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불합리한 명령'? 軍은 지금 혼란스럽다
[주간조선]
입력 2025.11.30. 05:25업데이트 2025.12.01. 10:03
계엄군이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국회 본관 정문 앞에서 국회 사무처 직원, 보좌진 등과 대치하고 있다. photo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총기를 닦아라’ ‘두발 정리해라’ 같은 기본적인 지시도 못하게 될 상황이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다.”
전인범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최근의 군 상황에 대해 이와 같이 우려했다. 그는 “계엄 이후로 군내 지시 사항과 명령에 토를 달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례들이 늘어난 것으로 안다”며 “이것이 실제 훈련에도 적용되면 작전 상황 중 모든 지시 이행에 차질이 생기고 군 간부들의 사기가 떨어진다”고도 말했다. 또 최근 병사들이 간부를 모독죄로 고소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상황을 언급하면서 “간부들의 위축은 훈련 위축과 군 전체의 위축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비상계엄의 직격탄을 맞은 군은 지금 혼란스럽다. 계엄에 동조한 일부 장성들의 일탈 여파가 군 전체의 위상과 사기를 떨어뜨렸고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일탈은 윗선이 행했는데, 그 책임과 부작용은 오롯이 일선 부대에서 나타나는 모양새다. 그 계기가 됐던 건 국방부가 지난 8월부터 두 달간 전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상관의 불합리한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라는 내용을 골자로 실시한 정신교육이다. 교육 대상은 일반 사병부터 영관급 장교까지 모두 포함됐다.
이상현 제1공수여단장이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계엄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눈물을 훔치고 있다. photo 뉴스1
‘술 마시지 말라’, 항명죄 아냐
당시 교육에는 항명죄 불성립 요건이 자세하게 언급됐는데 핵심은 ‘적법한 군사상 명령’이 아니라면 이행하지 않아도 항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배포된 교안에 따르면 핵심 작전 수행이나 전투력 유지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명령, 군인 신분으로서 윤리적 책무나 일상적 의무에 대한 명령은 적법한 군사상 명령으로 해석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지각을 하지 말라는 명령이나, 술을 마시지 말라는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항명죄가 아니라는 관련 판례도 첨부했다.
육사 출신의 현역 육군 대위 박모씨는 “육군 규범에 원래부터 명시된 내용이긴 하나 비상계엄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이를 강조하는 교육이 진행된 적이 없었다”며 “부당한 명령 자체에 대한 교육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예비역 육군 중위 정모씨 역시 해당 교육 이행 여부에 대해 “당시 ‘민주주의와 헌법수호 관련 교육’ 등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법무관들이 직접 와서 항명 요건과 도덕적 양심에 관해 교육했고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상황에서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교육이지만 ‘불합리’의 기준이 애매모호해 현장에선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단순히 군 내부 교육용에 그치지 않고 법으로 못박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11월 25일 국방부 군인권개선추진단은 정당하지 않거나 위법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에 찬성 의견을 냈다. 해당 개정안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직후부터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소속 의원들로부터 꾸준히 발의됐는데, 민주당 현역 의원인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당시 발의에 참여한 바 있다. 국방부는 법안 검토 의견에서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된 현행 법령에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라고 ‘정당한’이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이어 단서 조항으로는 ‘단,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에는 거부할 수 있으며, 이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는 문구도 추가할 것을 건의했다. 다만 국방부는 ‘정당한 명령’이나 ‘위법’의 여부를 결정할 기준은 따로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예비역 육군 중장)은 “모호한 기준이 군 지휘체계를 흔들 수 있다”며 “명령을 받는 사람이 명령의 위법 여부를 판단하고 책임질 부담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런 교육이 전군을 대상으로 실시됐고, 법안으로 확정되면 군 일선에서의 혼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방부 직할부대 소속 중령 이모씨는 “약 20년의 군생활 동안 ‘상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라는 취지의 교육은 처음이었다”며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교육 내용을 잘못 받아들이면 기강이 흔들릴 수 있고, 군 전체 사기에 있어서 그리 긍정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육사 출신을 배제하는 등의 인사 개편만 이루어졌을 뿐, 계엄 이후 간접 피해를 본 대원들에 대한 격려나 시스템 개선은 없었다”며 “군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이재명 정부는 ‘내란 극복’을 명분으로 육사 출신을 배제하는 등의 인사 개편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신임 국방부 장관에는 육군 방위 출신의 민주당 현역 의원인 안규백 장관을 임명했고, 지난 9월에는 전임 정부부터 임기를 이어온 4성 장군(대장) 7명을 동시에 교체했다. 군 서열 1위인 합동참모의장(합참의장)에는 공군사관학교 출신의 진영승 전 공군 전략사령관이 임명됐고, 수도방위사령관, 특수전사령관, 국군방첩사령관 등 계엄 핵심 부대 지휘관들이 수사와 재판으로 빠져나간 자리에는 학사·학군 등 비육사 출신 장성들이 잇따라 임명됐다. 특히 비육사 출신 중장 진급자는 기존 3명에서 5명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이는 비상계엄 과정에서 육사 출신들이 핵심 역할을 한 점을 들어 군 주요 보직을 민간 또는 비육사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실 측은 “인사 개편에만 치중한 탓에 우리 안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야당이 계속 지적해왔다”며 “계엄 전후로 안보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관련된 군 시스템과 내부 개선은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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