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쓰기 고수들의 신박한 인생 기록 비법-1회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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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인생을 자서전으로 남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당신도 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글감이 되는 인생의 기록을 잘 모아두는 게 절반입니다. 자서전 쓰기 고수들의 신박한 인생 기록 비법을 내·손·자(내 손으로 자서전 쓰기) 클럽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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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90이 가깝지만 책과 유튜브를 통해 ‘죽을 때까지 즐겁게 유쾌하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노인이 있다. 정신과 의사로서 한 평생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고 처방해 온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주인공이다.
최근 40여 년 동안 23권의 책을 썼는데 2013년 나온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갤리온)’는 4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로 10년 만인 올해 개정판이 나왔다. 최근에는 유튜브 ‘이근후STUDIO’ 등을 통해 구독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7일 오후 종로구에 있는 가족아카데미아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스스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했지만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무슨 일일까?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잘 늙어가고 싶은 한국인들을 위해 펴낸 두 권의 책.
“내 책이 영국의 권위있는 펭귄출판사를 통해서 15개 나라 언어로 번역된답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살고 싶다’가 나온 뒤 2019년에 낸 ‘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 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메이븐)’이라는 책인데, 올해 4월에 최종 계약서에 사인했고 지금 독일어판은 표지까지 나온 상태입니다.”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 ‘어떻게 잘 늙어갈까’에 대한 한국 정신과 의사의 방법론이 영국과 독일, 네델란드, 홍콩과 인도네시아 등 세계 15개 나라 등의 언어로 읽혀진다는 건 뜻밖의 ‘뉴스’였다. 이 교수가 즐거울만 했다. 그는 “내가 늙어서 이런 즐거운 일이 생긴 건 운인데, 그 운이 어디서 왔는지 아느냐”며 오래 전 맺은 한 환자와의 인연을 떠올렸다.
이 교수가 영국의 펭귄출판사와 사인한 번역본 출간 계약서.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미국 보스톤 교민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갔어요. 한 부부가 뉴욕에서 지방도로로 일곱 시간 차를 몰아서 왔다며 강연을 듣고 나한테 식사까지 대접하는 거에요. 그래 ‘나와 인연이 있느냐’고 했더니 오래 전에 부인의 언니가 한국에서 나한테 치료를 받았다는 겁니다. 아마 치료가 잘 되었던가 봅니다.”
부부와 함께 온 딸이 미국에서 출판 에이전시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인연으로 이 교수의 책이 번역대상으로 검토되었고 최근 결실을 이룬 것이다. 인연이 인연을 낳고 그 인연이 전세계에 독자들에게 이 교수와의 인연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경북대 의대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공부한 이 교수는 서구식 교육을 받은 정신과 의사지만 인간 정신에 내재된 신성, 모든 일에 원인이 있다는 ‘연기론’을 믿는다고 했다. 최근 흉흉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유머를 연구하고 있다는 그는 ‘유머’라며 이야기를 이었다.
기자에게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올해 개정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근후 교수.
“내가 그런 좋은 인연을 맺고 말년에 행복한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찾아냈어요. 군의관 시절에 한 시골 동네에서 ‘신기’가 있어 불행하다는 여성을 상담해 준 적이 있어요. 자기가 말만 뱉으면 현실이 된다는 거예요. 그 여성이 상담을 끝낸 뒤 나가면서 ‘내가 한마디만 해 주겠다’고 해서 가슴이 철렁했는데, ‘말년에 잘 되려면 이름을 이근후에서 이근우로 바꾸라’는 거에요. 그땐 웃고 말았죠. 근데 나중에 후배가 나한테 이메일을 지어주면서 이름을 ‘Kun Hu’가 아니라 ‘Kun Woo’로 지어왔어요. 그게 지금의 복이 된 거 같아요. 하하.”
