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버지가 행한 죄 왕상 15:1-8
12월 06일 (월)
그 아버지가 행한 죄 왕상 15:1-8
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2.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3.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4.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6.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더니 7.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아비얌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8. 아비얌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3절).
<아비얌>은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남왕국 유다의 제2대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 역시도 아버지 르호보암이 유다 통치 기간 중 전국에 우상 숭배를 만연시킨 것처럼 왕이 된 후 아버지의 우상 숭배의 행위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열왕기서는 르호보암뿐 아니라 그 아들 아비얌에 대해서도 끝까지 냉정한 힐난을 이어갑니다. 반면 본문이 르호보암과 아비얌의 마음에 대비되는 의미로 언급한 <다윗의 마음>이란 우상을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을 향해 전심전력하는 아름다운 마음, 경건한 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런 다윗의 마음과는 달리 우상 숭배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가장 으뜸 가는 범죄 행위입니다. 십계명은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고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4-5). 인간은 누구나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아담으로부터, 조상들로부터,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숙명적인 죄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했습니다.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의 신분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죄인이며, 또 죄인이기에 피할 수 없이 죄를 범하며 삽니다. 따라서 죄인들에게는 그 죄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반드시 주님의 속죄의 피가 필요합니다. 다른 해법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대속의 피만이 우리를 죄의 유전 질서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하게 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그런데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그런 르호보암과 아비얌으로 이어지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사 남왕국 유다를 지속적으로 존속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무수히 넘어지고 자빠지며 죄를 범함에도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사 여전히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시다는 겁니다. 올해도 그 주님의 성탄이 박두했습니다. -남왕국 유다의 제2대 왕 아비얌의 재위 기간은 몇 년이었을까요(2절)?
-아비얌의 어머니는 누구며, 그녀는 누구의 딸이 없습니까(2절, 대하 13:2)? -본문 7절에서 지적한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의 전쟁>을 역대하 13:19에서 확인해보십시오. 주님, 남왕국 유다가 계속 죄를 범하여 아버지로부터 그 아들 아비얌까지 우상 숭배가 대물림되었음에도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다>(4절)고 했습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과 늘 죄악의 악순환 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인생들의 모습을 보며 저희로 더욱 자신을 겸허하게 살피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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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한국에서 소설(小說)은 말 그대로 작은 이야기라는 의미예요.
이규보(1168-1241)가 《백운소설》이라는 산문집에서 ‘소설’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했는데, 여기서는 자질구레한 이야기, 하찮은 이야기 라는 뜻이었어요.” 박현경 저(著) 《10대에게 권하는 영문학》(글담출판, 114-11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스탕달은 소설을 가리켜 “거리로 메고 다니는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거울을 메고 거리를 걸어 다니면, 그 거울에는 나와 다를 것이 없는 친 근한 우리 이웃들의 모습이 비칠 것입니다. 이와같이 소설은 나와 같은 이웃들의 민낯 이야기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닌 ‘小’ ‘소인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설을 좋아 합니다. 세상은 눈같이 하얀 백설공주나 백마 타고 나타나는 왕자 같은 사람이 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 많 은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은 절실히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혈루병 여인에게 주목하십니다. 평범한 아니 평범 이하의 여인이라 여김을 받던 사람.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낮고 헐한 사람에게 사랑과 긍휼을 베푸셨 습니다. 작은 자를 보금는 것이 소설이라면, 하나님은 더 작은 자, 더더 작은 자, 심지어는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서 바스라질 것같은 여린 자에 게도 사랑을 주십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마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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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5장 1절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The desert and the parched land will be glad; the wilderness will rejoice and blossom. Like the crocus, Isaiah 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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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수화기
지금 이 방 안에도 라디오 전파와 텔레비젼 전파로 가득 차 있다.
우리들이 볼 수는 없으나 올바른 기구를 가지고 채널을 맞추면 들을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를 고안하셨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수화기가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셨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릭 워렌의 시편 강해 설교(4) 하나님이 우리가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셨음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수화기를 꺼놓은 상태일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항상 멀리 떨어져 있어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 다른 채널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를 들면 하나님의 채널이 13인데 채널 4를 돌렸다면 들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채널이 믿음에 맞추고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늘 말씀하고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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