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돈이 숨었다”
입력 2022-12-23 00:00 업데이트 2022-12-23 03:32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제 윤석열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참석해 “돈이 숨었다. 시장이 막혔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년 설비투자가 올해보다 2.8% 감소할 것으로 정부가 전망할 정도로 꽁꽁 얼어붙은 기업투자와 관련한 발언이었다. 최 회장은 “기업이 투자를 안 해서가 아니라, 기업도 투자할 돈이 없다”고도 했다. 현직 대기업 회장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기업들이 처한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대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실제로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매출 500대 기업 가운데 작년과 비교 가능한 268개 기업의 올해 3분기 잉여현금흐름은 14조 원으로 1년 전보다 48조 원이나 줄었다. 잉여현금흐름이란 기업의 보유자금 중 생산시설 확장, 신제품 개발, 기업 인수 등에 쓸 수 있는 돈이다. 높은 유가와 원자재 가격에 따른 원가 부담, 소비 침체로 인한 매출 감소로 기업들의 돈줄이 말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투자 여력도 줄고 있다. 자금 사정이 나빠진 기업들이 빚에 의존하면서 9월 말 기업 대출은 1년 전보다 15%나 급증했다.
최 회장은 투자 절벽을 넘어설 해법으로 정부가 펀드를 만들어 전략 산업, 인재 육성에 마중물을 부어줄 것을 제안했다. 또 “투자 인센티브를 모든 곳에 똑같이 적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효과가 큰 곳에 정부 지원을 집중하자고 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제일 먼저 경고했던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최근 긴축으로 인해 경기침체가 닥칠 경우 정부의 ‘핀셋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내년 1%대 저성장이 예고된 가운데 지금처럼 기업의 투자가 멈춰서면 고용 축소, 소비 둔화가 가속화해 경기는 더욱 얼어붙게 된다. 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같은 미래형 전략산업,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망 스타트업을 선별해 한정된 정부 예산을 집중 투입하는 지원책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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