이 교수는 타고난 ‘스토리텔러’다. 말을 재미있게 하고 그 말을 풀면 그대로 책이 되는 그런 부류. 그의 책이 이야기 듣는 것처럼 술술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책이 자신의 일과 취미, 가족 등 일상을 소재로 경험과 지식을 풀어내고 있어서 “그 많은 인생의 장면들을 기록하는 비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에 대한 기록이 없어요. 내가 환자들 상담하면서 엄청난 기록을 만들었지만 정작 내 인생에 대한 기록은 없어요. 네팔에 봉사활동을 갔을 때 당시 처음 나온 노트북을 들고 가서 며칠 기록한 게 있는데 지금은 어디 저장해 놨는지 찾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 책에는 몇 년 봄 가을 정도라고 쓰지 몇월 며칠 이런 팩트가 몇 개 밖에는 없어요. 적어놓지 않아서 나도 모르니까. 만약 내가 잘 기록했다면 정확하게 쓸 수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럴 수가 없어요.”
봉사활동을 위해 네팔에 가서 찍은 사진. 이근후 교수가 사진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오른쪽 위). 이근후 교수 제공.
젊어서부터 등산이 취미였던 그는 히말라야 산맥이 있는 네팔을 찾아 등산도 하고 봉사활동도 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틈만 나면 앉아서 자신의 등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래서 등반안내서도 외국인들이 쓴 것이 한국 것보다 훨씬 자세하고 정확하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자서전을 쓰려면 정확성과 객관성을 갖춘 팩트가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쓴 책은 그것이 없는 그저 ‘신변잡기’일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그래서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이 독자의 마음을 사고 있는 것을.
그런 이 교수에게 인생 기록 비법이 있다면 바로 사진촬영이다. 등산 못지않게 사진찍기를 좋아했던 그는 망원렌즈까지 갖춘 제대로 된 사진기를 메고 등산을 다녔다. 그의 사무실 책장 가장 좋은 곳에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데 성공한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을 1982년 4월 네팔에서 만나 찍은 사진이 장식하고 있었다. 이 교수는 6.25전쟁 당시인 경북고 2학년 재학 때 힐러리 경의 등반 성공 사실을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통해 듣고 “여러분도 에드먼드 힐러리처럼 웅지를 가지라”는 말을 가슴에 새겼다고 한다.
1982년 네팔에서 뉴질랜드 출신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찍은 사진. 힐러리 경은 1953년 에베레스트산을 최초로 등정한 산악인이다. 이근후 교수 제공
힐러리 경과 함께 찍은 한 장의 사진은 당시의 기억을 지속하도록 해줬고 ‘죽을 때까지 즐겁게’의 한 챕터로 기록되도록 도왔다. 나중에 이 교수는 이 사진을 속초에 있는 국립산악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리고 이 사연을 다시 ‘백살까지 유쾌하게’에 기록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사직 찍기는 전문 사진가의 손에서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취미가 되었다. 페이스북이 지고 인스타그램이 뜨는 것이 상징하듯 요즘 SNS는 글 위주에서 사진 위주로 바뀌고 있을 정도다.
평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당장 기록하기 힘들더라도 한 장의 사진으로라도 남기면 좋다. 사진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며 그 정보들은 나중에라도 나의 기억을 다시 소환해 낸다. 한 장의 사진에 짧더라도 설명을 남겨놓으면 금상첨화인 것이다.
이 교수가 네팔에서 찍은 사진을 보관해온 파일들.
인생의 기록으로서의 사진은 잘 찍는 것만큼 저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당장 필요하지 않다고 제대로 저장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분실하거나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 없다. 이 교수는 과거 네팔 봉사활동에 가면 보통 필름 100통을 찍어왔다고 했다. 그렇게 찍어온 사진을 인화해 파일에 넣어 지금도 보관하고 있었다. 그를 방문했을 때 사무실 서재에는 그렇게 만든 파일들이 나란히 이름을 보이고 있었다.
디지털 사진도 보관이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주기적으로 PC나 노트북, 외장하드에 다운받아 저장해야 한다. 당장 필요하지는 않기 때문에 시기별로 아니면 이벤트별로 폴더를 만들어 저장해놓아야 나중에 찾기가 쉽다. 예를 들어 2023년 폴더에 1월, 2월 등으로 나눠 넣거나 ‘가족 추석 행사-2023년 9월’ 등으로 저장해 놓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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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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