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카페 2030] '만취의 낭만' 못 버리는 한국 사회

鶴山 徐 仁 2025. 3. 7. 12:17

오피니언 카페 2030

[카페 2030] '만취의 낭만' 못 버리는 한국 사회

박상현 기자

입력 2025.03.06. 23:58업데이트 2025.03.07. 09:53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퇴근 후 지하철. 아직 그리 깊지 않은 밤인데도 인사불성 된 대학생 여럿이 탔다. 앳된 얼굴로 보아 신입생 같았다. 숨 뱉을 때마다 술 냄새가 났다. 검정 롱패딩에선 돼지 기름 냄새가 풍겼다. 무리 중 몇은 데시벨 조절 기능이 고장났는지 목소리가 커졌고, 몇은 속이 좋지 않은지 얼마 못 가 급하게 내렸다. 몇은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휘청거려서 그 앞에 앉아있던 승객들이 자리를 떴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누군가 만취한 모습을 처음 본 것은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날이었다. 그날 기억에 박제된 장면이 하나 있다. 개강 한 달 전쯤 강원도 한 리조트였다. 베란다에 나갔더니 8열 종대로 소주병이 각 맞춰 서있었다. 얼추 100병은 돼 보였다. 한 학번 선배가 “오늘 밤에 우리가 다 마실 거야”라면서 웃었다. 당시에도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마시고, 자고 싶은 사람은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자기 주량을 모르는 신입생들은 하나 둘 인사불성이 됐다. 취한 이들은 ‘시체방’이라는 종이가 붙은 방에 격리됐다. 그 방 안은 잠 든 자, 구토한 자, 우는 자 등이 엉켜 아비규환이었다. 그날 크게 실수한 동기 중 몇 명은 개강 후에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개강 첫 주, 지하철과 버스에서 술에 취한 대학생을 자주 보고 있다. 나의 대학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개강파티’ ‘개강총회’ 같은 이름으로 다같이 모이는 날이 많았는데 이름만 다를 뿐 술 마시는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선배와 동기와 싸구려 안주에 소주를 들이켰다. 음주는 힘든 수험 생활을 이겨내고 대입에 성공한 이들이 마음껏 누리는 권리로 여겨졌다. 폭음은 낭만이었다. 취하지 않으면 술을 마신 것 같지 않았다. 무늬만 지성인일 뿐 대학에 들어간 순간부터 ‘마음껏 취해도 된다’라는 위험한 음주 관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국가발전지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월간 폭음률은 2023년 기준 37.2%로 매년 큰 변화 없이 30% 후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남자 47.9%, 여자 26.3%로 남자가 약 1.8배 정도로 높다. 남성의 세부 지표를 들여다보면 20대(45.4%)보다 30대(49.8%)가, 30대보다 40대(57%)가 높고, 50대(49.5%) 들어서 꺾이기 시작한다. 스무 살 습관이 20여 년 간 점점 강화되다가 50대 들어서야 비로소 달라진다는 것이다.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1921)가 발표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술을 권하고 있다. 이에 따르는 술로 인한 피해도 심각하다.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2018) 시행 후에도 국내 음주 운전 사망자 감소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일본이 2001년과 2007년 두 차례 법 개정을 통해 음주 운전 사망 사고가 크게 줄어든 것과 대조된다. 법 개정 이후 양국의 최고 형량과 집행유예 비율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최고 징역이 4년, 실형 중 57%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일본은 최고 징역이 23년, 실형 중 3%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폭음을 낭만으로 치부하는 스무 살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카페2030


박상현 기자

환경에 대한 기사를 씁니다.

 


많이 본 뉴스

"대통령 되면 재판 정지? 그 해답 결국 대법원이 내리게 될 것"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얼마 전 방송에 나와 자신의 재판과 관련해 “(대통령에 당선되면 형사재판이) 정지된다는 게 다수설”이라고 했다. ...


[태평로] 최후 진술의 품격

이토 히로부미를 쏴 죽인 안중근 의사 재판에서 쟁점이 된 것은 ‘관할’과 ‘입법 미비’였다. 1910년 2월 12일 중국 뤼순 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