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조선일보 칼럼) 냉전인가, 열전인가 - 이 우근
nkwook 2026.03.16 12:44
|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 “나뉜 지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되면 반드시 나뉜다.” 나관중 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첫 구절이다. 하‧은‧주(夏‧殷‧周)의 역성혁명(易姓革命)과 춘추전국의 전쟁 시대를 겪은 중국은 최초로 통일국가 진(秦)을 세웠지만, 15년을 넘기지 못했다. 두 번째 통일국가 한(漢)도 400여 년 만에 무너지고, 위‧촉‧오(魏‧蜀‧吳) 세 나라의 전쟁이 이어진다. 영원한 평화도 없고, 영원한 전쟁도 없다. 동양의 역사만이 아니다. 온 세계가 치(治)와 난(亂)이 뒤엉킨 혼돈의 역사를 헤쳐왔다. 평화시대에는 민심이 해이해지고, 정치는 부정과 타락으로 썩어간다. 이에 저항하는 혁신의 불길이 타오르지만, 그 시대는 오래가지 않는다. 권력은 다시금 부정과 부패로 오염되고, 정치 선동과 값싼 복지에 휘둘리는 민심은 나라의 올바른 정체성을 지켜내지 못한다. 자유‧평등‧박애의 구호를 내건 프랑스대혁명은 '왕을 처형하지 않으면 혁명을 비난하는 것'이라는 혁명지도자 로베스피에르의 지시에 따라 국왕 루이16세와 그 아내 마리 앙투와네트를 단두대에서 처형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5년만에 테르미도르 반동이 일어나자 이번에는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에 서야 했고, 곧이어 나폴레옹 황제가 등극한다. 왕정보다 더 으스스한 절대권력의 제정(帝政)이 시작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옛 소련이 무너질 때까지 약 반세기 동안 이어진 냉전(冷戰)체제는 대체로 전쟁의 포성이 멈춘 시대였다. 베트남과 중동의 국지전을 제외하고는,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이념과 첩보전으로 대립한 미국‧러시아의 양극 체제였다. 그 냉전체제의 수명이 다했는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했고, 베네수엘라의 현직 대통령을 무력으로 체포‧압송한 미국은 곧이어 이란을 공습했다. ‘냉전의 불안한 질서’를 ‘열전(熱戰)의 험악한 무질서’로 뒤바꾸는 난세(亂世)의 모습이다. 중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위협의 강도를 점차 높여가고, 북한은 핵무장의 고도화로 치닫는 중이다. 이란의 이슬람 신정체제(Velayat-e Faqih)는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그 사망자가 수천에서 수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폭격으로 절대권력자 하메네이가 사망한 뒤에는 그의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웠다. 팔레비 왕조의 권력세습과 인권탄압을 비난했던 혁명세력이 스스로 권력세습과 인권탄압을 자행하는 자기모순에 빠진 것이다. 이란에 퍼붓는 미국의 미사일과 이에 맞서는 이란의 주변국 공격은 세계의 화약고라는 중동 전역에 뜨거운 불길을 댕기고 있다. 드넓고 험준한 이란 영토에 만약 미국의 지상군까지 들어간다면, 세계에 몇 안 되는 원유생산지인 중동을 잔혹한 열전의 피바다로 만들게 될 것이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으로 세계를 다시금 전쟁의 포화 속에 몰아넣는 군사 강국들은 평화보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원유저장고를 폭격한 뒤, 테헤란 도심은 독성연기로 뒤덮이고 하늘로 솟구친 기름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극심한 대기오염을 겪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으로 만들었다고 칭송받던 베르사유 평화협정은 이미 제2차 대전의 불씨를 품고 있었다. 막대한 전쟁배상금 압박에 시달리던 독일은 히틀러의 선동에 놀아나 군국주의로 치달았다. 영국 총리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은 독일의 히틀러를 만나 뮌헨협정을 체결한 뒤 “우리 시대에 평화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히틀러의 선의(善意)를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은 1년도 가지 못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국무장관 키신저와 북베트남의 정치국원 레둑토는 베트남전쟁을 끝낸 평화협정의 체결로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협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남베트남 국민은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난 것을 기뻐했다. 그러나 평화협정에 따라 미군이 철수한 지 2년 만에 북군은 전면 남침을 감행했고 남베트남은 결국 멸망했다. 핵무기를 거머쥔 군사강국들은 선의나 도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힘으로, 무력으로 움직인다. 평화의 신념이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 동포애 넘치는 환상적 평화주의로는 철권통치자의 핵 단추를 제거할 수 없다. 핵미사일 앞에서도 태평가나 부르고 있다면, 제 신념에는 충실할지 몰라도 나라와 국민에게는 무책임한 처사다. 열전의 비극을 막는 것은 낭만적인 평화의 신념이 아니다. 현실의 위기를 꿰뚫어 보는 냉철한 통찰, 책임감 있는 결단만이 그 비극을 막아낼 수 있다. - 이 우 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PEN.KOREA 인권위원장) 뮌헨(München)평화협정의 히틀러와 체임벌린 [출처] (LA조선일보 칼럼) 냉전인가, 열전인가|작성자 leegadf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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