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9.19 06:56
지난 12년간 《월간조선》에 <손세일의 비교평전-이승만과 김구> 연재를 마친 손세일(孫世一·78) 선생의 소회입니다. 12년간 《월간조선》은 늘 같은 기사, 즉 <손세일의 비교평전-이승만과 김구>로 끝을 맺었습니다. 《월간조선》 2001년 8월호부터 연재를 시작해 2013년 7월호(6월 17일 발매)에서 끝났는데, 만 12년 동안 총 연재횟수는 110회입니다. 여기에 1·2·3부가 끝날 때마다 에필로그를 합하면 113회를 연재한 것이지요. 200자 원고지로 2만여 장 분량입니다.
기간이나 원고량보다 더 거대한 것은 이 비교 평전(評傳)이 다루고 있는 인물이 한국 민족주의의 양대 거인인 이승만(李承晩)과 김구(金九)이라는 점입니다.
◇“현실 정치 경험이 두 사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
- 손세일
손세일 선생은 1970년에도 같은 제목의 책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단권(單卷)으로 나온 이 책은 1969년 《신동아》에 4회에 걸쳐 연재했던 내용을 엮은 것이었습니다. 1970년판 <이승만과 김구>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의 얄궂은 정치문화는 ‘박사’와 ‘선생’이라는, 원래의 뜻보다는 엄청난 권위로 확대된 존칭이 아주 걸맞게 어울렸던 이 두 사람과 그들의 관계로부터 영향된 바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나라의 그러한 정치문화가 그들로 하여금 결국 정치적 패배의 쓴잔을 들게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이승만과 김구》에 대해 손 선생은 “의욕에 비하여 크게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었다”며 “두 사람의 생애를 총괄하여 정치적 패배라고 평가한 것은 젊은 저널리스트의 오만과 시대적 에토스의 소산이었다”고 술회했습니다.
첫 번째 《이승만과 김구》를 썼을 때, 그의 나이는 만 35세였습니다. 당시 그는 《사상계》편집장과 동아일보 《신동아》 부장(편집장)을 지낸 후였습니다. 그 후 1980년 1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14·15대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 의장, 동(同) 원내총무 등을 지냈습니다. 정치를 그만둔 후 손 선생은 <이승만과 김구>를 다시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탈(脫)냉전 이후 1969~1970년에는 접할 수 없는 자료들도 많이 나왔어요. 오래전부터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이승만과 김구>를 다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정치를 접으면서, 역사를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집필을 결심하게 됐어요.”
그는 “실제 정치를 해 본 경험이 이 책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습니다. “실제 정치를 하고 나서 보니 이승만과 김구에 대해 젊은
시절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 보였어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뭡니까? 돈과 조직 아닌가요? 그런 점들을 알게 되고, 크고 작은 정치투쟁을
경험해 본 것이 두 사람의 행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일일이 교정보고 사진크기까지 신경써… “우리 문법 정확하게 구사하려 노력”
손세일 선생이 <이승만과 김구>를 다시 쓰기로 마음먹은 후, 처음 찾아간 곳은 ‘친정’인 《신동아》였습니다. 하지만 담당자는 그가 내세운 까다로운 조건을 듣고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원고량이 많아도 그대로 실어줄 것 ▶교정 이외에는 문장을 고치지 말 것 ▶일반적인 잡지 편집 형식과는 달리 각주(脚注) 등을 달아줄 것 등 편집권을 침해(?)하는 요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갑제 당시 《월간조선》 편집장은 손세일 선생의 조건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뒤늦게 알게 된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은 무척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12년 동안 연재를 하는 동안 그는 매일 일산에 있는 집을 나서면서 “사고나 병이 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원하곤 했다고 합니다.
<이승만과 김구> 연재 초기, 《월간조선》의 한 달은 손세일 선생께서 원고를 갖고 오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편집·미술팀이 그가 쓴 원고 파일과 자료 사진을 책의 본문 형태로 편집하고 나면, 손 선생은 교정지를 집으로 가져가서 꼼꼼하게 손을 본 다음 다시 가져와 최종 교열을 직접 했습니다.
