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敵일 수 있다는 교훈
트럼프의 4년은 대통령 한 명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 시간
그보다 더 제왕적인 우리의 대통령제는 훨씬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지 않은가
입력 2020.11.09 03:20
미국 대통령 선거가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선거 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마침내 저물게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4년은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준 시간이었다.
미국은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 많은 국가에 늘 특별한 존재였다. 세계 제1 경제 대국이고 군사 강국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의 모범 국가였고 그 가치의 수호자였다. 특히 우리가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미국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땅으로 선망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미국 대통령 트럼프를 지켜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그 나라의 민주주의와 대통령제를 다시 보게 되었다.
7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민주당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수천명의 워싱턴 DC시민들이 백악관 앞에서 트럼프대통령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있다./EPA 연합뉴스
미국을 건국한 이들은 철저한 권력분립과 상호 견제를 통한 권력 균형 체제를 고안해 냈다. 그것이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장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들의 구상은 삼권분립, 양원제, 연방제로 제도화되었고, 그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미국은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미국에서조차 정치가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지난 4년간 트럼프는 보여주었다.
제도로서 대통령으로 행동하기보다 개인적 선호와 탐욕에 의한 통치를 했고 독립 기관들의 자율성을 침해했다. 지지 기반 강화를 위해 분열과 적대감을 부추기고, 공공연하게 거짓말을 하고, 국민을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고 반대자를 서슴지 않고 공격하는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 결과 트럼프는 모두가 아니라 어느 한쪽의 대통령이 되었다. 이미 분열되었던 미국은 최악 상황으로 쪼개졌고 선거 결과를 두고 총까지 들고 나와 서로 대치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를 보면서, 민주주의는 어느 때라도 완성된 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끊임없이 감시하고 그 가치를 지켜내고자 애써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방심하면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후퇴할 수 있다.
지난 10월 27일 미시간 랜싱 국제공항에서 가진 유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빗속에 연설하고 있는 뒷 모습./AP 연합뉴스
트럼프 재임 4년은 우리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져 주고 있다. 우리 대통령은 국민을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지 않고 ‘모두의’ 지도자로서 통합의 중심에 서 있을까. 우리 정치 시스템에서는 권력분립과 상호 견제라고 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우리 정치는 증오와 배제라는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타협과 화합의 정치를 이뤄내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우리 사회는 정파적으로 심각하게 양분되어 있고 대통령은 분열과 갈등의 정점에 서 있다. 권력분립과 상호 견제는커녕 모든 권력이 대통령과 청와대에 집중되었다. 의회 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은 대통령 친위대가 되었고 그래서 의회 정치는 제 역할을 잃었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심각하게 의심받고 있고, 독립적이어야 할 감사원이나 검찰은 노골적인 정파적 공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라고 해서 트럼프의 미국과 딱히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그래도 미국은 연방제 국가라서 일반 국민의 일상적 삶과 관련된 권한 대부분이 주 정부에 귀속되어 있고, 제도적으로 볼 때도 의회정치나 사법부가 우리처럼 무기력하지는 않다. 이에 비해 우리는 동네 아파트 세금 기준까지 대통령이 정하는 나라다. 대통령으로 인한 문제점이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훨씬 심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이미 이런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2016년 촛불 집회 당시 거리로 뛰쳐나갔던 많은 국민이 원했던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언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민주화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권력이 집중되고 상호 견제 시스템이 무너진 ‘가장 제왕적인’ 대통령제하에서 살고 있다. 언필칭 ‘민주화 운동 세력’의 집권하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4년은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대통령 한 명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시간이었다. 트럼프 통치의 끝을 보면서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평가해 볼 때가 되었다.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는 지금처럼 대통령 1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통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배제와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타협과 조정의 정치가 가능하도록 새로운 통치 구조에 대한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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