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유럽 아프리카

[스크랩] [ITALIA(9)] 로마 Roma III

鶴山 徐 仁 2005. 7. 21. 08:27


산타녜제와 산티보 알라 사피엔차의 돔이 보이는 로마의 스카이라인

 

바로크 도시 로마

지난번에 올린 로마 2편에서 보았듯이 로마는 여러 시대에 걸쳐 지어진 건물들로 가득하지만 현재 우리가 보는 이 도시는 바로크 도시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거기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로마는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지금의 터키 이스탄불)로 옮기면서 제국 수도의 위치를 상실했습니다. 서로마 제국에서도 수도는 라벤나Ravenna, 혹은 밀라노Milano였으며 이들 도시에서 지낸 황제들은 로마에서 가져간 보물들로 새로운 수도를 장식했습니다. 물론 이후 교황이 로마에 자리 잡으면서 다시금 이 도시는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 되지만 중세를 점철시킨 교황과 황제 간의 권력 다툼, 14세기에 있었던 교황청의 아비뇽 유수 사건, 결정적으로 1527년에 벌어진 로마 약탈사건(Sacco di Roma)은 이 영원의 도시를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 대사건 뒤에 로마를 물려받게 된 교황들은 당대의 예술가들을 불러 모아 이 도시를 다시금 훌륭하게 꾸미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욱이 종교 개혁의 폭풍에 맞서, 교황들은 카톨릭의 위대성을 고양하는 방법으로 건축과 미술을 이용하게 되죠. 거창하며 과시적이고 현란한 바로크의 스타일은 이러한 로마의 요구에 잘 들어 맞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 꽃을 피웠지만 이런 이유로 바로크는 로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바로크 도시로서의 로마의 면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입니다. 왼쪽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광장의 모습인데 광장이 이렇게 끝이 둥근 장방형을 하고 있는 것은 원래 이곳이 전차 경주 등을 벌이는 경기장(도미티아누스의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경기장 위에 놓여진 광장은 17세기 이노켄티우스 10세(Innocentius X) 때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건설되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중앙의 둥근 돔을 가진 교회, 산타녜제SantAgnese와 광장 한가운데의 분수 세 개인데 로마의 바로크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거장의 작품들입니다.

 

나보나 광장의 콰트로 피우미 분수와 산타녜제

 

