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정호승
당신은 사랑은 기억하지 못해도
분노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기도는 기억하지 못해도
증오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비 갠 뒤에는 맑은 하늘이 더욱 쓸쓸하다
당신의 고백소는 어디에 있는지
나의 고백소는 당신 안에 있는데
간밤에 쥐가 내 심장을 다 갉아먹어
나는 당신에게 가는 길을 가지 못한다
그동안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구두를 두 켤레씩 신고 길을 걸었다
길을 가다가 밥을 먹을 때마다
하루에 열끼니를 먹고도 배가 고팠다
꽃이 필 때마다 꽃이 돈인 줄 알고
민들레를 뿌리채 뽑아 들었다
오늘도 당신의 고백소를 끝내 찾지 못하고
영원히 날이 저문다
이제는 이별의 순간에게 순종해야 할 시간
땅이 없어도 피는 꽃과
하늘이 없어도 빛나는 별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가 쓸쓸히 사라져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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