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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외교관 반기문' 넘어야 '반기문 후보' 門 열려

鶴山 徐 仁 2016. 5. 29. 14:56

[강천석 칼럼] '외교관 반기문' 넘어야 '반기문 후보' 門 열려


입력 : 2016.05.27 23:05

  

야권, '여당 敗北'를 '야당 승리'로 誤判하다 한 방 먹어
'決斷의 정치력' 요구되는 대통령과 '균형 감각 中心' 외교관 사이 不調和

강천석 논설고문
강천석 논설고문
반기문(潘基文) UN 사무총장은 기다림의 달인(達人)이다. 참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다. 근면(勤勉) 제일주의자다. 지난 25일 제주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해 반 총장이 소화한 일정표(日程表)는 그에 대한 이런 세간의 인물평이 그릇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러나 반 총장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용케 잘도 참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을 쏟아냈다. 대선 출마 가능성, 출마에 관해 박근혜 대통령과 조율(調律) 여부, 대통령직을 감당할 체력 문제, 한국 정치와 사회의 문제점 등 온갖 질문을 피하지 않고 받아냈다. 북한 방문 의향(意向)을 묻자 "(현재의 대치 국면에서) 남북 간 대화 채널을 유지해온 것은 저 혼자인 듯하다"며 넌지시 존재감(存在感)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여튼 반 총장은 작심(作心)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선 의전(儀典)에 세심한 그가 이런 질문에 답(答)하느라 전(前) 국가원수들이 여럿 참석한 만찬 자리에 40여분이나 지각하는 결례(缺禮)를 범했을 리 없다.

반 총장 입장에선 때가 무르익은 게 사실이다. 집권 새누리당은 총선 참패로 원내(院內) 제2당으로 주저앉았다. 당(黨)의 다음 재목(材木)으로 꼽히던 오세훈 전 시장, 김문수 전 지사는 허리가 부러지고 김무성 전 대표는 날갯죽지가 꺾였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 정당은 오늘부터 표류(漂流)한다. 새누리당이 바로 그 지경이다. 익은 감은 제때 따야 한다. 대선 (大選)까지 17개월 남았고 반 총장 임기는 7개월 남았다. 이번이 UN 사무총장 재임 중 마지막 방한(訪韓)이다. 대권(大權) 의욕을 밝히려면 조명(照明)이 들어오는 순간에 터뜨려야 한다. 그러고 보니 기회를 낚아채는 데도 한가락이 있는 듯하다.

반 총장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자 총선 이후 폐가(廢家) 모양 허물어져 가던 새누리당 안팎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빈집에 소(牛) 들어온 듯하다. 새누리당으로선 그럴 만하다. '대선 후보 반기문'은 국제사회에서 명함을 돌릴 필요가 없는 인물이다. 문재인·안철수·박원순·손학규 등 야당 예비 주자(走者)들이 갖지 못한 경쟁력이다. UN 참관(參觀)하의 제헌(制憲)의원 선거, 6·25 UN군 참전 등 1948년 정부 출범 이래 UN과 떼려야 떼기 힘든 인연을 맺어온 한국 국민에게 10년을 연임(連任)한 UN 사무총장이라는 '위광(威光) 효과'는 가볍지 않다.

북한은 '도발 위험'과 '붕괴 가능성'이란 양면(兩面)에서 목구멍 안 가시 같은 변수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엮어가는 한반도 주변 '정치 방정식'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발을 헛디디는 순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어제 그제 국제 정치의 대주주(大株主) G7 정상이 일본 이세지마(伊勢志摩)에서 북한 핵과 세계 현안을 논의하는 동안 한국 대통령은 아프리카 각국을 순방하고 있었다. 남북이 통일되고 천지가 개벽(開闢)해 한국의 지정학적 환경이 뒤바뀌지 않는 한 국제 정치를 읽는 눈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필수 자격 요건 중 하나다. 지역 패권(覇權) 정치에 신물을 내는 유권자 정서도 반 총장의 우군(友軍)이다. 그는 충청도 출신이다.

야당이 한 방 먹은 건 분명하다. 2012년 12월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보수 성향 유권자의 30%가 4·13 총선에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등을 돌렸다. '원한(怨恨) 정치'와 '안하무인(眼下無人) 정치'에 대한 응징이었다. 3당 정립(鼎立) 시대는 심판의 결과다. 패자(敗者)는 있으나 승자(勝者)가 없는 선거가 4·13 총선이다. 야권(野圈)이 여당이 패배한 선거를 야당이 승리한 선거라며 방심한 순간 '반기문 펀치'가 터졌다.

그러나 아궁이에 불 넣었다고 식은 구들장이 금방 뜨뜻해지는 법은 없다. 냉골로 변한 윗목까지 온기(溫氣)가 전해지려면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등 돌린 민심(民心)이 내년 12월 전에 새누리당으로 되돌아온다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급하다고 반기문 총장을 '세계 대통령' 운운하고 과대(過大) 포장하려는 새누리당 일각의 움직임은 위태위태하다. 1960년 이후 UN 사무총장들의 국적은 미얀마·오스트리아·페루·이집트·가나·한국이다. 반 총장 후임자로 거론되는 인물 9명은 불가리아 인사 2명을 포함해 7명이 동유럽 국가 출신이다. '세계 대통령'보다는 '개발도상국 출신이 주류(主流)'라는 표현이 현실에 가깝다.

한국 대통령은 험(險)한 자리다. 되기도 어렵지만 잘하기는 몇 배 더 어렵다. 선진국에서도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이나 내각책임제의 총리 가운데 외교관 출신은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외교장관을 거친 인물은 많으나 그들은 외교관이 아니라 정치인 출신이다. 국가적 난관(難關)을 돌파하는 결단의 정치력이 요구되는 대통령 자리와 균형 감각을 닦고 길러야 하는 외교관 경력 사이의 부조화(不調和) 때문이다. '외교관 반기문'을 넘어야 '대통령 후보 반기문'으로 가는 문(門)이 열린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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