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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집 한칸 사보겠다고… 조선시대에도 영끌·빚투족 있었죠

鶴山 徐 仁 2022. 7. 24. 10:59

한양 집 한칸 사보겠다고… 조선시대에도 영끌·빚투족 있었죠

 

[Books가 만난 사람]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쓴 이한씨

 

윤상진 기자

 

입력 2022.07.23 03:00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이한 지음|위즈덤하우스|304쪽|1만7000원

 

 

“조선시대에도 ‘영끌’이 있고 ‘빚투’가 있었어요. 한양의 ‘똘똘한 집 한 채’를 사려고 분투하던 사람들이 ‘하우스 푸어’가 되기도 했답니다.”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를 쓴 이한(필명·44)씨의 말. 그는 책에서 조선시대 ‘빚투’의 대표적인 예로 정조 때 양반 유만주를 들었다. 그는 ‘남산 딸깍발이’였고, 과거에도 연거푸 낙방했지만 한양에 집을 사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아버지의 입직으로 살림에 여유가 생기자 유만주는 이자율 30% 사채까지 쓰며 오늘날의 명동에 100칸짜리 집을 산다. 그러나 부친은 1년 만에 벼슬을 잃고 가세는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유만주는 집을 팔고 남산 초가집으로 돌아가게 됐으니 그의 야심찬 투자는 시세 차익은커녕 원금마저 손해를 보는 것으로 끝나게 됐다. 34세로 세상을 뜬 유만주의 일기를 아버지 유한준이 엮은 책 ‘흠영(欽英)’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를 쓴 이한 작가. 이 작가는 2007년 '조선 기담'을 시작으로 대중 역사서 5권을 펴냈다./이태경 기자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와 만난 이한씨는 “안빈낙도를 유교적 이상으로 삼았던 조선의 선비들에게도 ‘먹고사니즘’은 삶의 중요한 원칙이었다”면서 “‘재테크의 나라’ 조선을 조명해 당시 사회가 재테크 결과에 희비가 엇갈리는 현재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은 ‘헤지 투자’에 능한 투자가였어요. 퇴계는 본인이 운영한 농장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확량이 많은 이앙법을 도입하고, 동시에 목화 농사를 벌여 위험을 분담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아들들에게 ‘인(In)-한양’을 강조했다. 그는 유배지 강진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 “한양에서 몇십 리만 멀어져도 원시사회”라며 “어떻게든 한양 근처에 살면서 문화의 안목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썼다. 당시 한양 집값은 지금 서울 못지 않았다. 이씨는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중종이 세자빈의 어머니가 가난해 여기저기 이사 다니며 세 들어 사는 게 안쓰럽다며 집 사라고 면포 500필(대략 오늘날 10억원 정도)을 보낸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10억원은 있어야 한양에 준수한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책에 썼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김득신이 도박하는 모습을 그린‘밀희투전’. 조선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투기뿐 아니라 도박에도 손을 댔다. 여말선초에 들어온 도박은 16세기 이후 평민들에게까지 퍼졌다. /위즈덤하우스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중국 고대사를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은 이씨는 2007년 첫 책 ‘조선기담’으로 데뷔, 성균관 유생들의 생활사를 그린 ‘성균관의 공부벌레들’(2010), 조선시대 미식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요리하는 조선 남자’(2015) 등 대중 눈높이의 역사책을 꾸준히 써 왔다. 이씨가 이번 책의 주제로 삼은 것은 ‘조선 사람들의 경제적 야망’.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등의 사료와 논문들을 뒤져 관련 사례를 찾아냈다.

 

그는 “유학(儒學)의 나라 조선에선 부(富)를 좇기보다 ‘치산(治産·살림살이를 유지함)’이 강조됐지만,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는 조선 후대에 갈수록 신분을 막론하고 치산을 빙자한 투기에 뛰어들었다. 17세기 숙종 연간엔 인삼 밀수를 통해 번 돈으로 50만냥(현재 1000억원 상당) 규모 대부업을 하는 역관이 나오더니, 18세기엔 민초들도 투기에 뛰어들었다.

 

허약한 국가가 백성들을 투기로 내몰기도 했다. 이씨는 조선 후기의 ‘실버러시’가 그런 경우라고 설명한다. 16세기 이후 은이 유럽 열강과 중국에서 화폐로 쓰이기 시작하며 수요가 증가하자 사람들은 은광을 개발하려고 가산을 털었다. 관료와 선비들은 광산으로 향하는 이들을 ‘무뢰배’ 취급했지만 이씨는 백성들이 돈에 눈이 멀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해석한다. “조선 후기 농사법이 발달하며 수확량은 증가했지만, 자작농과 소작농의 격차는 오히려 커졌어요. 광산에 모여든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노렸다기보다는 그것 말고는 살아갈 길이 없었던 거죠.” 투기가 아니라면 도저히 자산을 불릴 수 없는 ‘조선 개미들’의 절규가 광산 곳곳에 묻혀 있었다는 것이다.

이한 작가./이태경 기자

 

 

이씨가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대학원생이던 2006년. 고시원에서 끼니 걱정을 하며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출판사에서 일하던 지인이 대중 상대 역사책을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이번 책은 그의 다섯 번째 단독 저서. 이 씨는 “지난해 여름 코인을 비롯한 재테크 열풍이 정점에 달했던 때 한반도 ‘개미’들의 역사를 되짚어보자는 취지로 기획하게 된 책”이라고 했다. “흥미를 위해 지나치게 현대적 시각에 꿰어맞춰 역사를 서술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그는 “역사를 수학만큼이나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안타까웠다“면서 “나를 ‘이야기꾼’으로 봐 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가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주가와 코인이 폭락하고 절망에 빠진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씨는 “책을 통해 이 시대 개미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고 했다. 투자자들의 실패는 개인의 어리석음 때문만이 아니라, 성실히 살아도 보답받지 못하는 시대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역사를 돌아보며 짚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투자에 실패했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힘을 내 살아보자는 말이 제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