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4.25 18:27
- ▲ 플레어를 터뜨리며 화려하게 비행하는 Su-27UB. 러시아 공군의 곡예비행팀인 러시안 나이츠의 시범 장면이다. <출처: (cc) Alexander Mishin>
1989년, 파리 에어쇼에서 소련의 시범 비행 조종사인 빅토르 푸가쳬브(Victor Pugachev)가 자국산 최신예 전투기에 올랐다. 사실 1984년 처음 배치된 이 전투기의 존재를 서방은 이미 감지하고 있었고 1987년 NATO군 소속 EP-3 정찰기가 소련 영공근처에서 요격 나온 이전투기와 접촉한 적도 있어 결코 낯선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번 비행은 서방 세계에 그 능력을 처음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 ▲ 흔히 코브라 기동으로 더 많이 알려진 푸가쳬프 기동. 에어쇼에서 많은 이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지만 실전에서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출처: (cc) Henrickson at Wikimedia.org>
코브라 기동으로 화려하게 데뷔
모두의 관심 속에 하늘로 올라간 신예기는 놀라운 기동을 연이어 선보여 모든 이들의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제1차 대전 당시의 복엽기처럼 저속의 비행기들이나 할 수 있던 고각의 선회도 거뜬히 하였다. 하지만 절정은 기수를 위로 향하고 제자리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코브라 기동을 선보였을 때였다. 거대한 전투기가 마치 중력의 제한을 벗어난 듯이 하늘에 정지된 듯한 모습에 모두는 경악하였다. 바로 Su-27 플랭커(Flanker)의 충격적인 데뷔였다.
이런 모습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되었다. 노후화된 전폭기를 교체하기 위한 한국 공군의 차세대전투기사업이 이른바 FX이었는데 당시 Su-27의 개량형인 Su-37이 후보 중 하나였다. 1996년 러시아는 서울 에어쇼에 Su-37을 출품하여 코브라 기동이 포함된 시범비행을 선보여 많은 관람자들에게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그 만큼 이 전투기의 기동 능력은 최고라고 단언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 ▲ 시범을 보이는 러시안 나이츠 소속 Su-27UB. <출처: (cc) Dmitry A. Mottl>
하늘을 가르는 양대 축, 러시아제 전투기
프랑스, 스웨덴이나 다국적 기업인 EADS처럼 일부 제3세력이 존재하지만 지금 지구상에 날아다니는 전투기들은 크게 미제와 러시아제(소련제)로 양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도 국산 전투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만 하이(High)급 전투기들은 이들 국가로부터 도입한 것들이다. 바로 이런 구도 상황에서 Su-27은 미국제 전투기의 확실한 대항마가 등장하였음을 의미하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사실 러시아제 전투기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떨 친 계기는 1950년 겨울 한반도 북부에 등장한 MiG-15 때문이었다. 제2차 대전 당시에도 소련은 수많은 자국산 전투기를 생산하여 전쟁에 투입하였을 만큼 항공 산업이 발달한 나라였지만 전투기의 명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냉전의 개시와 더불어 제트 시대가 본격 도래 하면서 소련제 전투기는 의미 있는 변화를 선도하였다.
F-15, F-16에 맞설 새로운 전투기의 조건
그런데 한국전쟁, 월남전쟁, 중동전쟁에서 미제 전투기에 대항하여 소련제 전투기들은 대단한 활약을 펼쳤음에도 객관적으로 성능이 뒤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록 월남전에서 MiG-21같은 경우는 미국이 당혹할 정도의 격추비를 교환하였지만 전투기의 성능이 좋아서 그러한 결과를 얻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MiG-25는 한때 서방을 극도로 긴장시켰지만 엄청난 속도에 지레 겁먹고 성능을 과대평가하였을 뿐이었다.
당연히 소련 군부는 미국의 전투기와 충분히 대적할만한 신예기를 원하였다. 특히 1960대 말 미국이 기존의 F-4를 대체할 차기 전투기의 개발(그 결과 탄생한 것이 F-15)에 착수하자 초조함은 더해 갔다. 이에 따라 새로운 전투기는 마하 2이상의 속도, 장거리 비행능력, 단거리 이착륙 능력, 중무장이 가능하도록 개념을 정리하고 이러한 조건에 부합한 차세대 전투기의 기본 형태를 TsaGi(중앙 유체 역학 연구소)에서 연구하도록 지시하였다.
- ▲ (좌)Su-27의 비행모습. 1988년 미군의 촬영한 모습.
(우)AA-10 대공 미사일을 장착한 Su-27. 1988년 미군이 촬영한 모습.
수호이와 미그 두 갈래로 나뉜 개발 방향
그런데 장기간의 연구 결과, 하나의 기체로 군이 요구한 모든 사항을 충족하기가 기술적으로 힘들다고 보고 대형의 장거리 요격전투기와 소형의 제공전투기로 각각 나누어 개발하게 되었다. 전자는 수호이 설계국이 후자는 미그 설계국이 담당하였는데 TsaGi 연구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전투기는 체급만 다른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일부로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체급을 달리한 F-15와 F-16을 개발한 미국과 같은 결과였다.
