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운동 1
모운동*의 밤은
절벽처럼 떨어진다
별 속에 별이 있고
그 별 속에 또 별이 있는 걸
모운동에 살며 알았다는 사람은
별이 뿌리를 들썩이며
구름 사이로 반짝인다고 했다
10년째 모운동에 산다고 했다
모운동에서 이 생을 넘을 거라고 했다
잠을 밀어내고 폐교 운동장에서
하늘을 보았다
구름 속으로 달이
자꾸 숨었다
달을 찾다가 눈에 밟히는 별들을
한 개씩 몸에 심었다
나는 누구에게서
이 생을 넘어야 할까
골똘히 별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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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운동 : 구름이 모이는 동네
♧ 모운동 2
모운동에 가는 것은
구름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일
세상에 없는 길을 찾아가는 길
이윽고 밤이 되어
구름 사이로 별이 깜빡이면
멀리서 오는 눈빛이
어찌하여 사랑을 이토록 빛나게 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어 생각하는 일
내가 너를 향해 살아가는 것을
가만히 손길을 통해 전하는 일
♧ 모운동 3
구름이 저녁을 가만히
풀어 놓았지요
바람이 외로움의 이력을 읽는 저녁에
어떤 나뭇잎은 나뭇가지를 그만
놓아버렸지요
한 사람의 손을
놓아버린 적 있는 꿈이
소스라쳤지요
♧ 조팝나무
소담 한정식 담벼락을 지날 때
조팝나무가 팔을 뻗어 나를 만질 때
연두에서 연두로
연두에서 꽃으로
꽃에서 초록으로
징검다리처럼 건너뛰어 볼 때
내일 몰라보게 자란 연두가 오늘의 내게
말을 걸 때
흰 담벼락에 온몸으로 쓰는
한 생이 있어
말없이 그윽한 눈길을 읽으며 지나갈 때
♧ 감꽃은 연해서
꽃철이 조용히 지나가서
언제 왔다 가는지 모르게 문득
고개를 들면 이미
감이 자라고 있었지
큰 감잎 속으로 언제 익었는지
붉어진 후에야
골목길 옆 철제담 너머에
감나무가 자라는 걸 알았지
감꽃은 초록으로 스며드는 연두여서
연두로 스며드는 흰빛이어서
감꽃은 연해서
♧ 비
물에 떨어지는 맑은 빗방울은
눈으로 들어오는 애잔한 소리여서
둥글게 가슴 안으로 번지는 울림이어서
멍하니 바라보다 시간을 다 보냈지
연못이 비 듣는 걸 바라보는 것으로도
내 한나절은 족해서
♧ 빗소리
구름을 걸어온 말들이
자박자박
울타리를 치리
다정한 말이
마음을 간질여 주어
한나절 깊은 잠에 들리
섬에 갇히리
세상에 둘만 남으로
♧ 달 아래
상가를 다녀오는 길
죽음과 삶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서로 이름을 부르는
밤길
몽울몽울 구름이 번지는데
누구도 말이 없다
밤이 저 혼자
달을 한껏 부풀려 놓고
발아래가 너무 환하고
*「우리詩」9월호 ‘신작 소시집’에서
사진 : 세계문화유산 '경주양동민속마을'에서(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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