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정호승

鶴山 徐 仁 2025. 10. 26. 13:37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정호승

당신은 사랑은 기억하지 못해도

분노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기도는 기억하지 못해도

증오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비 갠 뒤에는 맑은 하늘이 더욱 쓸쓸하다

당신의 고백소는 어디에 있는지

나의 고백소는 당신 안에 있는데

간밤에 쥐가 내 심장을 다 갉아먹어

나는 당신에게 가는 길을 가지 못한다

그동안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구두를 두 켤레씩 신고 길을 걸었다

길을 가다가 밥을 먹을 때마다

하루에 열끼니를 먹고도 배가 고팠다

꽃이 필 때마다 꽃이 돈인 줄 알고

민들레를 뿌리채 뽑아 들었다

오늘도 당신의 고백소를 끝내 찾지 못하고

영원히 날이 저문다

이제는 이별의 순간에게 순종해야 할 시간

땅이 없어도 피는 꽃과

하늘이 없어도 빛나는 별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가 쓸쓸히 사라져야 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