이렇게 미그 설계국이 제작한 것이 F-16에 맞서는 동구권의 대표적 경량 전투기로 유명한 MiG-29로 현재 북한도 보유 중이다. Su-27은 이 보다 훨씬 큰 만큼 성능도 월등하다. 소련 최초로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By-Wire) 제어 시스템을 사용하였을 만큼 최첨단의 기술이 접목되었다. 특히 소련 국토를 고려한 넓은 작전 반경의 확보를 위해 채택한 TsaGi의 공기 역학적 디자인 덕분에 상당히 미려한 외관을 가지게 되었다.
- ▲ 러시아 유일 항공모함 쿠즈네쵸프에서 운용 중인 함재기형 플랭커인 Su-33. <출처: (cc) Russian Presidential Executive Office>
개발 과정의 도전과 시련
사실 무기가 예쁠 필요까지는 없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멋있게 생겨서 굳이 나쁠 일도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Su-27은 둔중해 보이는 기존 소련 전투기들의 이미지를 일거에 바꾸어 놓은 걸작이기도 하였다. Su-27의 실험 원형기인 T-10이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것은 1977년 5월이었는데 실험 도중 추락사고가 있었을 만큼 많은 시련도 겪었다. 미 공군의 F-15와 F-14를 염두에 두다 보니 개발 중에 수 차례의 설계 변경도 있었다.
Su-27의 연구와 병행하여 새로 개발한 AL-31F 터보팬 엔진은 12.5톤의 강력한 추력을 발휘하는데 그 결과 중무장상태에서도 고속, 고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앞에 설명한 놀라운 기동 능력도 공기 역학적 기체 구조와 더불어 강력한 엔진의 힘에 힘입은 바가 크다. 또한 거대한 동체에 9.4톤의 연료를 탑재할 수 있어 외부연료탱크가 없이도 넓은 반경 내에서 작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 ▲ Su-35. Su-27의 개량형으로 제공 목적의 전투기이다. Su-35에 추력 편향 노즐 엔진을 장착한 것이 Su-37로, 한국 공군의 FX사업 후보 기종이기도 했다.<출처: (cc)Oleg Belyakov>
등장과 동시에 얻은 명성
무장으로 강력한 30mm 구경의 GSh-30-1 기관포 1문을 우측 날개에 내장하고 12개의 하드 포인트에 최대 8톤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무장을 장착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동안 소련 전투기의 약점이었던 레이더를 비롯한 각종 전자 장비도 성능이 대폭 향상된 것들이 장착되었다. 이처럼 서방의 최신 전투기에 맞설 수 있는 Su-27은 1984년 12월 1호기가 군에 인도되었고 소련 공군의 능력은 비약적으로 커졌다.
오래 동안 미그가 소련의 전투기 설계국의 대표로 명성이 높았는데 Su-27이후부터 수호이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Su-27은 다양한 파생형으로도 유명한데 스트라이크 기능을 개량한 Su-30, 항공모함용 함재기형으로 개발된 Su-33, 장거리 타격용인 Su-34, 최신예 개량형인 Su-35, 추력 편향 노즐 엔진을 장착한 Su-37등이 있다. 흔히 이를 합하여 서방에서는 플랭커 시리즈(Flanker Series)라 부른다.
미제 전투기에 대한 인상적인 대항마
지금까지 인상적인 실전 투입 기록은 없지만 탄생 이후부터 곧바로 Su-27과 그 파생 기종들은 동구권을 대표하는 최고의 주력 전투기로 자리를 공고히 하였다. 그리고 냉전 종식 이후에는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도 판매되었고 1990년대 이전까지 감히 생각지도 못하였던 대한민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후보로까지 거론되었을 정도였다. 이것은 그만큼 Su-27과 그 시리즈들의 성능이 훌륭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비록 에어쇼에서 선보이는 현란한 기동은 BVR(가시권 밖) 전투가 대세인 현대 공중전에서는 불필요하다고 폄하되지만 Su-27 시리즈의 성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트레이드 마크다. 한마디로 둔해 보이던 북극곰들의 인상을 바꾸어버린 인상적인 대항마로 결코 모자람이 없다. 어느덧 스텔스 시대가 도래 하며 서서히 지난 세대의 전투기가 되어가는 중이지만 앞으로도 오래 동안 멋지고 강한 모습을 하늘에서 볼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Su-27 전투기 제원 (Su-27SK 기준)
전장 : 21.9m / 전폭 : 14.7m / 전고 : 5.9m / 최대이륙중량 : 30,450kg / 최고속도 : 마하 2.35 / 항속거리 : 3,530km / 작전고도 : 18,500m / 무장 : GSh-30-1 기관포 1문, 8,000kg 폭장, E-27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6발, R-73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2발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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