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메르트, 이분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아무튼, 주말]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2.06.04 03:00
2013년 독일에 체재할 때 경험한 일입니다. 그해 9월 22일 실시된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기사연합은 311석을 얻어 과반수 의석에 5석이 모자라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민당은 193석, 녹색당은 63석, 좌파당(Die Linke)은 64석을 각각 얻었으며, 그 가운데 여성은 36%였습니다.
이 선거 결과를 보면, 중도우파인 기민·기사연합이 압승이라고 할 만큼 선전하였지만 과반에 미치지 못하여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없었고, 오히려 좌파인 나머지 3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좌파 3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좌파 3당이 얼씨구나 하고 연정을 구성하여 총리 및 장관 자리를 나누어 가졌을 텐데요.
의아해서 독일 교수에게 물어보니, 중도 좌파인 사민당과 극좌인 좌파당은 함께 정부를 구성하기에는 정책 노선의 차이가 너무 커서 국민 여론은 좌파 연정을 반대하고, 오히려 중도 우파인 기민·기사연합과 중도 좌파인 사민당 사이의 대연정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3당이 연정을 강행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그리되면 사민당은 다음 선거에서 호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당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얻어 후일을 도모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부러운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하원 의장으로 노베르트 람메르트(Nobert Lammert)가 선출되었는데, 그는 이미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두 번에 걸쳐 의장을 역임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니 3연임을 하는 셈입니다. 사이좋게(?) 2년씩 돌아가면서 국회의장직을 나누어 맡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사정과 너무 달라 다시 “왜 의장을 한 사람이 12년씩이나 맡느냐?”고 물었습니다. 지인은 저에게 “국회의장은 국민과 의원들의 존경을 받으며 국회 운영을 가장 잘하는 분이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오히려 묻더군요. 제가 “그야 그렇지요” 하고 대답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람메르트, 그분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라고 간단히 정리해 버렸습니다.
람메르트 의장은 대학 졸업 후 18세에 기민당에서 정치를 시작하여 1980년 하원에 진출하였습니다. 부의장을 거쳐 2005년 처음으로 의장에 선출될 때 전체 의원 93.1%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역대 독일 최고의 기록이었지요. 2009년에는 84.6%, 2013년에는 94.6%를 득표하였습니다. 2016년에는 차기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고, 이어서 연임을 포기한 가우크 대통령의 후임 대통령으로 강력히 추천되었으나 이마저도 물리치고 은퇴하였습니다. 나이도 저와 동갑이었으니 당시 70세 이전이었습니다. 그가 2013년 하원 의장에 취임하면서 “대연정으로 인하여 의원의 80%가 집권당 소속이 되었는데, 이런 상황이 과연 민주주의에 맞는지 께름칙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의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소수 야당의 목소리가 의회 운영에 잘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국민과 의원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를 확실히 알게 해주었습니다.
제21대 하반기 국회가 막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1당 내의 최다선 의원 가운데 당이 추천한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장직은 이처럼 선수(選數)를 쌓아 운 좋게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정파를 떠난 양심적이고 중립적인 국회 운영을 통해 마지막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은퇴 후 국민의 존경을 받고 나라의 어른으로 남아야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정치 현실이 이와는 다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람메르트 의장이 새삼스레 생각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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