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메모리 반도체 호황에 취했다가 대만 하청 국가 된다"
조선일보
입력 2026.04.20. 00:20업데이트 2026.04.20. 09:31
한국의 1인당 GDP가 5년 뒤 대만보다 1만달러 이상 뒤처질 것이라고 IMF가 전망했다. 지난해 한국 1인당 GDP는 3만6227달러로 22년 만에 대만(3만9489달러)에 역전당했는데, 2031년에는 한국이 4만6000달러, 대만이 5만6100달러로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희비를 가른 것은 두 나라의 대표 산업인 반도체의 경쟁력이다. AI 혁명이 진행되면서 세계 반도체 산업의 중심이 메모리에서 파운드리(위탁 생산)로 재편됐는데,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이 흐름에 잘 올라탔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지난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은 70%로 삼성전자(7%)의 10배다. 2021년엔 TSMC 53%, 삼성전자 18%로 격차가 35%포인트였는데 거의 2배로 벌어졌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메모리 중심이다. 노무라증권은 “(한국이) AI 시대에 메모리 반도체 수출에만 의존해서는 대만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대만의 약진에는 반도체를 국가 안보 문제로 접근한 대만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정부가 나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용수·전력 공급망을 구축했으며, 신규 투자의 25%를 세액 공제하는 파격적인 지원법도 통과시켰다.
반면 한국에선 지원은커녕 ‘정치’와 ‘규제’가 반도체의 앞길을 막는 거대한 암초가 되어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인근 지자체 간 용수 시설 설치 갈등과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착공까지 5년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 주 52시간제 같은 경직적 노동 규제도 연구개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악재인데 삼성전자 노조는 연간 연구개발 투자비(38조원)보다 많은 40조원 성과급을 요구하며 파업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AI 시대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은 ‘누가 시스템을 설계하고 조립하느냐’에 달려 있다. 설계는 엔비디아 같은 미국 업체가, 조립은 대만 TSMC가 장악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설계한 GPU를 TSMC가 만들 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과 D램 같은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체계다.
지금은 AI 데이터 센터 특수 덕분에 메모리 품귀 현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퍼 갑(甲)’이다. 덕분에 증시 전체가 고공 행진을 하면서 나라 전체가 졸부가 된 것처럼 들뜬 분위기다. 그러나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끝나 메모리 가격이 떨어지면 언제든 을(乙) 신세로 뒤바뀔 수 있다. 메모리 호황에 취해 있다가 대만 하청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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