불연속적인 곡면을 대담하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1599~1667)의 작품인 산타녜제는 그의 다른 건축물들에 비해 요철이 덜하지만 종탑의 희한한 모습을 보면 역시 보로미니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수 중에는 가운데 있는 가장 큰 분수 폰타나 데이 콰트로 피우미Fontana dei Quatro Fiumi(4대강의 분수)가 가장 유명한데 지안로렌초 베르니니Gianlorenzo Bernini(1598~1680)의 조각상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조각상들은 각각 나일, 라플라타, 갠지스, 다뉴브 강을 의인화한 것들로 분수의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광장은 이 외에도 멋진 팔라초들, 노천 카페로 가득한 로마의 사교 중심지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선 영화 때문에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이 더 유명하지만 실제로 보면 나보나 광장이 훨씬 멋집니다. 로마를 여행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로마의 많은 바로크 건축물 중에 가장 유명하진 않지만 건축사적 중요성을 가진 건물로는 일 제수Il Gesu교회를 꼽을 수 있습니다. 에스파냐 출신의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Ignatius de Loyola가 창설한 반종교개혁의 기수인 예수회의 로마 최초의 교회였던 제수는 이후 지어지는 많은 교회들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자코모 다 비뇰라Giacomo da Vignola와 자코모 다 포르타Giacomo da Porta가 16세기 말에 건축한 이 교회는 지금 보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르네상스 건물들과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죠. 하지만 건물의 구성 요소들이 배치된 방법을 보면 그 이전 건물과 얼마나 다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파사드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건물 좌우에 붙어있는 커다란 소용돌이 장식입니다. 바실리카형 교회에서 1층과 2층은 폭이 다릅니다. 1층은 중앙의 신랑(네이브nave)를 중심으로 양쪽에 측랑(아일Aisle)이 붙어 있는 형태이고 2층은 신랑에 채광을 하기 위해 신랑 폭만큼만 높이 올려 채광창을 낸 형태이기 때문에 2층의 폭이 더 좁은 것이죠. 건축가들은 이렇게 폭이 다른 각 층을 어떻게 조화롭게 연결시킬 것인가를 가지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 이 건물에서 보듯이 이런 두루마리형 장식은 고전주의 건축에 없는 요소이지만 이런 문제를 매우 효과적으로 해결해 줍니다. 그래서 이런 형식은 이후 유럽 전역에서 폭넓게 모방되었습니다. 또한 이 파사드에서 기둥을 배치한 방법도 그렇습니다. 고전적인 코린트식 기둥을 썼지만 여기선 모든 기둥이 쌍을 이뤄 나타납니다. 심지어 앤테블레쳐 위에 놓인 페디먼트조차 삼각형과 반원형의 중첩된 모습으로 나타나죠. 결과는 과시적이면서 복잡하고 르네상스의 우아함과 간결성보다는 웅장함을 지향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회색 석재로 지어진 이 교회의 외관은 어떤 고전적인 단아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절제된 바로크라고나 할까요?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에 비해 한층 노골적으로 바로크적입니다. 내부에도 아케이드 형태에 쌍을 이룬 컴포지트형(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 기둥이 합쳐진 모양) 벽기둥이 장식되어 있고 다채로운 대리석과 금박으로 아주 화려합니다. 특히 천장에는 조반니 바티스타 가울리Giovanni Battista Gauli가 그린 멋진 바로크 천장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아까 산타녜제에서 잠깐 만났던 보로미니의 건축들을 보도록 하죠. 베르니니에게서 조각을 배운 이 사람은 그러나 건축가로서 더욱 큰 명성을 얻었고 그만큼 독특한 건축 세계를 펼쳐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바로크 건축의 곡선미가 어디까지 뻗을 수 있는지를 보여 준 건축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산 카를리노의 파사드와 내부 쿠폴라Cupola(돔)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San Carlo alle Quatro Fontane는 주변에 4개의 분수가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워낙 좁은 부지에 세워진 작은 교회라 이탈리아인들은 보통 산 카를리노San Carlino(카를리노작은 카를로란 뜻이랍니다)라고 부릅니다. 불연속적인 곡선들이 이어져 물결치는 듯한 외부는 가히 충격적이고 떨어질 듯 불안하게 매달려 있는 타원형 장식도 건물의 유동적인 느낌을 가중시킵니다. 내부 역시 구불구불한 선으로 이어져 있는데 돔의 환상적인 장식은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정도로 인상적이죠. 고대의 육각형 소란반자를 십자가와 연결시켜 새로이 재해석한 이 타원형 돔은 정말 독창적입니다.

 


산티보 알라 사피엔차의 소라 껍질처럼 보이는 독특한 첨탑과 쿠폴라

나보나 광장에서 가까운 산티보 알라 사피엔차SantIvo alla Sapienza는 팔라초 델라 사피엔차의 안뜰에 있는 역시 작은 교회입니다. 이 건물 역시 오목볼록한 면을 자유롭게 혼합해 놓았고 특히 독특한 돔 위에 놓인 나선형 종루가 특징적입니다. 꽃잎 모양의 돔 안쪽은 케루빔 천사와 별로 장식되어 있는데 별은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의 상징물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예수회 교회인 산티냐치오 데 로욜라SantIgnazio de Loyola 역시 화려한 바로크 교회인데 여기선 예수회 수사였던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가 그린 환상적인 천정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투시도법을 사용하여 건물의 구조물들을 연장시켜 천장을 천국으로 바꾼 이 놀라운 그림을 바닥에서 올려다보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실제 건축이고 어디서부터가 그림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림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네 명의 여인과 천사들을 통하여 전 세계에 걸친 예수회의 전도가 성공적이었음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이 천장화를 보러 물어 물어 찾아 갔는데 불행히도 보수 공사 중이어서 그림을 4분의 1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보수 공사가 워낙 많기 때문에 보고 싶은 작품을 모두 본다는 보장은 할 수 없습니다. 이거라도 보이는 게 어디냐 하면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죠.

 

프랑스 국립 교회인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San Luigi dei Francesi에서도 훌륭한 회화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1573~1610)의 그림들입니다. 성 마태의 삶을 그린 세 점의 캔버스화가 그것인데 여기서 그 중의 한 점인 <성 마태의 부름>을 보도록 하죠.