잡지 ‘思想界’의 편집장을 지낸 대선배가 월간조선 사무실 한구석의 조그만 책상에 앉아 정성껏 교열을 보는 모습은 월간조선 전체에 무언의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손 선생은 “알게 모르게 침투한 미국식, 일본식 문법을 배제하고 우리 문법을 정확하게 구사하고, 토박이말을 많이 사용하려 특히 노력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오랜 친구인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등의 조언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관련 사진을 직접 구해 보내주었고 게재되는 사진의 크기까지 세심하게 챙겼습니다.
12년 동안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섭렵했을까요? 이에 대해 손 선생은 “총 몇 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봤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이 주제와 관련해 필요한 자료는 빼놓지 않고 보려 노력했다”고 말했습니다.
관련 석·박사 학위 논문, 미국·일본의 관련 논문, 舊소련 문서 등을 두루 섭렵했다고 했습니다. “사무실을 마포 도화동에 마련한 것도 국회도서관 등을 이용하기 편해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도산안창호기념관, 독립기념관 등에 소장된 자료들도 많이 참고했습니다.”
그는 “국내외에서 나온 각종 자료와 연구성과들을 읽는 데 3분의 2, 글을 쓰는데 3분의 1 정도의 시간이 들어갔다. 잠을 자면서도 원고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승만과 김구> 통해 애국심 얘기하고 싶었다”“젊은이들이 읽어주었으면…”
올 6월 17일 발매된 《월간조선》 7월호로 막을 내린 <이승만과 김구>는 이승만과 김구, 그리고 그들의 시대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과는 다른 얘기,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을 많이 담았습니다.
김구가 치하포 나루에서 살해한 것은 간첩활동을 하던 일본군 장교가 아니라 일본 상인이었으며, 이 때문에 대한제국 정부에서 배상을 해주어야 했다든지, 1948년 김구의 북행(北行)에는 거물간첩 성시백의 공작이 작용했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이 대표적입니다.
손세일 선생은 이승만의 ‘정치가’로서의 경륜과 판단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또 ‘현실정치인 김구’의 모습(권력의지, 정치적 판단착오 등)도 놓치지 않습니다. 때문에 일부 인사들은 “<이승만과 김구>가 이승만을 높이고 김구를 폄하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스러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손 선생은 7월호에 실린 에필로그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에서 두 사람의 민족주의 사상과 애국심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뜨거운 애국자였지만 방법에서 차이가 있었다. 건국을 앞두고 이승만은 ‘국가’를, 김구는 ‘민족’을 우선하는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점보다는 같은 점이 더 많았다. 두 사람 모두 철저한 민족주의자였고 반공주의자였다. 큰 나라 국민들은 어느 정도 개인주의로 가도 된다. 하지만 약소국이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단합, 애국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승만과 김구를 통해 애국심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손 선생에게 두 사람의 단점을 묻자, “이승만은 포용력이 부족했던 게 아쉽고 김구는 유엔 결의에서 남북협상, 건국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결단력이 부족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12년 동안의 장기 연재가 끝난 후 손세일 선생이 허탈함 때문에 건강이 상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일부 있었습니다만, 손세일 선생은 여전히 활달하고 의욕 충만 상태였습니다. 그는 요즘에도 경기도 일산에 있는 자택에서 지하철로 마포구 도화동 성지빌딩에 있는 청계연구소 사무실로 아침 9시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승만과 김구>를 단행본으로 펴내기 위해 지난 12년 동안 새로 나온 연구성과나 자료 등을 반영해 각주와 본문 등을 수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각주들을 정리하는 데만 앞으로 3개월 이상 걸릴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승만과 김구>가 책으로 나오면 당연히 젊은이들이 읽어주기를 바란다.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이승만과 김구>를 갖고 강의라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팔십을 앞둔 손세일 선생은 아직 영원한 청년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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