 후일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 최초의 종족인, 위대한 한(단 = 칸)민족 입니다."
내일 죽더라도 우리민족의 바른 역사를 알고 죽읍시다.
그리고 주변에 말 해 줍시다.
그리하여 우리 후손들은 보다 낳은 사회에서 살도록 노력해 나갑시다.
(삼우)
출처 : http://cafe.daum.net/khankorea 글쓴이 : 삼우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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