그림은 예수가 제자가 된 베드로와 함께 세리인 마태를 부르러 온 장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탁자에 앉은 여러 인물들 중 자기 자신을 손으로 가리키는 수염 기른 인물이 마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인물들이 모두 화가가 살았던 동시대인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죠. 예수와 베드로만이 우리가 아는 성서시대의 옷과 같은 것을 입고 있습니다. 어쩌면 화가는 이런 부름은 현재에도 역시 유효하다라는 것을 말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라바조는 렘브란트를 예고한 화가였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떠오르는 인물들이 장면을 얼마나 극적으로 만들어 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안로렌초 베르니니, 아폴로와 다프네

 

로마 북쪽 외곽에는 빌라 보르게제Villa Borghese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교황 바울 5세Paulus V의 조카였던 보르게제 추기경을 위한 교외의 빌라인데 넓은 부지에 잘 조성된 정원과 여러 건축물들이 있는 곳으로 로마 시민들이 자주 찾는 아름다운 공원입니다. 야외 오페라가 열리기도 하고 일요일이면 축구를 하는 귀여운 꼬마들과 산책 나온 가족들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이 공원 안에 보르게제 박물관Museo Borghese가 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공원을 가로질러 20분쯤 걸어야 하는데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밟는 느낌이 무척 좋았던 게 생각납니다. 이 공원엔 소나무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솔방울의 두 배쯤은 돼 보이는 커다란 솔방울들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구요.

보르게제 박물관은 예술 후원자였던 추기경의 개인 컬렉션이 바탕이 된 박물관인데 회화와 조각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라파엘로, 카라바조, 코레조Correggio, 티치아노Tiziano등의 작품이 있는 갤러리도 유명하지만 특히 베르니니의 세 개의 조각상 때문에 유명합니다.

1층에 있는 조각 작품들 중 아마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아폴로와 다프네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주제를 따 온 이 작품은 아폴로의 손이 닿는 순간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하는 극적인 순간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베르니니는 작은 물결무늬가 조금씩 들어 있는 흰 대리석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는데 아폴로와 다프네 둘 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월계수로 변하는 님프의 고통과 놀라움, 신화의 비극적 이야기가 한층 더 강렬하게 전해지는 듯 합니다. 이 조각이 놓여진 방에는 조각상 바로 위에 있는 천장화도 같은 주제의 그림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안로렌초 베르니니, 페르세포네의 강탈

 

두번째 작품은 페르세포네의 강탈인데 역시 신화에서 소재를 가져왔습니다. 명계의 신 플루토가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모습입니다. 플루토의 건장한 근육과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페르세포네의 부드러운 피부가 대조를 이루고 그런 대조는 꽉 잡은 플루토의 손에 의해 눌린 페르세포네의 허벅지를 표현한 섬세한 묘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페르세포네의 눈에서 흘러 나온 눈물이 방울져 흩어지는 것까지도 묘사해 놓았습니다.

 

지안로렌초 베르니니, 다비드

 

마지막으로 다비드가 있습니다. 다비드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으로 워낙 유명한데 그 피렌체 조각가의 작품과 이 작품을 비교하면 역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바로크의 성향이 눈에 들어옵니다. 즉 베르니니는 골리앗의 목을 든 전통적인 다비드나 돌을 던지기 직전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와는 달리 막 돌팔매질을 하는 순간의 다비드를 택하여 운동감이 강한 작품을 만들었죠. 꽉 다문 입, 찌푸려진 미간으로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 다비드의 얼굴은 조각가 자신의 얼굴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보르게제 박물관을 구경하려고 할 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아침 일찍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박물관은 관람객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늦게 가면 그날의 관람 일정이 모두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그 바쁜 일정 중에 이곳을 두 번이나 찾아가야 했답니다.

로마에는 이 외에도 유명한 바로크 스타일의 광장인 스페인 광장, 로마에서 가장 큰 분수인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바르베리니 교황 우르반 8세Urvanus VIII를 위해 지어진 팔라초 바르베리니Palazzo Barberini(피에트로 다 코르토나Pietro da Cortona가 그린 프레스코로 유명합니다)등 바로크 스타일의 건축물, 회화, 조각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인 베르니니의 다른 작품, 성 테레사의 환희를 보면서 이번 글을 마칠까 합니다.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코르나로 예배당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Santa Maria della Vittoria는 바로크 양식 교회인데 이 유명한 조각상은 코르나로 예배당(Capela del Cornaro)에 있습니다. 베네치아 출신의 코르나로 가문 사람들이 지은 예배당인데 닫집이 달린 연극 무대처럼 보이는 조각상 양 옆으로 보이는, 마치 관람석의 손님들 같은 흉상들이 바로 코르나로 가 사람들이죠.

