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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고슴도치들의 나라

鶴山 徐 仁 2017. 9. 13. 12:54
[고미석 칼럼]고슴도치들의 나라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7-09-13 03:00  수정 2017-09-13 09:16



새로운 정보와 상황 앞에서 기존생각 수정 ‘여우’형과
자기편견 강화 ‘고슴도치’형 
특정편향에 기운 예측 오류로 위기의 ‘신호’ 놓쳐선 안돼
“사실관계 변하면 생각 바꾼다”… 케인스의 오랜 충고 기억하길


  고미석 논설위원


나이 든 사자는 사냥이 힘들어지자 소문을 퍼뜨린다. 병이 났으니까 문안들 오라고. 사자 굴로 들어간 동물은 죄다 사자 밥이 되었다. 오직 여우만 빼고. 여우는 동굴 밖에서 인사를 했다. “왜 들어오지 않는 거야?” “들어간 동물들의 발자국은 보이는데, 나온 발자국이 보이지 않아서요.”

이솝 우화다. 종종 부정적 역할로 나오곤 하는 여우가 여기서는 위험신호를 재빠르게 포착하는 지혜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20세기 정치 사상가 이사야 벌린도 ‘고슴도치와 여우’란 글에서 많은 것을 두루 아는 다원주의자의 이미지로 여우를 빗댔다. 이에 대비해 고슴도치는 한 가지를 깊이 아는 일원론자.  

이를 기원으로 한 분류법이 다양하게 파생되었다.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도 그 하나다. 위대한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여우가 아니라, 큰 그림을 파악하고 이를 단순화시켜 집중한 고슴도치형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언제나 고슴도치형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통계분석가 네이트 실버는 미래 예측에 있어 고슴도치형을 단연 경계의 대상으로 꼽았다. 실버는 작년 미 대선 예측을 실패한 탓에 다소 빛은 바랬어도 2012년 대선에서 전무후무한 ‘족집게 도사’로 명성을 얻은 주인공. 그는 저서 ‘신호와 소음’에서 미래를 읽는 데 의미 있는 정보를 신호, 이를 가로막는 것을 소음으로 구별한다. 신호를 제대로 읽으려면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사실만 봐야 한다. 고슴도치형이 취약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방대한 데이터에서 새로운 결과가 나오고 상황이 달라지면 기존 생각을 유연하게 수정해야 예측 결과도 실제와 가까워진다. 한데, 자기 비판적 태도와 회의적 자세를 가진 여우와 달리 고슴도치형은 얕은 지식과 과도한 자신감에 의지해 업데이트를 외면한다. 경험에서 배우는 여우는 정확도가 높아지고, 애초 설정한 전제에 집착한 고슴도치는 그와 정반대다. 눈앞에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면 이를 되레 자기 편견을 강화하는 쪽으로 조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큰소리치는 유형이다.  

보수 진보 정권 할 것 없이 북핵위기 예측에 무능한 것을 보면, 한국 사회의 큰 취약점은 고슴도치형이 득세하는 풍토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적어도 여우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안다. 고슴도치는 제 아는 것밖에 모른다. 누가 뭐라면 가시 돋은 몸을 웅크려 전투모드로 들어간다. 자기 방어 방식이다. 예측의 한계를 아는 여우보다 호언장담 밀어붙이는 고슴도치가 한국사회에서는 유독 더 선호된다. 허장성세라도 그건 나중 일이고, 현실에서 주목받으려면 그게 더 잘 먹힌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6차 핵실험을 축포 삼아 맞은 정권수립 기념식에서 북녘의 3대 세습 통치자는 “주체혁명의 최후승리는 확정적”이라고 선언했다. 남조선 따위는 이제 상대할 ‘깜’도 못 된다는 그 거만함이 구축되기까지 오랜 세월 한국 사회는 안이한 판단으로 줄곧 위기 예측에 실패를 거듭해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일방적 폭력에 맞설 최소한의 대응조차 ‘사드 보복’의 해괴한 해코지로 중국에 희롱당하는 지경이 됐다. ‘소음’에 가려진 뚜렷한 ‘신호’를 무시한 참화라 할 만하다.  

합리적 예측의 전제는 무엇보다 자기 갱신이다. 사드 배치에 대해 대통령 스스로가 입장을 전환한 마당에도 집권당은 맹신의 담장 밖으로 발을 떼려 들지 않는다. ‘신호’가 달라져도 여전히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 전술핵 배치와 사드 배치 무용론은 불변의 결론이고 ‘대화’와 ‘평화’를 그 들러리로 세운다.

신도 아닌 인간의 예측은 빗나갈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일 것이다. 예측의 본질은 불확실성이다. 다양한 시나리오에 입각해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엉터리 예측이 초래할 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그런 점에서 자기 예측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정치인과 그 주변 지식인은 한국처럼 취약한 나라에서는 위험천만한 존재다. 소신과 무지 사이에서 길 잃은 고슴도치의 요란한 부추김에 자칫 ‘신호’를 놓치면 사자 굴로 돌진할 수밖에. 자기 판단을 의심하고 끝없이 예측을 수정하는 능력, 대한민국의 생존에는 그 자질을 갖춘 여우도 필요하다.  

특정 편향에 사로잡혀 잘못된 확신을 억지로 고집하고 이해다툼의 전략으로 활용하는 이 좁은 땅의 고슴도치들. 그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오래된 충고가 있다. “사실관계가 변하면 나는 내 생각을 수정한다.” 20세기 새로운 경제학의 틀을 만들어낸 경제학자 존 케인스가 이념 대결의 파도 속에서 보낸 필생의 현장 경험 끝에 추출한 결론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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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Main/3/all/20170913/86298216/1#csidxe12f57af9686780ab46ed791d4fd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