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새 정부 최대의 敵은 인플레이션
새 정부도 ‘돈 풀기’ 기조… 코로나 피해 보상에만 50조
돈 풀고 감세 추진하면서 물가도 잡는다는 건 불가능
1970년대 카터의 ‘양다리 정책’, 경제도 망치고 정권도 잃어
입력 2022.04.18 03:20
생전의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미국에서 발생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볼커의 연준이 3년 동안 악전고투한 끝에 간신히 잡혔다. /조선일보DB
등산 갔다가 들른 산사(山寺)에서 이런 문구가 붙은 자동판매기를 최근 보았다. ‘커피 원가의 갑작스러운 인상으로 부득이하게 500원으로 올렸습니다.’ 커피 원두 가격은 한 해 동안 80% 넘게 상승했다. 커피만이 아니다. 몇 년째 1만7000원 주고 시켜 먹던 통닭이 지난 주말엔 2만원으로 올라 있었다. 편의점 ‘4캔 만원’ 맥주는 곧 1만1000원이 된다. 물가가 이렇게 눈에 보이게 오르는 경험은 처음 한다.
한국의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4.1%로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물가 상승률이 8%를 넘어선 미국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안도한다면 착각이다. 한국 물가 통계엔 구멍이 많다. 우선 가계 경제의 중심인 집값이 제외됐다. 아울러 사실상의 식비와 교통비인 배달료나 택시 호출 수수료 등도 빠져 있다. 5000원 거리인 택시를 잡으려고 카카오택시에 3000원 수수료를 내야 하는 판이나, 한국의 택시 물가는 정부가 고시하는 요금만 반영해 2년째 ‘상승률 0%’다.
미국은 집값도 환산해 소비자 물가에 넣는다. 우버 등 승차 공유 서비스 가격도 몇 해 전 추가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은 역대 정부 대대로 물가가 낮아 보이는 방식을 선호해 왔고 그러다 보니 통계가 느슨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파르게 오른 집값과 약탈적 수준으로 계속 상승하는 플랫폼 수수료 등을 엄밀히 반영한다면, 물가상승률은 훨씬 높아진다. 통계 대비 한국인이 물가로 인해 받는 고통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의 참고 사례로 ‘볼커 시대’가 요즘 많이 거론된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오일 쇼크와 흉작으로 인한 국제 곡물가 상승 등이 겹치며 물가 폭등이 발생했다. 폴 볼커가 의장이던 연준은 기준금리를 10%포인트 넘게 올리는 ‘극약’을 써야 했다. 연착륙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는 “나는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하기로 했다”라고 비장한 방송 연설까지 하면서 대선 때 약속했던 감세와 재정 확대는 어렵다고 호소했다. 여기까지는 납득할 만한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온갖 이권 단체가 항의하자 카터는 예산 삭감을 사실상 포기했다. 세금도 못 건드렸다. 잡힐 듯하던 물가가 다시 폭등해 인플레이션이 무섭게 악화했다.
뉴욕타임스는 카터의 임기를 ‘지그재그 경제의 시대’라고 기록한다. “카터의 ‘양다리주의’가 경제를 망쳤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대거 신설하고, 동시에 예산을 삭감하고, 동시에 실업률을 낮추고, 동시에 인플레이션도 잡겠다고 했는데 이 목표들은 애당초 공존이 불가능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모두에게 피해가 간 최악의 인플레이션이었다.”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지난달 10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4%를 넘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물가’를 언급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하지만 구호뿐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새 정부가 추진 중인 경제 정책 대부분이 돈을 더 푼다는 쪽이어서다. 볼커는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너무 많은 돈이 너무 적은 물건을 쫓는 현상’이라고 요약했다. 윤 당선인이 코로나 피해 보상을 위해 공약한 50조원은 서울시 한 해 예산을 뛰어넘는다. ‘너무 많은 돈’이다. 그 돈이 시중에 급하게 풀린다면 안 그래도 치솟는 물가에 기름을 부을 가능성이 크다. 50조원을 풀고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감세도 추진하면서, 동시에 물가에도 대처하겠다? 성립하기 어려운 ‘지그재그 경제’다.
윤 당선인의 ‘돈 풀기’ 공약은 인플레이션이 지금처럼 심각하기 전인 선거 기간에 나왔다. 최근 설문에선 경제학자 82%가 현 시점에 새 정부의 재정 확대가 적절치 않다고 했다. 문제는 6월 지방선거다. 선거철엔 진득한 물가 통제보단 화끈한 돈 꽂아주기가 잘 먹힌다. 더불어민주당은 벌써 50조원 지원 약속을 이행하라고 압박하는 중이고 국민의힘도 질세라 밀어붙인다. 그동안 참 많이 보아온 ‘경제의 정치화’가 다시 펼쳐질 조짐이다.
물가는 손을 늦게 쓸수록 잡기가 어려워진다. 볼커는 자서전에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이렇게 묘사한다. ‘인플레이션이 더 심각한 불황으로 축적되지 못하게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20% 넘을 지경으로 금리를 올려야 물가가 간신히 잡히리라고 미리 예언이라도 해주었다면, 당장 짐 싸서 집에 갔을 것이다.’ 카터가 오락가락하는 동안 볼커의 연준은 3년 악전고투해서 간신히 물가를 잡았다. 초고금리에 고용·성장은 초토화됐다. 인플레이션과 불황 모두 서민에게 훨씬 더 가혹했다. 카터는 결국 선거에서 패배해 정권을 내줬다. 인수위 워크숍에서 한 경제학자가 했다는 말마따나,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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