이 교회에 조각상을 보러 들어간 것은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는데 결혼식이 있는지 교회를 단장하느라고 분주했습니다. 바닥에는 짙은 푸른빛 카펫이 깔리고 흰 장미를 비롯한 꽃들로 장식했는데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바쁜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주의해야 했지만 말입니다.

 

 

 

 

 

조각상은 구름 위의 성 테레사와 금빛 화살로 그녀를 찌르려 하는 천사를 묘사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16세기의 에스파냐 수녀였던 테레사의 영적 체험에 관한 이야기를 조각으로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테레사가 입고 있는 옷주름의 무거운 펄럭거림은 확실히 바로크적이죠. 그리스 조각상들의 고운 드레이퍼리가 시폰이나 거즈 같은 직물을 연상시킨다면, 이것은 마치 버석거리는 타프타처럼 보입니다. 이 수녀의 체험 내용은 천사가 나타나 자신을 화살로 찌르자 고통과 끝나지 않으면 좋을 듯한 달콤함을 함께 느꼈다는 것인데 영적 체험 치고는 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조각을 보면 천사의 얼굴에 떠도는 기묘한 미소, 정신을 잃을 듯한 테레사의 표정 등이 종교적 황홀경 보다는 에로틱한 분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주제의 또다른 베르니니 작품 베아타 루도비카 알베르토니의 환희 역시 그런 느낌인 걸 보면 조각가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이 작품은 건축의 일부로서의 조각이라는, 바로크 예술의 총체적인 측면을 보여줍니다. 극장 무대와 같은 페디먼트가 달린 벽감 안에 조각상이 들어 있고 상 뒤에는 천상의 빛을 표현하는 청동으로 된 빛살이 있으며 이 전체는 위쪽에서 들어오는 빛의 효과 때문에 마치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이 조각을 다른 곳에 갖다 놓으면 원래 의도한 효과는 반감되고 말 것입니다.

출처 : L'Archivio
글쓴이 : SooYo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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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녜제와 산티보 알라 사피엔차의 돔이 보이는 로마의 스카이라인

 

바로크 도시 로마

지난번에 올린 로마 2편에서 보았듯이 로마는 여러 시대에 걸쳐 지어진 건물들로 가득하지만 현재 우리가 보는 이 도시는 바로크 도시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거기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로마는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지금의 터키 이스탄불)로 옮기면서 제국 수도의 위치를 상실했습니다. 서로마 제국에서도 수도는 라벤나Ravenna, 혹은 밀라노Milano였으며 이들 도시에서 지낸 황제들은 로마에서 가져간 보물들로 새로운 수도를 장식했습니다. 물론 이후 교황이 로마에 자리 잡으면서 다시금 이 도시는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 되지만 중세를 점철시킨 교황과 황제 간의 권력 다툼, 14세기에 있었던 교황청의 아비뇽 유수 사건, 결정적으로 1527년에 벌어진 로마 약탈사건(Sacco di Roma)은 이 영원의 도시를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 대사건 뒤에 로마를 물려받게 된 교황들은 당대의 예술가들을 불러 모아 이 도시를 다시금 훌륭하게 꾸미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욱이 종교 개혁의 폭풍에 맞서, 교황들은 카톨릭의 위대성을 고양하는 방법으로 건축과 미술을 이용하게 되죠. 거창하며 과시적이고 현란한 바로크의 스타일은 이러한 로마의 요구에 잘 들어 맞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 꽃을 피웠지만 이런 이유로 바로크는 로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바로크 도시로서의 로마의 면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입니다. 왼쪽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광장의 모습인데 광장이 이렇게 끝이 둥근 장방형을 하고 있는 것은 원래 이곳이 전차 경주 등을 벌이는 경기장(도미티아누스의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경기장 위에 놓여진 광장은 17세기 이노켄티우스 10세(Innocentius X) 때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건설되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중앙의 둥근 돔을 가진 교회, 산타녜제SantAgnese와 광장 한가운데의 분수 세 개인데 로마의 바로크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거장의 작품들입니다.

