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사이공, 카불, 그리고 서울
1975년 사이공
2021년 카불
그렇다면…
2022년 서울은?
입력 2021.08.18 03:00
# 탈레반이 돌아왔다. 2021년의 카불은 생지옥이 되었고, 탈출 러시는 1975년의 사이공을 재연했다. 지난 4월 1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 내 미군 철수를 공식화하고 그달 말부터 본격적인 철군을 시작한 지 불과 100여 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8일에도 “탈레반은 월맹군이 아니다. 역량이 그에 훨씬 못 미친다”며 사태를 낙관했다. 물론 탈레반은 월맹 정규군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카불은 1975년 사이공의 재판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2022년 서울은?
# 미군 철수에 발맞춰 ‘돌아온 탈레반’이 20여 년 만에 아프간 수도 카불을 무혈입성하듯 점령해버린 날이 공교롭게도 우리의 광복절이었다. 하지만 그날 서울 시청 앞과 광화문 광장 주변 도심은 집회를 막는다는 이유로 차벽이 둘러쳐 있었다. 해방의 날인 광복절에 서울의 심장 한복판에 차벽을 두른 처사에 대해 누구 하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또 그러려니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옛 서울역 건물에서는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이 기념식에서 부모의 독립군 활동 자체가 의문투성이로 의심받는 광복회장이란 사람이 미리 촬영된 영상으로 한국 사회의 모순은 친일 미청산과 분단이라며 1970~80년대 ‘해방 전후사의 인식’ 수준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친일파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고 절규하듯 말했다.
# 그 사람의 말은 곧 그 사람의 삶이 입증한다. 창씨개명한 것만 가지고도 친일파로 몰던 그는 정작 모친 고(故) 전월선씨가 에모토 시마지(江本島次)로 창씨개명한 제적등본이 제시되자 그럴 리 없다고 얼버무렸다. 더구나 인우보증(隣友保證) 외에는 그의 부모가 조선의용대 혹은 광복군에 참여하거나 복무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기에 적잖은 다른 광복회원들조차 그의 부모가 독립유공자라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부정하지 않는가. 심지어 혹자는 원(元), 웅(雄)이란 그의 이름자는 다분히 일본식으로 당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기피하던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더구나 그는 스스로 친일 정권이라 단정했던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 공채 7기 당료 출신이다. 그가 공화당 공채 당료가 된 때는 유신이 선포된 1972년이었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민정당 창당에 참여해 민정당 헌법특위 행정국장 자리까지 한 후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민정당 전국구 58번 티켓을 받아 들었다. 1992년 제14대에는 민주당으로 갈아타서 당선됐고, 다시 2000년 16대에는 한나라당으로, 또다시 2004년 제17대에는 열린우리당으로 옮겨 타며 당선됐다. 한마디로 당선만 된다면 어떤 갈지자 행보도 마다하지 않던 그다. 그야말로 철새 정치인의 원조 격 아니겠는가. 그는 이런 자신의 행보를 생계 때문이었다고 변명해왔다. 그렇다면 지금도 생계 때문에 광복회장 자리 차지하고 친일 청산을 떠들며 대한민국은 ‘친일의, 친일에 의한, 친일을 위한 나라’라고 폄하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가 친일을 그토록 목메어 비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반미, 종북으로 귀결된다. 그는 미일 동맹에 남한을 종속시킨 것이 한미 동맹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느닷없이 ‘종북’ 이석기를 찬양하는가 하면 심지어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집안에서 큰 박근혜보다 일제강점기에 항일 무장투쟁한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자란 김정은이 낫다고까지 말한 그다(2018년 12월 8일 김정은 위인맞이환영단 주최 “왜 위인인가?” 공개 세미나). 그야말로 대한민국 안에서 활개치는 진짜 ‘탈레반’ 아닌가!
# 지난 1일 북의 김여정이 “남조선군과 미군과의 합동 군사 연습이 예정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소리들을 계속 듣고 있다”고 밝힌 지 나흘 만에 더불어민주당 설훈, 무소속 윤미향 등 범여권 의원 74명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고 저들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그럴수록 북에 놀아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상식의 눈이다. 결국 엊그제부터 실시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사실상 알맹이 없는 도상 게임 수준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그것도 시나리오상 ‘반격’ 부분을 사실상 뺀 채로 말이다.
하지만 김여정은 한미 연합 훈련 사전 연습을 개시한 지난 10일 또다시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는 담화를 냈다. 배신이란 말은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믿고 있는 바가 있을 때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녹을 먹는 의원 중 4분의 1이 연서명해 훈련 중단 성명을 낸 것도 성에 차지 않는다면 도대체 북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란 김여정의 말에 담겨 있다. 한미 연합 훈련 중단을 넘어 주한미군 철수가 핵심인 것이다!
# 얼마 전 이 정부의 국정원이 발표한 대로, 공작금을 받은 것은 물론 혈서로 ‘원수님의 충직한 전사로 살자’는 충성 서약까지 하며 북한 지령을 받아 스텔스기 도입 반대 투쟁을 벌인 이른바 ‘충북동지회’ 간첩 4인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도 관여한 정황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청와대가 “언급할 가치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현재 대한민국의 진면목이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다 죽은 줄 알았던 탈레반이 순식간에 아프간을 집어삼킨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보자면 2022년 대선은 단순히 정권 교체냐, 아니냐를 넘어 대한민국의 존폐가 걸린 한판 대결이다. 그런데 정작 정권 교체하겠다고 나선 국민의힘 대표와 그 대선 주자들을 보노라면 애들 장난 같은 기 싸움이나 하고 앉아 있으니…. 정말이지 대한민국 국민 노릇 계속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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