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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나라 망하는 정권교체도 있다

鶴山 徐 仁 2017. 1. 16. 10:57

[전영기의 시시각각] 나라 망하는 정권교체도 있다

기자
                   
 

“중국 사람 쩨쩨…미군은 철수?”
문재인·반기문, 사드 결판 내라

전영기 칼럼니스트

전영기
칼럼니스트



엊그제 서울 변두리 반지하에 사는 친척 누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중국의 사드 보복 때문에 관광객이 안 들어와서 1월부터 회사에서 해고. 집에서 놀고 있는데 이게 언제 끝날지??” 관광버스 운전기사인 남편의 갑작스러운 해고에 당황하는 누님의 표정이 어른거렸다. 바로 전화를 했더니 “회사에선 두 달만 기다려 달라는데 진짜 3월엔 사드 문제가 풀리는 거냐”고 묻는다. 그 회사에서 돌리는 관광버스가 80대인데 올스톱했다고 한다. 전세기 타고 건너오던 유커들이 사라지면서 그들로 북적이던 숙소·음식점·면세점도 적막해졌다는 것이다. 난들 뾰족한 대답이 있겠는가.

30대 아들 둘은 자기 밥벌이에 바쁘고, 노후를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이 60대 맞벌이 부부는 일할 곳만 있으면 어디든 쫓아다닌 지 오래다. 누님은 “중국 사람들, 참 쩨쩨하다. 사드랑 관광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우릴 못살게 구나!” 하다가 “근데 사드 안 하면 미군은 철수하는 거니?”라고 콕콕 찌르는 말만 한다. 외교·국방 현안은 정부 간 문제를 넘어서 서민의 생활 이슈가 됐다. 국민 개개인이 세세한 안보 문제까지 신경 써야 먹고사는 이상한 나라다. 국가권력의 공백기에 정치가 힘을 모으기는커녕 극도로 갈라지고 대외 방어막이 찢어져 벌어진 일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아베는 ‘한국 스테이크’가 이렇게 말랑말랑할 때도 있나 싶을 것이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요리 찔러보고 조리 건드려 보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새해 벽두부터 시진핑 진영은 한국 정부와 대화는 거부한 채 자기들 말 잘 듣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만 베이징에 불러들여 “한국은 사드를 중단하라”고 협박했다.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이번엔 트럼프 측이 청와대 안보실장을 워싱턴에 오게 해 “사드는 중국이 반대해도 반드시 배치할 것”이라고 반격했다. 큰 덩치들끼리는 직접 부딪치지 않는다. 요란하게 짖기만 할 뿐 물지 못하는 만만한 한국을 가운데 두고 상대방의 의지·강도·속도·감각을 가늠하고 있다. 이승만·박정희부터 김대중·노무현을 거쳐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각 정권은 한·미 동맹의 터 위에서 시대의 문제를 제 방식대로 헤쳐 나왔다. 대한민국의 모든 정권이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그렇다 해도 지금처럼 속을 훤히 드러내 보인 채 열강의 탐욕과 공격성에 노출된 적은 없었다.

하긴 비슷한 일이 120여 년 전에 있었다. 구한말 중국(청나라)·러시아·일본 등 열강은 동아시아의 패권 싸움터를 한반도로 삼았다. 조선의 정치는 패권국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친중 사대정권이 들어선 뒤 친일(갑신정변·1884, 청일전쟁·1895)→친러(아관파천·1896)→친일정권(러일전쟁·1904)으로 정권교체를 거듭하면서 나라는 30년 만에 홀라당 망해버렸다. 정권교체를 거듭할수록 백성은 골병이 들었다. 정권교체가 항상 좋은 건 아니었다. 외세를 끌어들여 정권을 바꾸느니 작더라도 외세를 활용할 줄 아는 단단하고 일관되며 오래가는 나라가 더 중요하다. 정권을 교체해 나라가 망하면 무슨 소용인가. 구한말 역사의 교훈은 나라가 망하는 정권교체도 있다는 것이다.

장면을 바꿔보자. 현재 트럼프와 시진핑은 한반도에서 정면으로 충돌하기 일보직전이다. 이들의 힘 대결에 ‘한국이 조기 대선을 치르니 충돌을 연기해 달라’는 얘기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판에 문재인은 사드 결정을 언제 생길지 모를 차기 정부에 넘기라고 한다. 그의 자세는 미·중 간 양다리 걸치기다. 반면 반기문은 이미 정한대로 사드를 배치하라고 한다. 그는 안보에선 미국 우선주의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정권보다 나라를 보살펴야 한다. 정권이 중요한 정치인은 사드 이슈를 애매모호하게 방치하고 싶을 것이다. 당장 중국의 경제 보복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한 표 때문이다. 나라 입장에선 사드의 불확실성이 빨리 제거되어야 한다. 문재인과 반기문이 유권자를 상대로 일대일 끝장토론을 벌일 필요가 있다. 애매모호하게 둘러대지 마라. 불확실성의 구름을 거둬라.

전영기 논설위원·칼럼니스트


[출처: 중앙일보] [전영기의 시시각각] 나라 망하는 정권교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