 

나보나 광장의 콰트로 피우미 분수와 산타녜제

 

불연속적인 곡면을 대담하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1599~1667)의 작품인 산타녜제는 그의 다른 건축물들에 비해 요철이 덜하지만 종탑의 희한한 모습을 보면 역시 보로미니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수 중에는 가운데 있는 가장 큰 분수 폰타나 데이 콰트로 피우미Fontana dei Quatro Fiumi(4대강의 분수)가 가장 유명한데 지안로렌초 베르니니Gianlorenzo Bernini(1598~1680)의 조각상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조각상들은 각각 나일, 라플라타, 갠지스, 다뉴브 강을 의인화한 것들로 분수의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광장은 이 외에도 멋진 팔라초들, 노천 카페로 가득한 로마의 사교 중심지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선 영화 때문에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이 더 유명하지만 실제로 보면 나보나 광장이 훨씬 멋집니다. 로마를 여행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로마의 많은 바로크 건축물 중에 가장 유명하진 않지만 건축사적 중요성을 가진 건물로는 일 제수Il Gesu교회를 꼽을 수 있습니다. 에스파냐 출신의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Ignatius de Loyola가 창설한 반종교개혁의 기수인 예수회의 로마 최초의 교회였던 제수는 이후 지어지는 많은 교회들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자코모 다 비뇰라Giacomo da Vignola와 자코모 다 포르타Giacomo da Porta가 16세기 말에 건축한 이 교회는 지금 보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르네상스 건물들과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죠. 하지만 건물의 구성 요소들이 배치된 방법을 보면 그 이전 건물과 얼마나 다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파사드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건물 좌우에 붙어있는 커다란 소용돌이 장식입니다. 바실리카형 교회에서 1층과 2층은 폭이 다릅니다. 1층은 중앙의 신랑(네이브nave)를 중심으로 양쪽에 측랑(아일Aisle)이 붙어 있는 형태이고 2층은 신랑에 채광을 하기 위해 신랑 폭만큼만 높이 올려 채광창을 낸 형태이기 때문에 2층의 폭이 더 좁은 것이죠. 건축가들은 이렇게 폭이 다른 각 층을 어떻게 조화롭게 연결시킬 것인가를 가지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 이 건물에서 보듯이 이런 두루마리형 장식은 고전주의 건축에 없는 요소이지만 이런 문제를 매우 효과적으로 해결해 줍니다. 그래서 이런 형식은 이후 유럽 전역에서 폭넓게 모방되었습니다. 또한 이 파사드에서 기둥을 배치한 방법도 그렇습니다. 고전적인 코린트식 기둥을 썼지만 여기선 모든 기둥이 쌍을 이뤄 나타납니다. 심지어 앤테블레쳐 위에 놓인 페디먼트조차 삼각형과 반원형의 중첩된 모습으로 나타나죠. 결과는 과시적이면서 복잡하고 르네상스의 우아함과 간결성보다는 웅장함을 지향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회색 석재로 지어진 이 교회의 외관은 어떤 고전적인 단아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절제된 바로크라고나 할까요?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에 비해 한층 노골적으로 바로크적입니다. 내부에도 아케이드 형태에 쌍을 이룬 컴포지트형(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 기둥이 합쳐진 모양) 벽기둥이 장식되어 있고 다채로운 대리석과 금박으로 아주 화려합니다. 특히 천장에는 조반니 바티스타 가울리Giovanni Battista Gauli가 그린 멋진 바로크 천장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아까 산타녜제에서 잠깐 만났던 보로미니의 건축들을 보도록 하죠. 베르니니에게서 조각을 배운 이 사람은 그러나 건축가로서 더욱 큰 명성을 얻었고 그만큼 독특한 건축 세계를 펼쳐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바로크 건축의 곡선미가 어디까지 뻗을 수 있는지를 보여 준 건축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산 카를리노의 파사드와 내부 쿠폴라Cupola(돔)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San Carlo alle Quatro Fontane는 주변에 4개의 분수가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워낙 좁은 부지에 세워진 작은 교회라 이탈리아인들은 보통 산 카를리노San Carlino(카를리노작은 카를로란 뜻이랍니다)라고 부릅니다. 불연속적인 곡선들이 이어져 물결치는 듯한 외부는 가히 충격적이고 떨어질 듯 불안하게 매달려 있는 타원형 장식도 건물의 유동적인 느낌을 가중시킵니다. 내부 역시 구불구불한 선으로 이어져 있는데 돔의 환상적인 장식은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정도로 인상적이죠. 고대의 육각형 소란반자를 십자가와 연결시켜 새로이 재해석한 이 타원형 돔은 정말 독창적입니다.

