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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며느리의 60년 한국 사랑… 조선 회화 13점 돌아왔다

鶴山 徐 仁 2023. 4. 5. 09:09

문화·라이프문화 일반

 

美 며느리의 60년 한국 사랑… 조선 회화 13점 돌아왔다

 

게일 허 여사, ‘묵매도’ 등 기증

 

허윤희 기자


입력 2023.04.05. 03:00

 

 

시아버지 이름으로 작품을 기증한 게일 허(왼쪽) 여사와 작품의 가치를 처음 발견한 김상엽 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장. /김상엽 소장 제공

 

“돈은 바라지 않습니다. 시아버지 이름으로 기증하고 싶어요.”

미국인 며느리가 전남 진도 출신 시아버지에게 물려받아 60년 가까이 간직해온 조선 후기 미공개 회화 작품들이 고국에 돌아왔다. 국립광주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게일 허(85) 여사로부터 조선 후기 최고의 서화 수집가 석농 김광국(1727~1797)이 엮은 화첩인 ‘석농화원(石農畵苑)’ 속 미공개 작품을 비롯해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18~19세기 조선 회화 4건 13점을 지난달 기증받았다”고 4일 밝혔다. 기증된 작품은 ‘석농화원’에 수록된 김진규(1658~1716)의 ‘묵매도(墨梅圖)’, 조선 말기 문인화가 신명연(1808~?)의 ‘동파입극도(東坡笠屐圖)’,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자 호남 화단의 거장인 소치 허련(1808~1893)의 ‘송도 대련(松圖 對聯)’과 8폭으로 된 ‘천강산수도 병풍(淺絳山水圖 屛風)’이다.

조선 후기 최고의 수장가 김광국이 엮은 화첩 '석농화원' 중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인 김진규의 '묵매도'. /국립광주박물관

 

◇“시아버지 고향에 기증합니다”

이 작품들은 게일 여사 부부가 시아버지인 고(故) 허민수씨에게 물려받아 1960년대부터 소중히 간직해 오던 것이다. 허씨는 진도 출신의 성공한 은행가로 한국은행 초대 부총재를 지냈고, 안목 높은 수장가였다. 소치 허련 가문의 후손으로 애향심이 각별해 허련의 작품을 특히 애지중지했다고 한다. 게일 여사는 1962년 한국 유학생 허경모씨를 미국에서 만나 5년 뒤 결혼했다. 허씨는 IMF에서 35년간 근무했고, 게일 여사는 메릴랜드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다 은퇴 후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게일 여사는 “생전 단 두 번 만났지만 시아버지 인품을 존경해 한국과 그의 고향 진도를 사랑”했다. 기르는 고양이 이름을 ‘진도’라 붙일 정도. 박물관은 “여사는 남편이 세상을 뜬 후 유품을 정리하면서 한국에 기증해야겠다는 뜻을 품었다”며 “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예술은 개인이 아닌 만인의 것이고, 한국 작품도 고향 미술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한국은행 초대 부총재를 지낸 허민수 선생. 호남 화단의 거장 소치 허련의 후손으로 안목 높은 수장가였다. /국립광주박물관

게일 허 여사가 기르는 고양이 '진도'. 시아버지를 존경해 그의 고향인 진도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김상엽 소장

 

작품이 고국에 돌아오기까지 과정도 흥미롭다. 게일 여사가 당초 정리를 결심한 건 허련의 작품 2건. 2022년 5월, 기증 방법을 알아보려고 옆집 사는 한국인 이웃을 무작정 찾아갔다. 미국 미주개발은행(IDB)에 파견 중이던 고광희 기획재정부 국장의 집이었다. 대사관, 워싱턴문화원을 거쳐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에 연락이 닿았다. 김상엽 당시 사무소장은 소치 허련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조선 회화사 전문가다. 김 소장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조사차 여사님 댁을 방문했다가 복도 끝에서 우연히 ‘묵매도’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며 “석농화원의 흩어진 낱장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고 했다. 열흘 뒤 추가 방문 때, 여사는 ‘동파입극도’를 보여줬고, 컬렉션 전부를 조사한 후 “조선 회화사 연구에 꼭 필요한 작품”이라는 설명을 듣자마자 여사가 말했다. “기증하겠습니다!”

 

조선 말기 문인화가 신명연의 ‘동파입극도’. /국립광주박물관

신명연의 ‘동파입극도’ 중 소동파 그림 부분. 중국 송나라 문인 소동파가 귀양 시절 삿갓과 나막신 차림으로 비를 피하는 처연한 모습을 그렸다. /국립광주박물관

 

◇기록만 전하던 화첩 속 작품 발견

‘석농화원’은 조선 시대 회화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전설의 화첩’으로 불린다. 김광국이 평생 모은 그림을 총망라해 원래 260여 점 수록돼 있다고 하나, 그의 사후 하나둘 흩어지면서 지금은 120여 점만 전한다. 화첩엔 그림뿐 아니라 당대 문사와 명사들이 짓고, 최고 서예가들이 쓴 화제와 그림평이 붙었다. 권혜은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에 발견된 ‘묵매도’는 거기서 떨어진 낱장으로, 2013년 서울 인사동 화봉갤러리 경매에 필사본 권1이 나와 제목과 그림평만 전해져 오다가 실제 작품이 발견돼 의미가 크다”고 했다. 신명연의 ‘동파입극도’는 동아시아 최고 문장가로 꼽히는 송나라 소동파가 귀양 시절 삿갓과 나막신 차림으로 비를 피하는 처연한 모습을 그렸다. “화사한 화훼도로 유명한 신명연의 희귀한 인물화라는 점에서 19세기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작품”이라고 박물관은 덧붙였다.

소치 허련, ‘송도 대련’. 조선 19세기. /국립광주박물관

 

전문가들은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은 해,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앞둔 시점에서 한미 교류의 상징과도 같은 훈훈한 스토리라 반갑다”고 했다. 김상엽 소장은 “진도 출신인 소치 일가 허민수 선생의 미술 사랑에서 시작돼 미국인 며느리로 이어진 대(代) 이은 문화재 사랑의 결실”이라고 했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이르면 9월 특별전을 열어 기증 작품을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