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 종전선언,평화체제 돼도 유엔사 살려야 하는 이유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입력 2020.11.17 09:39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등이 2019년 6월 11일 오전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식별된 6.25 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추정되는 전사자 유해 위해 유엔기를 덮고있다./사진공동취재단
◇ 종전선언 이슈는 ‘사화산’이 아니라 ‘휴화산’
지난 몇 달간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가장 많이 등장했던 용어 중의 하나가 종전선언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의 낙선과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에 따라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입니다. 내년 1월 공식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의 성향이 ‘탑 다운’ 방식의 종전선언 논의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종전선언 이슈가 ‘사화산’이 아니라 ‘휴화산’이며,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종전선언 불씨를 언제든지 되살리려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시각이 많은 듯합니다. 오늘은 종전선언, 그리고 종전선언에 항상 따라다니는 유엔사, 평화협정(평화체제)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종전선언은 용어 자체만 보면 전쟁의 종식을 선언하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상징적인 선언입니다. 한반도 종전선언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징검다리로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대북 카드였는데요,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주변국도 김정은 정권의 안위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일종의 정치적 보상 차원 체제보장 카드 성격도 있었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평가 많았던 문대통령 유엔 ‘종전선언’ 연설
하지만 지난해 2월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비핵화 협상 교착 상태가 장기화하면서 종전선언의 추동력도 약해졌지요. 그런데 지난 여름 이후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종전선언 얘기가 갑자기 ‘유행’하더니 지난 9월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 카드를 다시 꺼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영구적으로 종식돼야 한다”면서 “그 시작은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역시나 이 카드는 상당수 미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채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문 대통령 등이 내심 기대했을 북한의 반응도 아직까지 전혀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회 일각에선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바로 평화체제가 실현되고 유엔사가 해체될 것처럼 얘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뿐더러 매우 위험한 얘기입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유엔사의 역사와 성격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유엔사 7개 후방기지는 유사시 우리 생명줄과 같은 존재
유엔사는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일본 도쿄에서 창설돼 1957년7월 서울 용산기지로 옮겨온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미국·영국·호주와 우리나라 등 6·25전쟁 참전국 중심의 18개 회원국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평상시 정전협정·체제를 유지, 관리하는 것이 주임무입니다.
많은 분들이 유엔사의 임무가 이것만 있는 걸로 생각하시는데요, 실제로는 이것 이상으로 중요한 임무도 있습니다. 한반도 전면전시 전력(戰力) 제공국들로부터 병력과 장비를 제공 받아 한미연합사의 작전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전력 제공국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17개 회원국입니다. 유사시 미군 등 전력 제공국의 병력·장비가 들어오는 요코스카 등 7개 유엔사 후방기지(주일 미군기지)들은 우리나라의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또 주한미군사령관(한미연합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유엔사의 역사와 기능, 회원국, 규모 등을 소개한 그래픽. /조선일보 DB
◇종전선언 뒤에도 평화협정 체결 때까지 유엔사 존속 불가피
종전선언이 이뤄지더라도 정전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평화협정과 이에 따른 평화체제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현실적으로 정전체제가 유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전협정을 곧바로 폐기하면 DMZ(비무장지대) 관리 등을 남북한이 협상해 정리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사안의 성격상 단시일내 해결이 어려운 것들입니다.
특히 NLL(북방한계선)을 대체할 새로운 해상경계선도 만들어야 하는데 그동안 NLL을 둘러싼 남북한의 갈등과 이견을 감안하면 결코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지요. 결국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정전체제가 유지돼야 하고, 정전체제를 유지·관리하는 유엔사도 존속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정전체제 유지, 유엔사 존속은 정부 고위 관계자들도 ‘공언’해온 대목입니다.
종전선언 이후 평화협정 체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성사가 된다면 유엔사 해체 문제가 공식화할 것입니다. 유엔사는 정전협정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평화체제가 되면 존립 근거가 약해져 해체하거나 다른 역할을 하는 기구로 바꾸는 방안을 결정해야 합니다.
2020년 11월 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유엔사 장병들이 비무장 상태로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유엔사 강화가 우리 안보에 부정적일까?
일부 전문가들은 유엔사 해체가 능사가 아니며 성격과 명칭을 바꿔 존속시킬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한반도 유사시 생명줄인 7개 유엔사 후방기지의 역할이 대폭 축소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유엔사 문제와 관련해 지난 몇 년간 주목을 받으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미국측의 ‘유엔사 재활성화’라 불리는 유엔사 강화 움직임입니다. 유엔사 재활성화는 2006년 시작됐지만 2014년부터 본격화했는데요, 정부와 군 일각에선 미측이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전환 이후에도 강화된 유엔사를 통해 여전히 전작권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청와대 등 현정부 일부 핵심 인사들은 미국의 유엔사 강화 움직임에 부정적이고 견제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러면 유엔사 강화가 정말 전작권 전환 추진과 우리 안보에 부정적인 것일까요?
6.25전쟁 유해발굴 사업이 계속 이뤄지고 있는 화살머리 고지 GP에서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과 유엔기. DMZ는 유엔사 관할구역이어서 출입에는 유엔사의 승인이 필요하다. /고운호 기자
◇유엔사, 북 급변사태시 중국 개입 견제하는 국제기구로도 유용
전문가들은 미측이 우리를 배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유엔사를 강화하려 하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전직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과거 미측은 우리에게 ‘유엔사 강화에 한국 측은 신경 쓰지 말라’는 입장이었다”며 “하지만 이젠 우리 보고 적극 참여하라 하니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향후 북한 급변 사태나 위기 사태 시 중국의 개입과 간섭을 견제하기 위한 국제기구로서도 유엔사는 매우 유용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지금 세계 주요 10여개 국가들을 모아 한반도 평화체제 유지 및 지원를 위한 새 국제기구를 발족시키려 한다면 쉽게 만들 수 있을까요? 기존 유엔사를 잘 활용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두 분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오늘 편지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재임 시절 12만명이 넘는 유엔군(유엔평화유지군)을 휘하에 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한국군사학회와 합동군사대학교가 공동 주최한 ’2020 국제안보환경 평가와 한국의 생존전략' 세미나 기조연설을 통해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국민들이 유엔사의 중요한 의미 알아야”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유엔군의 활동이 있었지만 (실행력이 강하고 대응수위가 높은) ‘집행’(Enforcement) 차원은 6.25전쟁이 유일했고 나머지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유엔사의 의미를 우리 국민들이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유엔사 군정위 수석대표를 지낸 장광현 예비역 육군소장은 최근 유엔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심층분석한 ‘다시 유엔사를 논하다’ 책에서 “유엔사는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 우선적으로 청산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 나아가서는 동북아 안보지형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어 “설사 한반도에서 종전선언에 이어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하더라도 ‘전쟁 위험이 완전히 종식된 진정한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는 한반도 상황에 가장 익숙한 유엔사로 하여금 ‘평화체제 관리자’로서 그 역할을 최적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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