 


산티보 알라 사피엔차의 소라 껍질처럼 보이는 독특한 첨탑과 쿠폴라

나보나 광장에서 가까운 산티보 알라 사피엔차SantIvo alla Sapienza는 팔라초 델라 사피엔차의 안뜰에 있는 역시 작은 교회입니다. 이 건물 역시 오목볼록한 면을 자유롭게 혼합해 놓았고 특히 독특한 돔 위에 놓인 나선형 종루가 특징적입니다. 꽃잎 모양의 돔 안쪽은 케루빔 천사와 별로 장식되어 있는데 별은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의 상징물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예수회 교회인 산티냐치오 데 로욜라SantIgnazio de Loyola 역시 화려한 바로크 교회인데 여기선 예수회 수사였던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가 그린 환상적인 천정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투시도법을 사용하여 건물의 구조물들을 연장시켜 천장을 천국으로 바꾼 이 놀라운 그림을 바닥에서 올려다보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실제 건축이고 어디서부터가 그림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림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네 명의 여인과 천사들을 통하여 전 세계에 걸친 예수회의 전도가 성공적이었음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이 천장화를 보러 물어 물어 찾아 갔는데 불행히도 보수 공사 중이어서 그림을 4분의 1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보수 공사가 워낙 많기 때문에 보고 싶은 작품을 모두 본다는 보장은 할 수 없습니다. 이거라도 보이는 게 어디냐 하면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죠.

 

프랑스 국립 교회인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San Luigi dei Francesi에서도 훌륭한 회화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1573~1610)의 그림들입니다. 성 마태의 삶을 그린 세 점의 캔버스화가 그것인데 여기서 그 중의 한 점인 <성 마태의 부름>을 보도록 하죠.

그림은 예수가 제자가 된 베드로와 함께 세리인 마태를 부르러 온 장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탁자에 앉은 여러 인물들 중 자기 자신을 손으로 가리키는 수염 기른 인물이 마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인물들이 모두 화가가 살았던 동시대인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죠. 예수와 베드로만이 우리가 아는 성서시대의 옷과 같은 것을 입고 있습니다. 어쩌면 화가는 이런 부름은 현재에도 역시 유효하다라는 것을 말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라바조는 렘브란트를 예고한 화가였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떠오르는 인물들이 장면을 얼마나 극적으로 만들어 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안로렌초 베르니니, 아폴로와 다프네

 

로마 북쪽 외곽에는 빌라 보르게제Villa Borghese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교황 바울 5세Paulus V의 조카였던 보르게제 추기경을 위한 교외의 빌라인데 넓은 부지에 잘 조성된 정원과 여러 건축물들이 있는 곳으로 로마 시민들이 자주 찾는 아름다운 공원입니다. 야외 오페라가 열리기도 하고 일요일이면 축구를 하는 귀여운 꼬마들과 산책 나온 가족들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이 공원 안에 보르게제 박물관Museo Borghese가 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공원을 가로질러 20분쯤 걸어야 하는데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밟는 느낌이 무척 좋았던 게 생각납니다. 이 공원엔 소나무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솔방울의 두 배쯤은 돼 보이는 커다란 솔방울들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구요.

보르게제 박물관은 예술 후원자였던 추기경의 개인 컬렉션이 바탕이 된 박물관인데 회화와 조각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라파엘로, 카라바조, 코레조Correggio, 티치아노Tiziano등의 작품이 있는 갤러리도 유명하지만 특히 베르니니의 세 개의 조각상 때문에 유명합니다.

1층에 있는 조각 작품들 중 아마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아폴로와 다프네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주제를 따 온 이 작품은 아폴로의 손이 닿는 순간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하는 극적인 순간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베르니니는 작은 물결무늬가 조금씩 들어 있는 흰 대리석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는데 아폴로와 다프네 둘 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월계수로 변하는 님프의 고통과 놀라움, 신화의 비극적 이야기가 한층 더 강렬하게 전해지는 듯 합니다. 이 조각이 놓여진 방에는 조각상 바로 위에 있는 천장화도 같은 주제의 그림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안로렌초 베르니니, 페르세포네의 강탈

 

두번째 작품은 페르세포네의 강탈인데 역시 신화에서 소재를 가져왔습니다. 명계의 신 플루토가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모습입니다. 플루토의 건장한 근육과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페르세포네의 부드러운 피부가 대조를 이루고 그런 대조는 꽉 잡은 플루토의 손에 의해 눌린 페르세포네의 허벅지를 표현한 섬세한 묘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페르세포네의 눈에서 흘러 나온 눈물이 방울져 흩어지는 것까지도 묘사해 놓았습니다.

 

지안로렌초 베르니니, 다비드

 

마지막으로 다비드가 있습니다. 다비드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으로 워낙 유명한데 그 피렌체 조각가의 작품과 이 작품을 비교하면 역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바로크의 성향이 눈에 들어옵니다. 즉 베르니니는 골리앗의 목을 든 전통적인 다비드나 돌을 던지기 직전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와는 달리 막 돌팔매질을 하는 순간의 다비드를 택하여 운동감이 강한 작품을 만들었죠. 꽉 다문 입, 찌푸려진 미간으로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 다비드의 얼굴은 조각가 자신의 얼굴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보르게제 박물관을 구경하려고 할 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아침 일찍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박물관은 관람객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늦게 가면 그날의 관람 일정이 모두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그 바쁜 일정 중에 이곳을 두 번이나 찾아가야 했답니다.

로마에는 이 외에도 유명한 바로크 스타일의 광장인 스페인 광장, 로마에서 가장 큰 분수인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바르베리니 교황 우르반 8세Urvanus VIII를 위해 지어진 팔라초 바르베리니Palazzo Barberini(피에트로 다 코르토나Pietro da Cortona가 그린 프레스코로 유명합니다)등 바로크 스타일의 건축물, 회화, 조각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인 베르니니의 다른 작품, 성 테레사의 환희를 보면서 이번 글을 마칠까 합니다.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코르나로 예배당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Santa Maria della Vittoria는 바로크 양식 교회인데 이 유명한 조각상은 코르나로 예배당(Capela del Cornaro)에 있습니다. 베네치아 출신의 코르나로 가문 사람들이 지은 예배당인데 닫집이 달린 연극 무대처럼 보이는 조각상 양 옆으로 보이는, 마치 관람석의 손님들 같은 흉상들이 바로 코르나로 가 사람들이죠.

이 교회에 조각상을 보러 들어간 것은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는데 결혼식이 있는지 교회를 단장하느라고 분주했습니다. 바닥에는 짙은 푸른빛 카펫이 깔리고 흰 장미를 비롯한 꽃들로 장식했는데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바쁜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주의해야 했지만 말입니다.

 

 

 

 

 

조각상은 구름 위의 성 테레사와 금빛 화살로 그녀를 찌르려 하는 천사를 묘사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16세기의 에스파냐 수녀였던 테레사의 영적 체험에 관한 이야기를 조각으로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테레사가 입고 있는 옷주름의 무거운 펄럭거림은 확실히 바로크적이죠. 그리스 조각상들의 고운 드레이퍼리가 시폰이나 거즈 같은 직물을 연상시킨다면, 이것은 마치 버석거리는 타프타처럼 보입니다. 이 수녀의 체험 내용은 천사가 나타나 자신을 화살로 찌르자 고통과 끝나지 않으면 좋을 듯한 달콤함을 함께 느꼈다는 것인데 영적 체험 치고는 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조각을 보면 천사의 얼굴에 떠도는 기묘한 미소, 정신을 잃을 듯한 테레사의 표정 등이 종교적 황홀경 보다는 에로틱한 분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주제의 또다른 베르니니 작품 베아타 루도비카 알베르토니의 환희 역시 그런 느낌인 걸 보면 조각가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이 작품은 건축의 일부로서의 조각이라는, 바로크 예술의 총체적인 측면을 보여줍니다. 극장 무대와 같은 페디먼트가 달린 벽감 안에 조각상이 들어 있고 상 뒤에는 천상의 빛을 표현하는 청동으로 된 빛살이 있으며 이 전체는 위쪽에서 들어오는 빛의 효과 때문에 마치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이 조각을 다른 곳에 갖다 놓으면 원래 의도한 효과는 반감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